[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은 국제시장, 자갈치시장과 나란히 부산 대표 시장권을 이루는 전통시장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중구로 39번길 32에 자리하며, 점포 수 1,141곳과 면적 3만597㎡(약 1천평) 규모를 갖췄다. 수입 제품과 어묵이 시장의 대표 품목이다. 비빔당면과 유부전골은 부평깡통시장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2013년에는 국내 첫 야시장을 열어 부산 밤 시장 문화를 바꾼 장소로 이름을 얻었다.
◇개항 도시 부산이 만든 공설시장
부평깡통시장의 출발은 개항기 부산 중구의 변화와 같이 한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항이 개항했고, 부산의 중심은 동래와 구포에서 초량왜관이 있던 중구 일대로 옮겨갔다. 부평동과 광복동, 남포동, 신창동 일대에는 일본인이 대거 들어왔다. 갈대밭과 풀밭이 많던 지역은 시가지로 바뀌었다. 부평동에는 원래 사거리시장이라는 장이 있었다. 개항 뒤 일본인 거주자가 늘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도 달라졌다. 일본인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상인이 늘었다. 장옥과 점포도 설치됐다. 1909년에는 일한시장이라는 이름의 사설시장이 개설됐다. 일한이라는 이름에는 일본과 한국이 같이 쓰이던 개항기 상권의 성격이다.
1915년 일한시장은 부산부가 운영하는 공설시장으로 바뀌었다. 이름도 부평정시장으로 고쳤다. 부평정시장은 한국에서 처음 개설된 공설시장으로 기록된다. 초기에는 일본인 거주자의 편의를 위해 식재료와 잡화를 할인 판매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후 일본인 인구가 늘고 부산 중구가 커지면서 시장 규모도 넓어졌다. 1920년대 부평정시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1923년에는 건물 안 점포 125곳, 바깥 점포 137곳이 운영됐다. 1935년에는 바깥 점포가 570곳까지 늘었다. 백미, 대두, 소금, 야채, 과일, 잡곡, 어류, 해조류, 직물 등이 거래됐다. 하루 거래액도 크게 늘었다. 해방 뒤 부평정시장은 부평동시장, 부평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부평시장은 국제시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지만 성장 배경은 달랐다. 국제시장은 일본인이 떠난 뒤 남겨진 물건이 거래되면서 도떼기시장 성격으로 커졌다. 반면 부평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상설시장 형태를 갖춘 공간이었다. 일본인이 장악했던 점포와 상권을 한국인이 넘겨받으며 시장 기능을 유지했다. 부산어묵도 부평시장 상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인을 상대로 팔리던 어묵은 해방 뒤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미군 물자와 수입품이 남긴 ‘깡통시장’ 이름
부평시장이 부평깡통시장이라는 이름을 얻은 계기는 한국전쟁 이후였다. 해방 당시 40만 명 수준이던 부산 인구는 전쟁기 피란민 유입으로 88만 명까지 늘었다. 생필품 수요가 폭발했다. 부산 곳곳에는 암시장과 임시 장터가 생겼다. 부평시장도 급변한 도시 상황 속에서 새로운 물자를 다루기 시작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통조림, 과자, 군수품, 식료품이 부평시장에 흘러들었다. 캔 제품이 많이 팔리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깡통시장이라 불렀다. 이름은 시장의 별칭으로 시작됐다. 이후 부평시장의 대표 정체성이 됐다. 전쟁 직후 부족한 물자 속에서 깡통시장 상품은 낯선 외국 물품이자 귀한 생필품이었다.
베트남전쟁 특수도 시장을 키웠다. 참전 군인들이 미군 전투식량인 시레이션과 외국 물품을 부평시장에 들여왔다. 1970년대에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관부연락선 운항이 재개됐다. 보따리장수들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물건을 들여왔다. 깡통시장 상인들은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당시 부평깡통시장은 외제 물품을 구할 수 있는 대표 시장이었다. 전자제품, 양주, 담배, 식료품, 생활 잡화까지 여러 품목이 골목을 채웠다. 공식 유통망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 소비자에게 부평깡통시장은 세계 물자를 만나는 창구였다. 밀수품 단속을 피해야 하는 불안정한 구조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부산 상권의 독특한 에너지로 버텼다.
수입 자유화와 유통망 변화는 시장의 성격을 다시 바꿨다. 외국 제품을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게 되자 수입품 시장의 독점성은 줄었다. 부평깡통시장은 수입품만으로 사람을 모으는 시장에서 먹거리와 야시장, 관광 동선이 강한 시장으로 이동했다.
◇야시장과 부산 먹거리로 되살린 시장 골목
부평깡통시장이 다시 전국적 이름을 얻은 계기는 야시장이었다. 2013년 10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설 야시장을 열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골목에 불이 켜졌다. 세계 여러 나라 음식과 길거리 먹거리가 사람을 불렀다. 과거 깡통시장이 외국 물품을 팔았다면, 야시장은 세계 음식을 부산 골목 안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깡통시장야시장은 액세서리와 건강식품, 공예품, 먹거리 부스가 섞인 거리형 시장으로 변모했다. 민속놀이와 거리공연도 운영되며 부산의 밤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가 됐다. 낮에는 오래된 상설시장, 밤에는 관광객이 몰리는 야시장으로 변했다. 시장 골목의 시간대가 나뉘면서 부평깡통시장은 하루를 길게 쓰는 시장이 됐다.
먹거리도 부평깡통시장의 힘이다. 비빔당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 음식으로 꼽힌다. 당면을 삶고 사각어묵을 데친 뒤 양념장을 넣어 비비는 음식이다. 처음에는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지금은 부산 시장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됐다. 유부주머니전골도 부평깡통시장의 대표 음식이다. 데친 유부 안에 잡채를 넣고 미나리로 묶은 뒤 멸치 육수에 끓여낸다. 시장 음식 특유의 따뜻한 국물과 손맛이 살아 있다. 부산어묵은 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죽집골목은 전쟁과 피란의 기억을 품고 있다. 한국전쟁기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다. 미군 부대 잔반을 모아 죽을 끓여 파는 집이 생기면서 골목이 형성됐다. 당시에는 꿀꿀이죽, 유엔탕이라 불리기도 했다. 값싼 한 끼였지만 피란민과 가난한 상인에게는 버팀목이었다. 현재는 선식, 이유식, 건강 죽, 국수, 국밥, 만둣국 등으로 품목이 넓어졌다. 부평깡통시장은 주변 관광 동선도 좋다. 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에서 접근하기 쉽고, 국제시장과 마주한 상권에 있다.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골목, 자갈치시장, 남포동, 감천문화마을, 송도해수욕장까지 부산 원도심 여행 코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부평깡통시장은 개항기 공설시장, 전쟁기 미군 물자, 베트남전쟁 특수, 수입품 상권, 국내 첫 야시장까지 여러 시대를 거쳤다. 시장의 이름에는 통조림 캔이 남겼던 도시의 기억이 있다. 골목에는 비빔당면과 유부전골, 어묵, 죽집의 냄새가 남아 있다. 낮 시장과 밤 시장이 교차하는 부평깡통시장은 부산 원도심의 생활과 여행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시장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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