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통화 가치가 과도하게 낮아졌다는 중앙은행 수장의 이례적 발언이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산자이 말호트라 인도중앙은행(RBI) 총재는 현지 매체 민트와의 대담에서 루피화가 고평가 상태가 아니며 오히려 실제 가치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발언의 배경에는 급변한 국제 정세가 자리한다. 지난 2월 말 촉발된 중동 무력 충돌이 장기전으로 번지면서 달러 대비 루피화 가치는 연초 이후 약 6% 급락했고, 다음 달 5일로 예정된 기준금리 결정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말호트라 총재는 특정 환율 목표치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시장 내 투기적 거래에 대해서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천명했다. 약 1천55조원에 달하는 7천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언급하며 추가적인 정책 도구 역시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니르말라 시타라만 재무장관도 최근 유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동 사태 이후 원유 수입 부담이 급증해 대외적 압력이 존재하지만 자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견고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에너지 조달 차질이 인도 경제를 옥죄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과 치솟은 원유 도입 비용이 겹치면서 국제수지 적자폭도 확대되는 추세다. 달러당 루피화 시세는 지난주 사상 최저인 96.96까지 곤두박질쳤으나, 미국-이란 간 휴전 기대감과 금리 인상 전망이 부각되며 일부 회복세를 보였다. 전날 기준 95.4로 전 거래일 대비 0.3% 상승했고, 최근 사흘간 누적 상승폭은 1.5%에 이른다.
시장 전문가들은 총재의 공개 발언을 통화 방어 의지 강화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외환 애널리스트 디라즈 님은 중앙은행 수장이 자국 통화 가치를 직접 거론한 것 자체가 심각한 국제수지 압박 속에서 가치 하락을 저지하려는 적극적 노력의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RBI의 시장 개입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국영 에너지 기업들이 이달에만 네 차례에 걸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올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중앙은행 목표인 4%를 밑돌았으나, 도매물가는 8.3%까지 뛰어올라 두 배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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