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구 고려대 교수(위성통신포럼 위원장)는 현 상황을 “총성 없는 우주 영토 전쟁”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국방부, 방위사업청, 우주항공청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협의 체계를 가동하며 독자 위성망 구축과 국제 협력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에 이데일리는 강 교수의 통찰을 통해 대한민국 우주 통신 주권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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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선점보다 무서운 ‘실제 발사’… 우주 판도 바꾼 ITU의 실행 규제
저궤도 위성 시대의 레이스는 더 이상 단순한 ‘종이 서류 먼저 내기’ 게임이 아니다. 위성통신 사업을 하려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어떤 궤도에 몇 개의 위성을 배치할지, 주파수는 어떻게 쓸 것인지 사용 계획을 사전 등록(Filing)해야 한다. 신청 순서에 따라 우선권이 부여되는 구조지만, 과거처럼 서류만 던져놓고 자리를 찜하는 ‘알박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ITU의 BIU(Bring Into Use) 규정에 따라, 위성망 사업자는 등록 후 통상 7년 이내에 실제 위성을 발사해 주파수 운용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스타링크처럼 수백~수천 기를 떼로 띄우는 비정지궤도 대형 위성망은 기한 만료 후에도 일정 기간 내에 전체 신청 수량의 10%, 50%, 100%를 단계적으로 배치해야 하는 ‘마일스톤 규제’를 충족해야 한다. 약속된 시점까지 실제 위성을 채워 넣지 못하면 어렵게 확보한 영토(권리 범위)가 강제로 축소된다. 사실상 ‘움직이고 실행한 만큼만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냉혹한 규제 체계다.
강 교수는 “저궤도 위성 시대는 먼저 신청한 기업이 아니라, 실제로 쏘아 올리고 운영 능력을 증명한 사업자가 주인이 되는 구조”라며 “결국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과감하게 실행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즉, 등록 단계부터 긴 안목의 정교한 실행 전략까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속도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우주 강국들이 이미 만 단위의 대규모 위성망 구축에 나선 반면, 한국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연구개발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선 국가 안보 및 군사적 목적만으로 최소 수백 기의 독자 위성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이는 기술 방식이나 구체적인 서비스 범위에 따라 소요 수량이 크게 달라지므로 아직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 국가 계획인 ‘2030년까지 단 2기 발사’로는 글로벌 레이스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단순한 기술 실증 수준의 상징적 발사를 넘어,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위성 확보 전략을 지금 당장 전면에 올려놓고 빠른 실행 계획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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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비용 장벽… 답은 ‘국제 협력’ 기반 망 구축
저궤도 위성망을 대규모로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은 단연 비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타링크 위성 1기당 제작비가 재사용 가능 발사체와 대량 생산 공정에 힘입어 수억 원 수준까지 낮아졌다는 추정도 나오지만, 이는 로켓 발사 비용과 지상국 건립, 운영 인프라 등을 모두 제외한 순수 위성체만의 이야기다.
실제로 수백에서 수천 기 규모의 촘촘한 위성 네트워크를 완성하려면 최소 수조 원 단위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강 교수는 “저궤도 위성망은 과가에 비해 용량 대비 구축·운용 비용이 크게 낮아졌지만, 위성이 지구 궤도를 공전하는 특성상 대규모 위성 배치와 지속적인 교체가 필요해 투자 부담이 매우 크다”고 했다.
한국 단독으로 이 비용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면, 국제 협력 기반 구축이 답이다. 이미 유럽연합(EU)은 회원국 간 자립적 보안 통신을 위해 저궤도 위성 프로젝트인 ‘IRIS²(아이리스 스퀘어)’ 사업을 (강력히) 추진 중이다. 일본 역시 소프트뱅크 등을 중심으로 저궤도 위성망과 지상 20km 상공에 기지국을 띄우는 성층권 통신 플랫폼(HAPS)을 결합한 복합 입체 전략을 다지고 있다.
강 교수는 “세계적으로 스페이스X와 아마존 정도를 제외하면, 위성망은 이제 단일 국가나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초대형 사업이 됐다”며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갈등으로 해저 케이블 절단 및 고립 우려를 안고 있는 대만, 그리고 위성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과 궤도·주파수 협력체를 구성해 공동 대응하는 얼라이언스(동맹) 전략이 매우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제언했다.
◇흩어진 국내 역량, 삼성·한화·KT SAT ‘국가대표팀’으로 묶어야
국내 산업 생태계의 체질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지금처럼 개별 기업들이 파편화되어 각자도생하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우주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저궤도 위성 산업은 개발부터 대량 생산, 발사,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철저한 ‘규모의 경제’ 산업이기 때문이다.
강충구 교수는 국내 유일의 위성 운영 경험을 가진 KT SAT,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네트워크 기술력을 갖춘 삼성전자, 그리고 독보적인 우주·방산 인프라를 보유한 한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까지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국가대표급 메가 콘소시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위성통신은 통신 인프라, 우주 발사체, 방위산업이 따로 움직여서는 절대로 글로벌 경쟁력이 나올 수 없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이들 핵심 기업의 역량을 하나로 묶는 초대형 민간 연합체 전선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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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망은 통신 그 이상… AI·방산과 연결되는 ‘미래 대형 플랫폼’
저궤도 위성망이 확보되면 이는 단순한 통신 서비스를 넘어 무궁무진한 미래 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우주 데이터센터’다. 최근 AI 열풍과 함께 지상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냉각 문제가 심각한 인류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태양광 에너지가 무한하고 극저온 환경을 갖춘 우주 공간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위성 간 초고속 레이저 통신(ISL)이나 위성 편대비행 기술은 현재 상용화 초기 및 실증 단계에 있으며, 우리가 반드시 선점해야 할 미래 핵심 기술이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방산 분야와의 시너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이 국산 전투기나 무기 체계를 해외에 수출할 때, 우리가 구축한 군용 위성통신 서비스와 주파수를 패키지로 묶어 함께 판매하는 ‘우주 플랫폼 패키지 수출’ 모델이다.
하드웨어 단품 판매를 넘어 우주 영토와 연계된 고부가가치 플랫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수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열리는 셈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역할 역시 단순한 연구개발(R&D) 예산 쪼개기 지원을 넘어, 우주 산업 전체의 판을 설계하는 전략적 컨트롤타워로 확대되어야 한다.
강 교수는 “지금은 AI와 우주를 별개의 산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미래에는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6G 저궤도 위성망’이 결합해 움직이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거시적인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유기적으로 묶는 생태계를 속도감 있게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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