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서 ‘선별 보상’으로···수출·필수약 잡는 제도 개편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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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인하서 ‘선별 보상’으로···수출·필수약 잡는 제도 개편 본격화

이뉴스투데이 2026-05-25 13: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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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약가 정책이 단순 인하 중심에서 수출 경쟁력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약가 정책이 단순 인하 중심에서 수출 경쟁력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의 약가 정책이 단순 인하 중심에서 수출 경쟁력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제네릭 약가는 낮춰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줄이되, 연구개발(R&D) 투자와 국내 생산, 필수 약 공급에 기여하는 기업에는 약가 우대를 확대하는 구조다. 대외적으로는 공식 약가를 유지하면서 국내 건강보험에는 실제 합의 약가를 적용하는 약가유연계약제도가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약가유연계약제가 다음 달 1일부터 도입된다. 약가유연계약제는 대외 공식 고시 가격인 ‘상한금액표 금액’과 국내 건강보험 청구·심사에 적용되는 ‘별도합의 상한금액’을 다르게 설정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실제 합의 약가를 적용해 건강보험 부담을 낮추고, 해외에서는 공식 고시가를 유지해 수출 약가 하락을 막는 방식이다.

첫 적용 대상은 8개사 12개 품목이다. 한국아스텔라스제약의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정’, 한국애브비의 중증 건선 치료제 ‘스카이리치’,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 치료제 ‘파슬로덱스’ 등이 포함됐다. 국내 제약사 중에서는 대웅제약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펙수클루’와 당뇨 신약 ‘엔블로정’, 펙수클루 위임 제네릭 일부 품목이 약가유연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도가 국산 신약의 수출 약가 방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건강보험 약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수입국은 한국 약가를 참고해 자국 약가 협상에 활용해 왔다. 국내에서 낮은 약가를 받으면 해외 협상에서도 불리해지는 구조였던 셈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신약 출시 지연 문제도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한국에서 낮은 약가가 책정될 때 다른 국가 약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국내 출시를 늦추는 사례가 있었다. 약가유연계약제가 적용되면 국내 환자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글로벌 약가 체계를 훼손하지 않는 절충이 가능해진다.

약가제도 개편은 제네릭 시장에서도 진행된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복제약 가격 산정률을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53.55%에서 45%로 낮추는 내용의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일부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새로 출시되는 제네릭은 기존보다 낮은 약가로 건강보험에 등재된다. 정부는 절감된 재정을 필수의료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대신 R&D와 필수약 공급에 기여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강화한다. 기존 혁신형 제약기업보다 범위를 넓힌 ‘준혁신형 제약기업’ 기준을 신설해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기업에도 약가 우대를 제공한다. 수익성이 낮아 공급 중단 우려가 있는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에는 ‘수급 안정 선도기업’ 지위를 부여해 추가 혜택을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아용 의약품과 항생제 주사제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약가 가산도 확대된다. 해외 원료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제조소에서 원료를 직접 합성하는 경우도 우대 대상에 포함된다. 약가 가산 적용 기간은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복지부는 단순 약가 인하가 아니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과 제약 산업 경쟁력 강화를 함께 고려한 개편이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의 배경에는 의료현장의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이 있다. 최근 항생제, 소아 의약품, 항암제, 마취제, 수액제 등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의 공급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특정 약제를 확보하지 못해 대체의약품 사용이 늘고, 약 교체 과정에서 의료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제약업계는 낮은 약가 구조와 생산 유인 부족을 공급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 상당수는 수십 년째 낮은 약가에 묶여 있지만, 원료비와 인건비, 물류비는 코로나19 이후 크게 올랐다. 일부 품목은 생산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초 항암제다. 대한혈액학회는 지난 3월 도노마이신, 빈블라스틴, 블레오마이신, 5-플루오로우라실 주사제 등 기초 화학항암제의 공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5-FU와 시스플라틴 등 일부 항암제의 보험약가는 5000원 내외 수준이다. 의료계에서는 가격이 낮아 수익이 나지 않는 오래된 항암제에서 공급 문제가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 약가 기준을 최대 10% 인상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내복제 기준은 525원에서 578원으로, 주사제는 5257원에서 5783원으로 상향해 오는 8월부터 시행한다. 퇴장방지의약품을 직권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와 정책가산 제도도 마련해 기업의 생산 지속을 유도할 계획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10% 인상만으로 구조적 공급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원료비와 제조비 상승 폭이 이미 큰 데다, 중국·인도 의존도가 높은 원료의약품 공급망도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원가 연동형 약가 체계, 장기 계약 기반 가격 보장, 국가 비축 확대, 원료의약품 국산화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만으로는 필수약 공급과 신약 개발을 동시에 끌고 가기 어렵다”며 “필수의약품은 국가가 일정 수준 생산 안정성을 책임지고, 혁신 신약은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약가 정책이 정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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