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1위, 글로벌 OTT 차트 점령, 전 세계 박물관의 한국 현대전. 지금 K-컬처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수사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장준환은 그 찬란한 성공 너머에 ‘디지털 소작농’ 이라는 서늘한 은유를 던진다. 뉴욕의 비즈니스 변호사이자 갤러리스트로 실제 문화 인프라를 설계해온 그는, K-컬처의 현재가 거대 플랫폼(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이 설계한 알고리즘과 자본의 영지 위에서 벌어지는 위태로운 잔치라고 통찰한다.
저자가 가장 예리하게 짚어내는 지점은 ‘인정의 외주화’ 다. 우리는 해외 매체의 별점, 수상 여부, 팬덤의 폭발적 반응을 ‘성공의 증표’로 삼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감각을 외부 시선에 맞춰 조정하고, 해외의 평가를 통해서만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미학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구조다. 저자가 말하는 ‘K의 죽음’ 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외부의 기대에 박제된 스타일을 과감히 해체하고, 스스로 무엇이 좋은 것인지 정의할 수 있는 ‘안목의 주권’ 을 회복하라는 역설적인 선언이다.
이 책은 K-컬처의 다음 단계가 단순한 ‘유명세’나 ‘히트 상품’이 아니라 ‘구조’ 에 달려 있음을 반복해서 역설한다. 한 편의 영화나 음악이 우연히 세계적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넘어,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비평하며 축적할 수 있는 IP·플랫폼·비평 시스템이라는 인프라를 직접 설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문화적 주체로 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플랫폼이 규칙을 바꿀 때마다 흔들리는 ‘영원한 소작인’으로 남을 것이다.
박수 소리가 멈춘 뒤를 걱정하는 모든 문화 창작자, 기획자,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 책은 자본의 민낯을 직시하게 하는 동시에, 미학적 자생력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지도를 제시한다. 화려한 성과 너머, 진짜 전쟁은 ‘인프라’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냉철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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