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중심으로 산업 질서가 재편되면서 기업 경쟁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 실적이나 외형 성장보다 미래 산업 주도권과 전략 방향성 그리고 총수 리더십의 실행력이 기업 가치와 존재감을 좌우하는 시대다.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LG는 오랜 기간 안정적 지배구조와 조용한 경영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AI 전환기 속 시장과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제 ‘안정적인 기업’을 넘어 ‘산업 판도를 이끌 기업’을 요구하고 있다. 본지는 [AI 권력지도] 시리즈를 통해 구광모 회장 체제의 LG가 AI 산업 재편 국면에서 어떤 방향성과 전략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 성장 서사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편집자주>
|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글로벌 산업 질서가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업 경쟁의 기준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안정적인 실적과 지배구조, 꾸준한 현금창출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최근에는 AI 산업 내 위치와 미래 성장성, 산업 지배력이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재계와 투자업계는 이제 LG가 어떤 ‘대표 성장축’을 시장에 보여줄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라는 선명한 키워드를 확보했지만 LG는 아직 시장을 단번에 설득할 상징적 사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LG전자는 생활가전과 전장 사업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webOS 플랫폼과 로봇, AI홈, 스마트팩토리 등 미래 사업 확대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사업은 많지만 무엇이 LG의 결정적 미래인지 선명하지 않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장은 단순히 실적이 안정적인 기업보다 AI 시대 산업 질서를 바꿀 기업을 더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라며 “LG는 기본 체력은 강하지만 아직 투자자들에게 강렬한 대표 서사를 심어주지는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 시대 재평가 받는 LG의 ‘숨은 자산’
다만 업계에서는 LG가 AI 시대 핵심 경쟁에서 완전히 멀어진 기업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오히려 AI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새롭게 재평가될 수 있는 사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HVAC 사업이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함께 서버 발열과 전력 효율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냉각 솔루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칠러와 냉각수 분배장치(CDU) 등 열관리 기술이 AI 시대 핵심 인프라 사업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HVAC 사업을 미래 B2B 핵심 축으로 키우고 있다. 기존 생활가전 중심 이미지를 넘어 AI 데이터센터와 산업 인프라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EXAONE)’ 역시 시장이 주목하는 분야다. LG는 단순 소비자 서비스형 AI를 넘어 산업 현장과 제조 분야에 특화된 AI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계열사와의 연계 확대도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G는 조용히 준비하는 스타일에 가까운 그룹”이라며 “AI 시대에도 당장 화려한 메시지보다는 실제 사업 연결성과 수익성을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 잘하는 기업’의 역설
문제는 시장의 기대 수준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AI 시대 글로벌 투자자들은 ‘모든 사업을 고르게 잘하는 기업’보다 특정 산업 질서를 주도하는 기업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 역시 대부분 선명한 핵심 축을 중심으로 시장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GPU, TSMC는 첨단 파운드리,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 플랫폼처럼 대표 산업 서사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반면 LG는 생활가전과 전장, 플랫폼, 로봇, 스마트팩토리, AI홈 등 사업 범위가 넓다. 안정성 측면에서는 장점이지만 AI 시대 자본시장이 원하는 ‘압도적 상징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LG는 리스크 관리와 안정성 측면에서는 강점이 분명한 기업”이라며 “다만 시장은 지금 ‘무엇을 가장 잘하는가’보다 ‘어떤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필요한 건 ‘LG만의 AI 서사’
재계에서는 향후 구광모 회장의 과제가 결국 LG만의 대표 AI 성장축을 시장에 얼마나 선명하게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활가전과 전장, HVAC, AI 솔루션을 하나의 플랫폼 전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여부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단순히 사업을 많이 하는 기업이 아니라 AI 시대 새로운 산업 구조를 주도할 기업이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AI 시대에는 기술력 자체보다 시장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LG 역시 안정적 그룹 이미지를 넘어 ‘왜 지금 LG인가’를 설명할 상징적인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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