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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요 거래소들은 이 변화를 이미 경쟁 전략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미국 주식의 야간 거래는 블루오션 대체거래시스템(ATS) 등 대체거래시스템을 중심으로 제공됐지만 아시아 투자자 수요가 커지면서 정규 거래소들도 23시간 또는 24시간에 가까운 거래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자 편의를 조금 높이는 차원의 변화로 보기 어렵다. 글로벌 자본이 어느 플랫폼에 머물 것인지를 놓고 거래소들이 경쟁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한국거래소도 올해 프리마켓과 애프터 마켓을 도입해 12시간 거래체계를 만들고 이후 24시간 거래체계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이 경쟁을 단순히 거래시간의 문제로만 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우리 시장이 닫혀 있다면 그 시간만큼 가격발견과 유동성, 거래수익, 투자자 접점은 해외 플랫폼으로 이전된다. 시장이 멈춘 시간은 중립적인 공백이 아니다. 경쟁자가 주문과 데이터를 쌓고 자본시장의 점유율을 넓히는 시간이다. 계속 작동하는 시장과 정해진 시간에만 열리는 시장이 경쟁한다면 후자는 결국 더 비싼 시스템이 되고 더 약한 플랫폼이 된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가격발견이다. 글로벌 거시경제 변수와 주요 기업 뉴스는 한국시간으로 밤 사이에 자주 나온다. 지금은 이 정보가 장 개시 직후 한꺼번에 가격에 반영된다. 시장이 정보를 차분히 소화한다기보다 밤새 쌓인 주문과 기대를 개장 시점에 몰아서 처리하는 구조다. 처리해야 할 정보가 한곳에 몰리면 가격도 더 거칠게 움직인다. 정보가 생긴 시점과 거래가 가능한 시점 사이의 간격이 길수록 변동성과 거래비용은 커진다. 거래시간이 늘어나면 가격은 정보 발생 시점에 더 가깝게 조정되고 장 초반 충격도 일부 완화할 수 있다. 투자자에게는 위험을 관리할 시간도 넓어진다.
거래시간 연장은 글로벌 금융 플랫폼 경쟁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본은 국적보다 유동성, 거래비용, 접근성, 신뢰성을 본다. 어느 나라 시장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장이 더 낮은 마찰비용으로 더 나은 가격발견을 제공하느냐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으로 향한 이유도 기대수익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긴 접근 시간, 깊은 유동성, 낮은 정보 마찰, 안정적인 인프라가 함께 작용했다. 반대로 해외 투자자가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거래시간과 접근성 때문에 포기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한국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으로 돌아온다.
개인투자자의 선택권도 중요하다. 현재의 거래시간은 직장인을 포함한 많은 개인투자자에게 현실적인 제약을 만든다. 근무시간과 거래시간이 겹치면 시장 변화를 충분히 읽고 대응하기 어렵다. 거래시간을 늘리는 것이 모든 투자자에게 더 자주 매매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시간, 정보, 위험 선호에 맞춰 참여 여부를 고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시장의 자유는 강제된 참여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참여에서 나온다. 명확한 공시, 충분한 위험 안내, 정교한 주문제도가 갖춰진다면 거래시간 연장은 투자자 보호와도 함께 갈 수 있다.
물론 비용과 위험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야간 시간대에는 유동성이 얇아지고 스프레드가 넓어질 수 있다. 증권업계의 인프라 부담과 인력 운영 문제도 생긴다. 그렇다고 연장 거래 자체를 미룰 이유는 되지 않는다. 시장조성자 인센티브, 변동성 완화 장치, 청산·결제 인프라, 사이버 보안, 장애 대응 체계를 함께 손봐야 한다. 24시간 시장은 서버를 오래 켜두는 일이 아니다. 안정적인 운영, 실시간 감시, 자동화된 위험관리, 빠른 복구가 가능한 시장 운영 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된 매매·감시 시스템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과거의 노동집약적 운영 방식을 기준으로 시장의 미래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노동 강도의 단순한 증가가 아니다.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사람은 감독과 예외처리, 위험판단에 집중하는 쪽으로 금융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기술은 거래시간 연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시장 신뢰를 지키는 인프라다.
자본시장은 자원을 더 생산적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경제의 엔진이다.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고 선진시장으로 가려면 가격발견의 속도와 시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거래시간 연장은 단순히 매매 가능 시간을 몇 시간 늘리는 행정 조정이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의 정보처리 능력, 플랫폼 경쟁력, 투자자 선택권을 함께 높이는 제도 개편이다.
글로벌 자본시장 경쟁은 이미 눈앞에 와 있다. 자본은 잠들지 않는다. 이제 한국 시장도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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