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 부족으로 멈춘 국민투표, 해외 유권자의 한 표도 사라졌다
재외국민 투표 무산이 남긴 참정권의 공백
신청까지 마친 재외국민들, 투표하지 못한 허탈감 커져
[포인트경제] 선거철이 다가오면 거리는 먼저 반응한다. 정당의 현수막이 걸리고, 정치인의 발언 하나하나가 뉴스가 된다. 한국 정치권도 다시 선거의 계절로 들어서고 있다. 여야는 각자의 명분을 앞세우고 있고,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가 앞으로의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국면에서 조용히 실망한 사람들이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이다. 특히 개헌 국민투표 참여를 기대했던 재외국민들 사이에서는 허탈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국회는 지난 5월 7일 본회의에서 헌법개정안을 표결했지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당시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었고, 개헌안 의결에는 재적 의원 3분의 2인 191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제 투표 참여 의원은 178명에 그쳤다. 의결 정족수에 13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5월 7일 개헌안 처리 무산된 국회 본회의장 모습/MBC NEWS 캡처(포인트경제)
이번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재외국민들도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될 예정이던 개헌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공관별로 재외국민투표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전 신청 접수까지 진행했지만, 개헌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관련 투표도 함께 무산됐다.
도쿄 신주쿠구(新宿区)에 거주하는 60대 주부 A씨는 “이번에 투표가 무산돼 정말 아쉽다. 한 표를 행사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B씨도 “이번 국민투표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신청했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을 다녀와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재외국민에게 투표는 단순한 정치 행위만은 아니다. 한국을 떠나 살고 있어도 한국 국적자로서 정치적 결정에 참여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세금, 병역, 국적, 가족, 부동산, 연금, 교육 문제까지 해외 거주자 역시 한국 정치와 제도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다. 그래서 한 표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참여의 통로가 닫힌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의 재외국민투표 미실시 안내문ⓒ포인트경제
물론 이번 국민투표 무산을 특정 정당의 유불리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개헌은 헌법을 바꾸는 문제인 만큼 폭넓은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재적 의원 3분의 2라는 높은 문턱도 그런 이유로 존재한다.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없도록 만든 장치다.
다만 정치적으로 보면 재외국민 투표가 민주당계 정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해 온 흐름은 분명히 있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재외투표는 국내 전체 표심과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25년 제21대 대선 재외투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약 66%,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약 21%를 얻었다. 2022년 대선 재외투표에서도 민주당계 후보가 우세했다.
그 이유를 단순히 “해외는 진보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외국민 사회 안에도 지역, 세대, 직업, 체류 목적에 따라 정치 성향은 다양하다. 기업 주재원이 많은 지역과 유학생·전문직이 많은 지역의 분위기도 다를 수 있다. 일본 내에서도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요코하마(横浜) 등 대도시권과 지역 교민사회의 분위기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해외 거주자들은 외교, 민주주의, 국제관계, 한일관계와 같은 이슈를 비교적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국내 정치가 외교 문제로 이어지고, 외교 문제가 다시 해외 생활의 체감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재외투표 결과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
이번 국민투표 무산은 민주당에 유리한 표가 사라졌다는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재외국민의 정치 참여가 또 한 번 제도의 불확실성 앞에서 멈췄다는 점이다. 신청을 마치고 기다리던 유권자에게 “투표는 열리지 않는다”는 통보는 작지 않은 상실감으로 남는다.
선거는 숫자의 싸움이지만, 민주주의는 참여의 경험으로 유지된다. 의결 정족수가 부족해 멈춘 것은 개헌안만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한국 정치를 바라보며 한 표를 준비했던 사람들의 기대도 함께 멈췄다.
정치권이 재외국민 표심을 유불리의 계산으로만 바라본다면, 이번 논란은 금세 잊힐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유권자들이 느낀 허탈감까지 읽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재외국민 투표는 선거 때마다 동원되는 부수적 장치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국경 밖 국민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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