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는 한국 영화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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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는 한국 영화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

에스콰이어 2026-05-27 00:00: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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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은 귀신도 모른다. 사실 충무로에 이런 농담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흥행은 하늘도 모른다는 말은 있다. 좀 재미가 없는 말이다. 흥행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도 있다. 요즘 며느리는 시집에서 뭘 하는지 원래 잘 모른다. 옛날 소리다. 귀신도 모른다는 표현에는 과학적, 아니 신학적, 그것도 아니고 무속적 근원이 있다. 충무로 사람들, 그러니까 한국 영화계 사람들은 귀신 좋아한다. 귀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귀신에게 뭘 묻는 걸 좋아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거의 모든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 투자자들 휴대폰에 신점 잘 치는 무당 전화번호가 빠짐없이 다 있을 리가 없다.

신점 잘 본다는 소문이 들리는 순간, 그 집은 영화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덧없다. 선무당이 새로 모시기로 결정한 아기동자와 할매들이 그걸 다 예측했다면 한국영화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흥행은 하늘도 모르거나 며느리가 모른다는 표현보다는, 귀신도 모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귀신 나오는 호러 영화 주인공 배우들은 예능에 나가서 항상 현장이나 녹음실에서 귀신 본 이야기를 한다.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는 오랜 이야기 때문이다. 한국 배우들이 녹음실에서 귀신 본 숫자로만 따지자면 한국 호러영화는 이미 전성기를 누리고 있어야 마땅하다. 귀신은 별 효험이 없다.

귀신 나오는 영화도 별 효험은 없다. 한국 호러영화 장르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짧은 전성기를 마치고 종말했다. 〈링〉(1998), 〈주온〉(2002) 등 J-호러 영향을 깊이 받아 만들어진 한국 호러는 K-호러라는 호칭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십 년만 더 버텼으면 K흐름을 타고 살아남았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랬을 리도 없다. 〈장화, 홍련〉(2003)이 314만, 〈폰〉(2002)이 260만, 〈곤지암〉(2018)이 267만 관객을 기록한 이후 그만한 성공작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여러분은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파묘〉(2024)로 이어지는 장재현과 〈곡성〉(2016)의 나홍진을 말할 것이다. 그들 영화는 제작비가 아낌없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규모라는 점에서 이미 너무 메이저다. 그들 영화의 성공과 실패가 한국 호러영화 성공과 실패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호러란 이런 장르다. 적은 돈을 투자하고 적은 돈을 계속 벌기 위해 만드는 장르다. 호러영화가 메이저 장르였던 적은 거의 없다. 좀비 장르를 한번 생각해보시라. 이 장르는 지나친 고어 장면으로 인해 오랫동안 심야 극장에서나 개봉하던 B급영화 영역이었다. 거기서 피와 고어를 순화하고 스피드를 높이면서 2000년대 이후 좀비 장르가 점점 메이저 영역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웨스 크레이븐의 전설적인 〈스크림〉(1996) 시리즈 역시 1980년대에는 마이너 장르였던 슬래셔 호러를 역시 피와 고어를 순화하고 스피드를 높여 세련되게 재창조한 것이다. 호러는 반세기 만에 메이저가 됐다. 더 많은 일반 관객이 부담 없이 즐기는 장르가 됐다.

그게 무슨 소리냐. 호러영화가 예전보다 수익률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비교적 적은 돈을 들이고도 성공하면 제작비의 몇 배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장르가 된 것이다. 일단 한국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은 호러가 다 죽은 지 오래다. 할리우드는 지난 몇 년간 ‘호러의 시대’라고 말할 법한 현상을 겪고 있다. 저예산 틈새 장르였던 호러영화들이 극장을 살리는 안정적인 흥행 카드가 됐다. 지난 몇 년간 성공작들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웨폰〉(2026), 〈메간〉(2022), 〈스마일〉(2022), 〈더 넌 2〉(2023), 〈블랙폰〉(2021), 〈노스페라투〉(2024), 〈인비지블 맨〉(2020), 〈프레디의 피자 가게〉(2023)는 각각 북미에서만 1억 달러 내외 흥행 성적을 거뒀다. 〈롱레그스〉(2024), 〈톡 투 미〉(2022), 〈할로윈 엔드〉(2022), 〈바바리안〉(2022) 등도 5000만 달러 정도 수익을 거뒀다. 이제 끝났다고 여겼던 〈스크림〉(1996) 시리즈도 부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저예산 대비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다른 장르보다 나아졌다. 소셜미디어 바이럴 시대에도 적합하다. A24 등 좋은 제작사들이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을 내세워 이 장르를 매년 진화시키고 있다. 메이저 제작사들도 이 장르에 가졌던 편견을 완전히 벗은 지 오래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호러영화의 극장 수익률은 더 나아졌다. 호러영화는 강한 콘셉트를 가진 장르다. 동시에 극장에서 다 같이 비명을 지르는 경험 자체가 매력의 일부인 장르다. 만약 영화를 놀이동산이라 생각한다면 호러영화는 가장 인기 있는 라이드다. 우리가 놀이동산에 가는 이유가 뭔가? 퍼레이드 보러? 얌전히 돌아가는 플라스틱 말이나 타러? 우리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러 간다. 공포를 느끼러 간다. 공포를 느끼는 것을 즐기러 간다.

〈살목지〉(2026)를 보러 갔다가 두 번 정도 내적 비명을 질렀다.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도대체 극장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이미 관객이 300만이 넘었다. 이 300만이 얼마나 대단한 숫자냐고? 코로나 이후 개봉작 중 10위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다. 지금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와 비슷한 성적이다. 〈살목지〉의 제작비는 30억이다. 올해 한국영화 수익률에서 이걸 능가할 영화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살목지〉가 300만 관객을 돌파하지 않았다면, 아니, 100만 관객을 돌파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기이한 소문이 끊이질 않아 〈심야괴담회〉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충청남도 어느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파운드 푸티지 영화다. 나는 한국 호러영화에 질렸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도 질렸다. 〈블레어 위치〉(1999)의 역사적인 성공 이후로 한 십여 년간 쏟아졌던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이제 생명이 다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실제로 찍은 영상을 편집해서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이 가짜 다큐멘터리 장르는 이미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더 할 게 없어 보였다. 좀비와 결합하니 〈REC〉(2007), 귀신과 결합하니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괴수와 결합하니 〈클로버필드〉(2008)…. 결합할 건 다 해봤다. 〈살목지〉는 파운드 푸티지인 것도 이미 지겨운데 저수지 귀신이라니 더 지겨울 것이다. 지겹지는 않았다. 사람을 튀어오르게 만드는 ‘점프 스케어’가 아주 그냥 숨을 쉴 틈도 없게 몰아치는 덕이다. 점프 스케어가 파운드 푸티지 귀신 영화만큼 잘 작동하는 장르는 없다. 적어도 이걸 만든 사람들은 이걸로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그게 놀이동산, 아니 호러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지 모른다.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알았다. 적어도 전문가들은 알았다. 흥행의 공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주 빗나가는 공식이지만 적어도 그 공식을 지키면 큰돈은 잃지 않았다. 이제 그런 공식은 없다. 여러분 중 〈왕과 사는 남자〉(2026)가 1천만을 넘어 한국 역사상 흥행 2위에 오를 것이고 류승완의 〈휴민트〉(2026)는 200만 관객도 끌어들이지 못할 거라는 현재를 예측한 분이 계신가? 누군가 〈살목지〉(2026)가 300만 흥행작이 될 거라 예측했다면 굳이 댓글로 찾아가서 비웃었을 것이다. 〈살목지〉(2026)를 만든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한 가능성을 봤다. ‘아 저거 내가 전에 작가 면전에 집어 던진 시나리온데?’라며 후회하는 영화인 여러분이 보지 못한 가능성 말이다.

2026년 할리우드는 호러영화 대전이다. 지금까지 개봉한 〈스크림 7〉(2026), 〈리 크로닌의 미이라〉(2026), 〈직장 상사 길들이기〉(2026)(그렇다, 이것도 샘 레이미의 호러다!)는 흥행이 잘 되거나 비평이 좋았다. 남은 개봉작은 더 굉장하다.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던 슬래셔 코미디 속편 〈레디 오어 낫 2〉(2026), 오리지널 게임 감성에 보다 가깝게 만드는 〈리턴 투 사일런트 힐〉(2026), 전설적 시리즈의 부활인 〈이블 데드 번〉(2026), 〈웨폰〉(2026)과 〈바바리안〉(2022)의 젊은 호러 천재 잭 크레거가 다시 시작하는 〈레지던트 이블〉(2026), 그리고 유튜브 역사상 가장 이 장르 팬들을 흥분시킨 짧은 영상 시리즈 〈백룸〉(2026)의 극장판이 개봉한다. 로맨틱 코미디나 코미디, 심지어 액션 등 많은 장르가 동력을 잃어가는 지금, 호러는 극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게 될까? 어쩌면. 〈왕과 사는 남자〉와 〈살목지〉로 출발한 올해 한국영화계가 가장 기다리는 두 편은 〈호프〉와 〈군체〉다. 전자는 이젠 거의 10년에 한 편만 만드는,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영화를 만드는 나홍진의 영화다. 후자는 이젠 1년에 열 편도 만들 것 같은, 〈부산행〉(2016)으로 한국에서 좀비 장르를 열어젖힌 연상호다. 〈호프〉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농촌 호러 스릴러다. 〈군체〉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좀비 영화의 규모를 압도적으로 키운 또 좀비 영화다. 그렇다. 두 영화는 지나치게 메이저다. 블록버스터다. 다만, 두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작은 시장이 다시 열릴 수도 있다. 〈살목지〉처럼 초저예산으로 만드는 호러영화의 시장이 다시 깨어날 수도 있다. 나는 정말이지 그러길 바란다. 그렇게 만들어질 호러영화의 90%는 쓰레기일 것이다. 하지만 SF소설가 시어도어 스터전이 반세기 전에 말했지 않은가. “SF소설의 90%는 쓰레기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물론 이 장르가 보다 본격적으로 한국영화의 예기치 않았던 구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갖춰야 하는 것이 있다. 익숙한 장르의 클리셰를 벗고 컨벤션은 흔드는 영화적 재주다. 퀄리티가 문제라는 소리다. 잭 크레거의 〈웨폰〉(2026)은 오스카 주요 부문 후보에 올라 결국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 별거 없다. 수십 년간 반복된 교외 도시 배경 오컬트 호러영화를 2020년대의 시대정신에 맞게 조금 업그레이드하고 비튼 것이다. 마녀와 주술과 좀비와 무서운 아이들이 등장하는, 익숙한 존 카펜터 스타일 영화다. 중요한 건 업그레이드하고 비트는 것이다. 〈살목지〉도 노력했다. 노력했다고 다 성공한 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 장르에서 노력하는 젊은 감독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게 언제였나를 생각해보시라. 다만 〈살목지 2〉(2027)는 포기하시길 바란다. 두 번 성공할 콘셉트는 아니다. 그게 뭐든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는 희망을 걸어본다. 아니다. 감독이 뭘 쓰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 호러이길 바란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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