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중독·고통 유발하는 콘텐츠에 아동 지속 노출"
스타머 총리에 도전하는 노동당 잠룡 상당수, 강경 규제 주장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영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의료 전문가 단체가 키어 스타머 총리에게 16세 미만 아동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전면 금지토록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의학한림원(Academy of Medical Royal Colleges)은 26일 마감되는 정부 협의를 위해 제출한 보고서에서 아동들이 "증오스럽고 중독적이며 심각한 고통을 일으키는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며 이런 조치를 권고했다.
의학한림원은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 사용 문제에 관한 의료계의 입장은 흡연의 유해성이나 자동차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필요성과 맞먹는 수준으로 통일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의사들이 "급진화된 아동들의 물결(wave of radicalised children)"을 목격하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유해 콘텐츠를 시청한 후 동반 자살을 모의하거나 반려동물을 죽인 충격적 사례들을 지적했다.
의학한림원은 의사들이 아동을 초진(初診)할 때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해악을 일상적으로 점검하도록 권고했다.
한림원이 의사 4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온라인 콘텐츠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이나 신체적 상해를 입은 아동을 치료한다고 답했다.
아동이 자해하거나 "극단적 음란물에 나오는 행동을 따라 해서" 발생한 사망과 부상 사례들도 의사들로부터 보고됐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한 응급의학과 의사는 최근 6개월간 소셜 미디어와 관련된 일련의 사례들을 보고했다.
그중에는 여러 학교 학생과 가상 동반자살을 약속한 후에 응급실에 온 아동, 틱톡에서 약물 과다 복용 방법을 접한 아동, 고문 영상을 본 뒤 무기로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아동이 있었다.
또 다른 의사는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한 10세 소년이 잔혹물과 살인에 심하게 집착하게 돼 가족이 기르던 반려동물 비둘기를 죽이고 혈관을 보겠다며 자해를 한 경우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다른 한 의사는 소셜미디어 중독으로 침대에 계속 누워 있다가 욕창이 생긴 아동을 치료했다고 보고했다.
스타머 총리는 당초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사용 전면 금지에 반대했으나, 이후 이런 조치에 "열린 마음"이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이런 조치는 작년 말부터 호주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현재 스타머 총리는 노동당 대표직과 총리직을 노리는 여러 거물급 당내 인사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으며, 이들 잠룡 중 상당수는 아동 보호를 위한 강력한 소셜 미디어 규제 조치 도입을 촉구하며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더타임스는 익명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스타머 총리가 6월 18일로 예정된 메이커필드 보궐선거 이전에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메이커필드 보궐선거는 현재 맨체스터 광역시장인 노동당 소속 거물 정치인인 앤디 버넘이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당 지역구의 노동당 의원이 중도 사퇴를 하면서 치러지게 됐다.
만약 인기는 높지만 지자체장이어서 원외 인사였던 버넘이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하원에 재입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대표직과 총리직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버넘은 차기 당대표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스타머를 앞서고 있다.
버넘뿐만 아니라 앤절라 레이너 전 부총리와 웨스 스트리팅 전 보건부 장관 등 노동당의 대권 잠룡 여러 명이 16세 미만 소셜 미디어 금지 또는 강력한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스트리팅 전 장관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셜미디어는 담배처럼 취급되어야 한다. 극도로 중독성이 강하고 건강에 해로우며, 빅테크(기술 대기업)들은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거대 담배 기업들의 수법을 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을 돌려줘야만 한다"며 "16세 미만 금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트리팅 전 장관은 스타머 총리의 당 운영 리더십에 반발해 5월 초에 각료직을 사퇴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전국아동학대방지협회(NSPCC), 걸가이딩(Girlguiding), 왕립소아과학아동보건학회(RCPCH) 등 주요 아동 관련 단체들은 단순히 연령 제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더욱 강력한 규제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디지털 동의 연령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이런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맞춤형 광고, 프로파일링, 조작적 디자인 요소 등을 대상으로 한 금지조치를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소셜미디어, AI 챗봇, 일부 게임 시스템 등 개인화된 서비스에 대해 13세 미만의 접근을 전면 금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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