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경영권 분쟁이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계기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쟁점은 지난 2025년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과정에서 외부 자문사인 컨두잇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해당 자문 계약과 경영권 방어수단이 법적으로 정당한 범위 안에 있었는지 여부다. 양측은 각각 '정상적인 주주가치 제고 활동'과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의결권 제한 설계 의혹'을 주장하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9민사부는 최근 지난해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 결의취소 소송과 관련해 고려아연에 컨두잇 관련 문서 제출을 명령했다. 제출 대상에는 컨두잇과 체결한 자문계약서, 업무 수행 내용과 범위를 확인할 수 있는 이메일·제안서·회의록·경과보고서·의견서 등 자료와 자문료 지급 내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은 영풍·MBK 측이 제기한 주총 결의취소 소송 과정에서 내려졌다. 영풍·MBK 측은 최윤범 회장 측이 고려아연의 호주 계열사인 SMH와 SMC를 통해 영풍 지분 10% 이상을 취득하도록 함으로써 상호주 관계를 형성했고, 이를 근거로 2025년 정기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이 위법한 경영권 방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풍·MBK 측은 특히 주주 플랫폼 '액트'(ACT)를 운영하는 컨두잇이 단순한 외부 자문 역할을 넘어 의결권 제한으로 이어진 구조 설계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회사 자금이 특정 경영진의 지배권 방어를 위한 외부 자문에 사용됐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순환지분 구조 형성, 의결권 제한, 자문 계약의 실체가 법원 절차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 자체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통상적인 증거조사 절차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컨두잇과의 계약은 주주총회 운영, 주주 커뮤니케이션, 기업 분석, 주주친화 정책 검토 등을 위한 일반적인 자문 계약이었다"며 "영풍 의결권 제한을 목적으로 한 경영권 방어 설계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고려아연은 해당 자문이 소액주주를 포함한 다양한 주주의 의견을 수렴하고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집중투표제 도입,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등 지배구조 개선 안건 검토 과정에도 활용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방에서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이미 대법원 판단이 내려진 사안과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대법원이 영풍 의결권 제한의 적법성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정기주총 당시 상호주 관계 형성을 통해 영풍 의결권을 제한한 조치가 경영진의 배임행위나 위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모두 확인됐다는 것이다.
반면 영풍·MBK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주총 결의취소 소송의 핵심은 의결권 제한 과정 자체의 적정성과 경영권 방어수단 설계 과정에 대한 검증이라고 주장한다. 즉 형식적 적법성과 별개로 경영진이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고 외부 자문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가적인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양측 주장이 완전히 동일한 법률 쟁점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소송이 상호주 형성 자체의 위법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현재 소송은 의결권 제한 과정에서의 경영 판단과 외부 자문 활용의 적정성까지 포함하는 보다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컨두잇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 개인주주 권익 확대와 주주행동주의가 확산되면서 영향력이 커진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고려아연은 지난해부터 개인주주와의 소통 강화, 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 정책 확대 등을 추진해 왔다. 실제로 정기주총에서는 현 경영진이 제안한 주요 안건들이 국내외 기관투자가와 개인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다.
고려아연은 이를 근거로 "주주친화 정책의 성과가 확인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영풍·MBK 측은 이러한 활동과 별개로 컨두잇이 경영권 방어 전략 수립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별도로 검증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이번 소송이 단순한 자문 계약 문제를 넘어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주주행동주의의 경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려아연과 영풍·MBK 간 분쟁은 지난 2024년 공개매수 국면 이후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십 건의 소송과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고,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둘러싼 공방도 지속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최근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하며 핵심광물 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갈륨·게르마늄 등 전략광물 생산 확대와 미국 내 핵심광물 통합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크루서블'도 추진 중이다. 회사 측은 "지속적인 소송과 공방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영풍·MBK 측은 "경영권 방어 과정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검증하는 것은 모든 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절차"라고 맞서고 있다.
향후 핵심 변수는 법원이 요구한 컨두잇 관련 자료가 실제로 제출될 경우 드러날 계약 내용과 자문 범위다.
문서 검토 결과 컨두잇이 일반적인 주주 커뮤니케이션과 지배구조 개선 자문 수준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영풍 의결권 제한 및 상호주 구조 형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는지가 향후 재판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전망이다.
또 다른 변수는 영풍과 MBK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 관련 경영협력계약이다. 고려아연 측은 해당 계약서가 9300억원 규모 주주대표소송의 핵심 자료임에도 법원의 제출 명령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풍·MBK 측 역시 관련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인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추가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쟁은 단순한 경영권 다툼을 넘어 국내 자본시장에서 경영권 방어수단의 허용 범위, 행동주의 플랫폼의 역할, 그리고 회사 자금이 활용된 외부 자문의 적정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법원의 최종 판단이 향후 국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의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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