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피하기 위해 성과급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그 후폭풍이 노동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성과가 나면 이익 중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떼어 달라는 대기업 노조의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그 성과가 과연 누구 몫이냐는 반론도 동시에 제기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최근 반도체 부문 성과급과 관련해 영업성과 일부를 장기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내용의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조합원 찬반투표 절차가 남아 있지만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총파업을 막기 위해 사측이 상당 부분 양보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삼성전자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성과급은 회사가 경영 성과와 업황, 투자 계획, 현금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급하는 보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계기로 성과급이 이익 배분의 고정 권리처럼 인식되면 대기업 임금협상 판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사실상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아니냐는 말이 내부에서 나온다"며 "앞으로 노조가 단순히 성과급을 더 달라는 수준을 넘어 영업이익 몇 %를 떼어 달라, 몇 년간 제도화해 달라, 상한을 없애 달라는 식으로 요구 수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과급 제도화 요구는 이미 일부 대기업 노조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조선 등 업황 변동성이 큰 산업일수록 호황기에 발생한 초과이익을 임직원에게 더 많이 배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는 불황기 투자 여력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재원을 임금성 비용으로 고정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기업 성과는 특정 사업부 직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지적도 힘을 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와 장기간 연구개발, 주주 자본, 협력사 생태계, 정부 세제 지원과 인프라 정책이 결합된 산업이다. 호황기 이익을 내부 노동자 보상으로 우선 배분하는 구조가 굳어지면 주주와 협력사, 납세자 관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한 개인투자자는 "주가는 몇 년째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았고 배당도 주가 손실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주주는 손실을 그대로 떠안는데 직원들은 회사가 돈을 벌면 먼저 성과급으로 가져가는 구조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주주는 "반도체 투자는 주주 자본과 정부 지원, 협력사 생태계가 함께 만든 결과인데 성과가 났다고 내부 직원들끼리 먼저 나눠 갖는 모양새가 됐다"며 "불황 때 주주가 손실을 감수한 만큼 호황 때 성과 배분에서도 주주 환원과 미래 투자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다. 한쪽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수억 원대 성과급을 논의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폭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매년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성과급 제도화가 확산될수록 대기업 내부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원청과 협력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격차가 더 선명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성과급이 임금협상의 새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 협력사 인건비와 납품단가 논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원청 대기업 내부에서는 초과이익 배분 요구가 커지는 반면 협력사는 원가 상승과 인력난을 떠안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산업 생태계 안에서도 성과 배분의 순서와 몫을 둘러싼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선례가 국내 산업계에 '하한선'처럼 작동하는 현실이 있다"며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중견기업이나 수익성이 낮은 업종에서는 유사한 요구가 제기될 때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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