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의 포화 속에서 확인된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대한민국에 ‘에너지 자립’이라는 준엄한 생존 명령을 내렸다. 특정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가 경제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는 기술 주권 확보를 통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본지는 에너지 안보의 핵심 보루로 거듭나고 있는 K-에너지 초격차 기업들을 찾아 그들이 보유한 원천 기술의 본질과 미래 가치를 심층 진단한다. [편집자주]
| 서울=한스경제 김종효 기자 | 화석연료 공급망 불안정성이 극에 달한 혼돈의 시대에 바다 위 거대한 고립 발전소인 해상풍력은 영토 한계를 넘어설 최고의 에너지 광산으로 평가받는다. 태양광이 도심과 산단을 중심으로 분산형 전력망을 촘촘히 다진다면 해상풍력은 대규모 전력을 기저부하 수준으로 묵직하게 공급하는 ‘에너지 주권’의 거대한 축이다. 이 거대 풍력 발전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자 터빈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심장부가 바로 발전기, 증속기, 제어장치를 집약한 거대 구조물 ‘나셀(Nacelle)’이다.
대한민국 중공업의 자존심 두산에너빌리티는 해외 공룡 기업들이 독점하던 초대형 해상풍력 터빈 시장에 고유의 국산 원천 기술을 주입하며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들이 완성한 ‘15MW급 초대형 해상풍력 나셀 및 드라이브 트레인(Drive Train)’ 설계 기술은 거친 해풍과 혹독한 염분 속에서도 유연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K-윈드파워의 핵심 전략 자산이다.
▲거대 중량·메가와트급 진동, ‘드라이브 트레인’ 공학으로 제어
해상풍력 터빈이 대형화될수록 나셀이 짊어져야 할 물리적 과부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5MW급 터빈의 경우 블레이드(날개)의 회전 직경만 240m에 달하며 바람을 맞아 회전하는 로터와 나셀 본체의 무게를 합치면 수백톤에 육박한다. 아파트 수십층 높이의 타워 꼭대기에서 이 거대한 중량이 회전할 때 발생하는 비틀림 모멘트와 미세 진동은 기계 구조의 피로 파괴를 유발하는 치명적 원인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개발한 초대형 드라이브 트레인 기술은 이 강력한 기계적 스트레스를 완벽하게 분산·제어하는 유체역학적 설계의 정점이다. 핵심은 바람의 운동에너지를 회전 자석의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발전기(Generator)와 주축(Main Shaft)의 정렬 유지 기술이다. 태풍급 강풍이 불어와 블레이드가 휘어지고 구조물이 요동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내부 축의 정밀도를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제어해 동력 손실을 막는다.
동시에 나셀 내부 열을 효과적으로 식혀주는 완전 밀폐형 수냉식 냉각 시스템을 적용, 외부 염분이 내부 정밀 전장 부품에 침투하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기계공학과 재료공학의 한계에 도전해 완성한 이 내구성 제어 공법은 해외 경쟁사 대비 가동률을 현격히 높이며 20년 이상 장기 운영 안정성을 담보하는 원동력이 됐다.
▲영하의 바다·태풍 견디는 ‘능동형 피치 및 요 시스템’
두산에너빌리티 나셀의 또 다른 독보적 경쟁력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지능형 제어 소프트웨어다. 바람 세기에 따라 블레이드 각도를 조절해 회전력을 통제하는 ‘피치(Pitch) 시스템’과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나셀 자체를 회전시키는 ‘요(Yaw) 시스템’이 나셀 내부에 탑재돼 유기적으로 구동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여기에 센서 기술을 결합해 한 단계 진화한 능동형 제어 알고리즘을 이식했다. 풍속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태풍 상황을 감지하면 시스템이 스스로 블레이드를 바람과 평행하게 눕혀 회전력을 상쇄시키는 ‘페더링(Feathering)’ 모드로 전환된다. 나셀 구조물에 가해지는 순간 하중을 대폭 줄여 터빈 전체 전도 위험을 막는 안전장치다.
과거 유럽산 터빈 장비들은 한국의 독특한 지형적 특성인 태풍과 저풍속 환경에서 잦은 고장을 일으키거나 발전 효율이 급감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반면 대한민국 앞바다의 기후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맞춤형으로 설계된 두산에너빌리티의 나셀 시스템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풍향 변화가 극심한 한국형 해상 환경에서 한층 뛰어난 연간 에너지 생산량(AEP)을 증명해내고 있다.
▲중공업 원천 기술이 곧 국가 공급망 안보의 보루
유럽과 미국의 소수 공룡 기업이 쥐고 흔들던 해상풍력 터빈 시장에서 핵심 심장부인 나셀의 설계 주권을 확보한 것은 국가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 큰 상징성을 지닌다. 해외 기술에 종속될 경우 장비 도입 비용 폭리는 물론 사소한 고장에도 부품 조달을 위해 몇 달씩 발전기가 멈춰 서는 막대한 전력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창원 공장의 초대형 양산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체 공급망을 탄탄히 다지며 부품 조달 리스크를 완전히 지웠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가 거세지더라도 서해와 남해의 복잡한 해상 환경과 까다로운 인허가 기준을 충족하며 대형 전력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기술은 오직 국산 터빈뿐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이뤄낸 나셀 국산화 성과는 향후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건설 시 국부 유출을 막고 수많은 국내 중소 협력사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 낙수효과를 견인할 핵심 마중물로 주목받는다.
에너지업계 전문기는 “두산에너빌리티는 거대한 바다의 바람을 거시적인 기계 공학으로 정복한 사례”라며 “화석연료 공급망이 마비되는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앞바다에서 흔들림 없이 메가와트급 전력을 거두어들이는 두산의 나셀 기술이야말로 영토 자산의 가치를 바꾸는 진정한 초격차 국방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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