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여론조사의 홍수, 박근혜의 등장…선거판 흔드는 ‘숫자’와 ‘기억’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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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법] 여론조사의 홍수, 박근혜의 등장…선거판 흔드는 ‘숫자’와 ‘기억’의 정치

투데이신문 2026-05-26 23:26:33 신고

3줄요약

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 담장에 부착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벽보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 담장에 부착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벽보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지방선거가 막판으로 접어들수록 여론조사는 판세를 설명하는 자료이자 동시에 지지층을 움직이는 정치적 언어가 된다. 공표되는 조사마다 정당과 후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을 앞세우고 불리한 결과에는 조사 방식과 표본 구성을 문제 삼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 수치 자체보다 그 수치가 어떤 조건에서 생산됐는가이다. 조사 의뢰자와 조사기관, 조사기간, 표본수, 조사방법, 응답률, 표본오차, 신뢰수준이 함께 제시되지 않은 여론조사는 유권자에게 온전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

특히 오차범위 안의 결과를 두고 “앞섰다”, “1위다”, “뒤집었다”고 단정하는 순간 여론조사는 민심의 자료가 아니라 선거운동의 도구가 된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은 오차범위 안의 결과에 대해 순위를 매기거나 서열화하지 말고 ‘경합’ 또는 ‘오차범위 내’라고 보도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 여러 지역의 판세가 ‘우세’보다 ‘접전’과 ‘혼전’의 언어로 읽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개별 여론조사의 수치를 단정적으로 나열하기보다 공표금지 기간을 앞두고 여론조사가 어떻게 정치권의 심리전으로 전환되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숫자는 민심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선거 막판에는 각 진영의 위기감과 결집력을 자극한다. 앞선 쪽은 ‘굳히기’를 말하고, 뒤진 쪽은 ‘숨은 표’와 ‘막판 역전’을 말한다. 여론조사의 정치문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공표금지 직전, ‘마지막 숫자’에 매달리는 정치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 과열이 더 심해지는 이유는 공표금지 시점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108조는 선거일 전 6일부터 투표마감 시각까지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와 경위를 공표하거나 인용 보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5월 28일부터 6월 3일 오후 6시까지 여론조사 결과 공표·보도가 제한된다.

정치권이 공표금지 직전의 여론조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공개되는 숫자는 선거 막판의 심리전을 결정한다. 우세한 후보에게는 ‘굳히기’의 명분이 되고, 추격하는 후보에게는 ‘뒤집기’의 불씨가 된다. 지지층에게는 안심과 위기감을 동시에 던진다. 앞서는 쪽은 방심을 경계해야 하고, 뒤지는 쪽은 포기를 막아야 한다.

문제는 여론조사가 많아질수록 해석의 유혹도 커진다는 점이다. 어떤 조사는 격차를 보여주고, 어떤 조사는 추세를 보여준다. 어떤 조사는 부동층의 크기를 강조하고, 어떤 조사는 당선 가능성을 앞세운다. 같은 선거구를 두고도 조사 방식, 조사 시점, 질문 문항, 표본 구성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온다. 그러나 선거판에서는 이런 차이가 쉽게 생략된다. 정치권과 지지층은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만 골라 판세의 증거로 삼는다.

실제 여론조사 왜곡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경남도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해 공표한 혐의로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캠프 관계자를 지난 6일 경찰에 고발했다. 해당 관계자는 특정 후보자 지지 이유 중 한 항목만 부각해 마치 다른 후보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그래프를 제작해 SNS에 게시한 혐의를 받는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여론조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가 “여론조사 표본이 정치적으로 오염돼 있다”고 주장하자, 무소속 한동훈 후보는 “여론조사를 부정하면 승리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선거 막판 여론조사는 더 이상 중립적 데이터로만 머물지 않는다. 숫자를 믿느냐, 의심하느냐 자체가 선거 전략이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을 찾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후보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을 찾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후보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국민의힘이 박근혜를 부른 이유

이런 여론조사 국면 속에서 국민의힘이 꺼낸 또 하나의 카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대구 칠성시장을 찾아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를 지원했다. 2017년 탄핵 이후 선거 유세 현장에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의 등장은 단순한 지원 유세가 아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보수 지지층의 정서적 스위치를 누르는 장면이다. 대구는 보수정치의 상징 공간이고, 박근혜라는 이름은 여전히 일부 보수층에게 강한 결집 효과를 갖는다. 여론조사 상 대구시장 선거가 박빙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박 전 대통령을 전면에 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숫자로는 부족한 결집력을 ‘기억’으로 보완하려는 전략이다.

박 전 대통령의 행보는 대구에 그치지 않았다. 25일에는 대전을 찾아 이장우 국민의힘 대전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고, “이장우 대전시장은 저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지”라고 말했다. 같은 날 충남 공주로 이동해 김태흠 충남지사 후보 지원 일정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MBC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대구에 이어 충청권을 찾았고, 김영환 충북지사 후보와 육영수 여사 생가를 방문한 뒤 이장우 대전시장 후보와 김태흠 충남지사 후보를 만나는 일정도 잡았다.

국민의힘의 박근혜 카드는 ‘과거의 호출’이다. 지방선거가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라지만 막판 승부는 결국 지지층의 투표장 동원으로 귀결된다.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을 통해 “흩어진 보수층이 다시 모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압축한다. 정책보다 정체성, 후보보다 진영, 지역 현안보다 보수의 기억을 앞세우는 방식이다.

‘선거의 여왕’ 문법과 탄핵의 그림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거 보수정치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2006년 지방선거 지원 유세를 하다가 ‘커터칼 피습’ 사건으로 입원한 후 “대전은요?라는 질문으로 상징화된 정치적 장면은 보수 진영 내부에서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퇴원 직후 바로 대전 지원에 나서면서 당시 한나라당이 열세였던 대전시장 판세가 막판 뒤집기를 성공해 결국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국민의힘이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 장면의 재현이다. 박빙 지역에서 보수층의 감정을 다시 깨우고, 투표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박근혜 카드의 핵심이다. 특히 여론조사 상 부동층이 크고, 접전 지역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상징적 인물의 등장이 실제 투표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카드에는 분명한 위험도 있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결집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탄핵의 기억이다. 보수 핵심층에게는 향수와 충성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지만 중도층과 젊은 유권자에게는 과거 회귀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국민의힘이 박 전 대통령을 앞세우는 순간, 선거의 프레임은 지역의 미래에서 과거 정치로 이동할 위험을 안는다.

민주당도 이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충청권 지원 행보에 대해 민주당 쪽에서는 “국정농단의 어두운 그림자”를 불러들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이 보수 결집 효과를 얻는 만큼, 민주당은 중도층에게 “과거로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박근혜 카드는 결집과 역풍이 동시에 가능한 양날의 칼이다.

민주당의 과제, 숫자에 취하지 않는 것

여론조사 상 민주당이 여러 지역에서 앞서거나 선전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민주당 역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지방선거는 여론조사 우위만으로 이기는 선거가 아니다. 지역 조직, 후보 경쟁력, 투표율, 막판 악재, 부동층의 이동이 결과를 흔든다. 특히 여권 우세 전망이 강할수록 지지층의 방심이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의 박근혜 카드는 바로 그 빈틈을 노린다. 민주당 지지층이 “이미 이긴 선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보수층은 “막아야 하는 선거”로 결집할 수 있다. 선거의 심리는 단순하다. 위기감을 느끼는 쪽이 더 움직인다. 여론조사 수치가 민주당에 유리할수록 국민의힘은 위기론을 키우고, 민주당은 오히려 투표 독려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응도 단순한 비판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등장을 “과거 회귀”로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중도층을 설득하기 어렵다. 지방선거의 본령은 지역 행정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카드에 반응하되, 선거의 중심을 다시 지역의 미래, 민생, 행정 역량으로 끌고 와야 한다. 국민의힘이 기억의 정치를 한다면, 민주당은 생활의 정치로 맞서야 한다.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strong>‘</strong>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비 모의 개표 실습<strong>’</strong>에서 구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3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비 모의 개표 실습 에서 구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숫자’와 ‘상징’이라는 두 개의 축

이번 지방선거 막판의 정치문법은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여론조사라는 숫자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라는 상징의 정치다. 숫자는 현재의 민심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지지층의 심리를 흔든다. 상징은 과거의 기억을 부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투표율을 겨냥한다.

국민의힘은 여론조사 상 불리하거나 박빙인 지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보수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론조사 우위에 기대기보다 박근혜 카드가 불러올 과거 회귀 프레임과 지역 미래 프레임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잡아야 한다. 선거 막판 승부는 누가 자신의 지지층을 더 많이 투표장으로 불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는 숫자 이후의 선거다. 공표금지 기간이 시작되면 새로운 여론조사는 사라지지만, 이미 공개된 숫자가 남긴 심리전은 계속된다. 박근혜의 등장은 그 심리전에 던져진 국민의힘의 마지막 상징 카드다.

정치문법은 늘 표면보다 깊은 곳에서 작동한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민심을 밀어붙이는 장치가 된다. 박근혜의 등장은 보수층을 향한 투표 명령에 가깝다. 이번 지방선거의 막판 승부는 결국 ‘누가 끝까지 전략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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