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미국의 중동 평화협정 확대 시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중동 주요국 정상들과 진행한 전화회의에서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상화를 제안했으나, 빈 살만 왕세자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영국 더타임스가 인용한 소식통은 왕세자가 이번 통화로 극도로 분노했다고 밝혔다. 해당 소식통은 "트럼프에게 이미 거절 의사를 백 번이나 전달했고, 앞으로도 백 번은 더 말해야 할 것"이라는 왕세자 측 반응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왕세자였지만, 이스라엘 문제만큼은 양보 없는 입장을 고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미국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는 협정이 체결된 바 있다. 현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추가 국가들로 이 협정을 확장하려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선대와 달리 팔레스타인 사안을 국익의 핵심 장애물로 인식하지 않는 세대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에는 미국과의 방위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논의에 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확약하라는 요구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협상은 무산됐다고 양국 당국자들이 설명했다.
리야드는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인정을 향한 구체적이고 비가역적인 로드맵 제시를 요구하고 있으나, 텔아비브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한 소식통은 "실질적 진전 없이는 협상 재개가 어렵다"며 사우디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시사했다. 가자지구 분쟁과 이란 관련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역내 여론이 크게 악화됐고, 이에 따라 사우디의 태도는 더욱 경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타임스는 이란 문제가 역내 안보 위협임을 확인시킨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이 미국을 무력 충돌에 연루시키는 위험 요인이라는 인식도 강화됐다고 진단했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시도를 두고 "상황 판단이 전혀 안 되는 전형적인 행태"라고 평가했다.
한편 작년 사우디와 군사협력 관계를 맺은 파키스탄 역시 동일한 요청을 사실상 일축했다. 카와자 아시프 국방장관은 현지 방송 사마TV와의 대담에서 "국가의 근본 가치와 배치되는 합의에는 동참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1967년 이전 경계선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도 재확인했다.
아시프 장관은 "하루도 신뢰할 수 없는 발언을 일삼는 상대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다"며 이스라엘을 직접 비판했다. 인도 NDTV는 그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에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소개하며, 지난달 그가 이스라엘을 "인류에 대한 저주"로 지칭하고 집단학살 혐의를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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