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연의 작가 스토리] 루벤스·벨라스케스, 두 화가에 대하여③ 벨라스케스 ‘술꾼들’에 이어
[문화매거진=강다연 작가] 벨라스케스의 전성기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녀들’에 대해 지난 칼럼에 이어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 작품을 보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그림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으며, 당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 중 하나였다. 나 역시 전공 시절 자주 접했던 작품이라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과거 알카사르 궁전 화재 당시 급히 대피되는 과정에서 캔버스 양측이 손상되었고, 그로 인해 현재는 원래보다 화면 폭이 좁아진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작품 속 공간은 벨라스케스의 아틀리에로, 본래는 까를로스 왕자가 어린 시절 사용하던 방이었다. 왕자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후, 국왕이 벨라스케스에게 작업 공간으로 내어주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화가 자신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화면 왼편 커다란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고 서 있는 인물이 바로 벨라스케스 본인이다.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우리와 마주한다. 그리고 중앙에는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가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반응과 움직임 역시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처음부터 ‘시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것이 아니었다. 왕실 기록에서는 처음에 ‘가족들’이라고 불렸으며, 이후에는 ‘펠리페 4세의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었다. 왕실 가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는 점에 중심이 있었지만, 훗날 프라도 미술관 으로 옮겨진 뒤 현재의 제목인 ‘시녀들’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 왕실 초상화의 방식과 전혀 다르게 접근했다는 점에 있다. 일반적으로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권위를 강조하는 방식이 많았지만, 벨라스케스는 오히려 왕과 왕비를 거울 속 희미한 모습으로만 등장시켰다.
덕분에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지금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의 시선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연출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고, 국왕의 승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도였다.
또한 이 작품은 왕실의 공식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인 분위기까지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동시에 관찰자와 주인공의 경계를 흐리는 모호한 연출은 이후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다양한 연구와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열린 결말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왕의 시선을 상상하고, 누군가는 화가의 존재를 주목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림 속 인물들의 관계와 분위기에 집중한다.
17세기 작품임에도 현대미술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는 점 역시 놀랍다. 무엇보다 작품 속 벨라스케스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관람객과 직접 소통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작가가 자유롭게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대상과 주제를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다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벨라스케스는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화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가치를 알아본 국왕 역시 대단한 안목과 열린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해와 지지가 있었기에 벨라스케스의 작품 세계 또한 더욱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화폭에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관객에게 정답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각자의 해석을 남겨두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과 소통하는 글과 그림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작가 강다연이 될 것을 오늘도 다짐하며, 다음 칼럼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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