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질문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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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질문의 속도

경기일보 2026-05-26 19:23: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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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래 아나운서·뉴스테이지 대표

 

아나운서에게 좋은 목소리만큼 중요한 것은 듣는 능력이다. 질문의 정확성은 ‘제대로 들었는가’에서 결정된다. 상대의 말 속 맥락과 감정, 말하지 않은 배경까지 읽어낼 때 질문은 힘을 얻는다. BBC 기자들이 취재원의 답변을 끝까지 추적하며 핵심을 짚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질문의 질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깊이 도달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질문은 판단을 앞세우곤 한다. 유튜브 예능 ‘핫이슈지’의 유치원 교사 에피소드는 이를 풍자한다. “선생님이 내 코딱지를 먹었어요”라는 아이의 표현은 맥락 속에서 설명돼야 하지만 순식간에 사실 여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번진다. 교사의 해명에도 학부모는 “사실인가요”, “다른 반은 그런 일 없다던데요”라며 단정적으로 반응한다. 우스꽝스러운 이 장면은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불통을 드러낸다.

 

이처럼 해석이 선행된 질문은 늘어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고 인공지능(AI)과의 대화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시각 안에 갇히기 쉬운 환경에 놓였다. 이런 때일수록 ‘이 질문은 이해를 위한 것인가, 확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상대에게는 “왜 그랬어요”보다 “어떤 상황이었나요”처럼 맥락을 여는 질문이 필요하다. 진짜 목소리는 해석이 멈출 때 비로소 들린다.

 

소통은 결국 멈춤에서 시작한다. 한 교사는 말을 더듬는 아이를 끝까지 기다렸고 아이는 “혼날까 봐 말을 못 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구조자 곁에서 묵묵히 시간을 준 소방관은 그제야 상황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질문에 앞서 감정을 읽어낼 때 말은 늦게 와도 진실은 먼저 도착한다. 침묵과 공백이 때로는 가장 정확한 언어가 된다.

 

동요 ‘기다려줄게’에는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 내가 너의 곁에서 기다려줄게. 친구니까”라는 가사가 있다. 아이의 시각에서 ‘기다림’은 친구라면 당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때론 아이처럼 상대의 속도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친구의 태도’야말로 가장 깊은 질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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