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픽] “탄소에도 관세 붙는 시대”… 세계은행이 흔든 글로벌 무역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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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픽] “탄소에도 관세 붙는 시대”… 세계은행이 흔든 글로벌 무역 질서

뉴스로드 2026-05-25 10:14: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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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이산화탄소 포집·저장시스템(OCCS)이 탑재된 HMM의 22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선상 이산화탄소 포집·저장시스템(OCCS)이 탑재된 HMM의 22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세계 경제는 이제 석유 가격만 계산하지 않는다. 철강 1톤(t)을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됐는지, 알루미늄과 비료를 생산하는 동안 얼마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는지까지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탄소가 환경 담론을 넘어 무역과 산업, 금융과 공급망을 움직이는 새로운 가격 체계로 올라서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은행(WB)이 공개한 탄소가격 구조 비교 그래프. 왼쪽은 글로벌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를 보여준다. 2024년 실제 거래된 탄소크레딧 시장 규모는 약 5억3500만달러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2025년 미래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선투입된 자금은 120억~160억달러 규모로 추산됐다. 가운데는 각국 정부가 배출권거래제(ETS)와 탄소세를 통해 확보한 재정 규모다. 2025년 기준 연간 수입은 1070억달러(약 146조원)에 달했다. 오른쪽 원형 그래프는 화석연료 보조금 규모를 나타낸다. 국제사회가 여전히 석유·가스·석탄 소비에 9000억달러(약 1220조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은행은 이를 두고 탄소가격 확대 흐름과 화석연료 보조금 체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구조’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에 공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세계은행(WB)]
세계은행(WB)이 공개한 탄소가격 구조 비교 그래프. 왼쪽은 글로벌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를 보여준다. 2024년 실제 거래된 탄소크레딧 시장 규모는 약 5억3500만달러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2025년 미래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선투입된 자금은 120억~160억달러 규모로 추산됐다. 가운데는 각국 정부가 배출권거래제(ETS)와 탄소세를 통해 확보한 재정 규모다. 2025년 기준 연간 수입은 1070억달러(약 146조원)에 달했다. 오른쪽 원형 그래프는 화석연료 보조금 규모를 나타낸다. 국제사회가 여전히 석유·가스·석탄 소비에 9000억달러(약 1220조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은행은 이를 두고 탄소가격 확대 흐름과 화석연료 보조금 체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구조’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에 공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세계은행(WB)]

▲탄소가격, 산업 규제 넘어 통상 무기 됐다

24일(현지시간) 세계은행(WB)의 ‘2026 탄소가격 동향(State and Trends of Carbon Pricing 2026)’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9%가 배출권거래제(ETS)와 탄소세 같은 직접 탄소가격 체계 안으로 들어갔다. 시행 중인 제도만 87개다.

10년 전만 해도 흐름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2016년 당시 탄소가격제가 적용된 범위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2% 수준에 그쳤고 시행 중인 제도 역시 39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일본·베트남 같은 아시아 제조업 국가들까지 국가 단위 ETS를 가동하면서 탄소가격 체계가 글로벌 산업 질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에 WB가 던지는 핵심은 탄소가격이 더 이상 환경 규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탄소는 이제 무역 장벽이자 산업 정책이며 국가 재정을 움직이는 새로운 경제 수단으로 올라섰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본 시행 단계에 들어갔다.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 같은 탄소집약 산업 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제품 가격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 비용까지 함께 증명하고 부담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인도·일본도 뛰어들었다, 아시아 제조업 흔드는 ETS 경쟁

EU CBAM의 현재 적용 범위 자체는 아직 크지 않다. WB는 EU CBAM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0.3~0.5% 정도만 직접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영향력은 수치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알바니아는 EU ETS 가격 흐름에 맞춰 자국 탄소세 체계를 손질했고, 말레이시아는 철강 산업 중심 탄소세 도입 배경 가운데 하나로 CBAM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영국도 내년 자체 CBAM 시행을 예고했다. 태국·호주·캐나다·대만 역시 유사 제도를 검토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탄소가격 체계의 무게중심이 탄소세에서 배출권거래제(ETS)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이후 새로 시행된 탄소세는 26개, ETS는 21개 늘었다. 숫자만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시장 영향력은 ETS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ETS 적용 범위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 수준에서 26%까지 확대됐다. 반면 탄소세 적용 범위는 4~5% 수준에 머물렀다. ETS가 이제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글로벌 제조업과 에너지 산업의 기준 가격 역할까지 맡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인도의 움직임은 상징성이 크다. 인도는 올해 국가 탄소배출권거래제(CCTS)를 출범시키며 철강·시멘트·발전 같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제도 안으로 편입했다. 적용 규모만 약 4억7700만톤(tCO2e)에 이른다. 일본도 움직였다. 일본 정부는 GX-ETS를 올해부터 의무 단계로 전환했다. 일본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대상이다. WB는 중국 ETS와 EU ETS, 한국 ETS에 이어 일본과 인도의 ETS 역시 세계 최대 규모 탄소시장 가운데 하나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이 탄소가격 체계를 본격적으로 산업 구조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세계은행(WB) ‘2026 탄소가격 동향(State and Trends of Carbon Pricing 2026)’ 핵심 인포그래픽. 왼쪽 그래프는 세계 평균 탄소가격이 2016년 톤당 10달러 수준에서 2026년 21달러까지 상승한 흐름을 보여준다. 가운데 그래프는 ETS와 탄소세를 통해 각국 정부가 거둬들인 재정 수입이 2025년 1070억달러(약 146조원) 규모까지 확대됐음을 나타낸다. 오른쪽 그래프는 탄소배출권 시장 변화 흐름을 담고 있다. 국제항공 탄소상쇄제도(CORSIA) 인증 크레딧 가격 프리미엄과 탄소크레딧 발행 증가, 자발적 시장 중심 구조 등을 시각화했다. 하단에는 현재 정책이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3분의 1이 ETS 또는 탄소세 체계 안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전망도 담겼다. [자료=세계은행(WB)]
세계은행(WB) ‘2026 탄소가격 동향(State and Trends of Carbon Pricing 2026)’ 핵심 인포그래픽. 왼쪽 그래프는 세계 평균 탄소가격이 2016년 톤당 10달러 수준에서 2026년 21달러까지 상승한 흐름을 보여준다. 가운데 그래프는 ETS와 탄소세를 통해 각국 정부가 거둬들인 재정 수입이 2025년 1070억달러(약 146조원) 규모까지 확대됐음을 나타낸다. 오른쪽 그래프는 탄소배출권 시장 변화 흐름을 담고 있다. 국제항공 탄소상쇄제도(CORSIA) 인증 크레딧 가격 프리미엄과 탄소크레딧 발행 증가, 자발적 시장 중심 구조 등을 시각화했다. 하단에는 현재 정책이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3분의 1이 ETS 또는 탄소세 체계 안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전망도 담겼다. [자료=세계은행(WB)]

▲탄소가격, 에너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탄소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세계 평균 탄소가격은 2016년 톤당 10달러 수준에서 올해 21달러 가까이로 두 배 뛰었다. 유럽·중앙아시아 지역 평균 가격은 68달러 수준까지 올라왔다. 북유럽 국가는 이미 탄소를 사실상 ‘고비용 자원’ 수준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스웨덴·노르웨이·스위스는 톤당 100달러를 웃도는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올해 탄소세를 80% 인상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31% 올렸다. 탄소를 얼마나 싸게 배출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배출하며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으로 올라서고 있다는 의미다.

탄소가격은 정부 재정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ETS와 탄소세가 거둬들인 정부 수입은 1070억달러(약 146조원)를 넘어섰다. 2016년 30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규모가 10년 만에 세 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WB는 올해 중동 지정학 리스크와 호르무즈 해협 불안도 탄소시장에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올해 3월 글로벌 원유 공급은 하루 약 1000만배럴 감소했는데, WB는 이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오일 쇼크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 속에서도 각국이 탄소가격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탄소가 이제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제 운영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충격 속에서도 탄소가격 정책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처럼 탄소세 인상 시점만 늦춘 사례는 있었지만 제도를 철회한 국가는 거의 없었다. WB는 이를 두고 탄소가격이 더 이상 한시적 환경 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제 구조 안으로 본격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재정 확보 문제까지 탄소가격 체계와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각국 정부도 정책 방향을 쉽게 되돌리지 못하는 단계로 들어갔다는 의미다.

세계은행(WB)이 공개한 정부 주도 탄소크레딧 제도 지도. 갈색은 이미 시행 중인 정부 탄소크레딧 제도, 초록색은 도입 추진 또는 개발 단계에 있는 제도를 뜻한다. 지도에는 북미·유럽·아시아를 중심으로 국가 단위 탄소배출권 인증 체계가 빠르게 확산되는 흐름이 담겼다. 중국은 국가 온실가스 자발적 감축 프로그램(CCER)과 지역 단위 탄소상쇄 체계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도 도쿄·사이타마 중심 산림흡수 인증과 감축 인증 제도를 구축했다. 동남아에서는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가 정부 주도 크레딧 메커니즘을 확대하고 있고,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탄소크레딧 체계 구축에 들어갔다. 세계은행은 탄소배출권 시장이 민간 자발적 시장 단계를 넘어 각국 정부의 산업 정책과 국가 감축 목표(NDC), 국제 무역 전략과 연결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세계은행(WB)]
세계은행(WB)이 공개한 정부 주도 탄소크레딧 제도 지도. 갈색은 이미 시행 중인 정부 탄소크레딧 제도, 초록색은 도입 추진 또는 개발 단계에 있는 제도를 뜻한다. 지도에는 북미·유럽·아시아를 중심으로 국가 단위 탄소배출권 인증 체계가 빠르게 확산되는 흐름이 담겼다. 중국은 국가 온실가스 자발적 감축 프로그램(CCER)과 지역 단위 탄소상쇄 체계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도 도쿄·사이타마 중심 산림흡수 인증과 감축 인증 제도를 구축했다. 동남아에서는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가 정부 주도 크레딧 메커니즘을 확대하고 있고,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탄소크레딧 체계 구축에 들어갔다. 세계은행은 탄소배출권 시장이 민간 자발적 시장 단계를 넘어 각국 정부의 산업 정책과 국가 감축 목표(NDC), 국제 무역 전략과 연결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세계은행(WB)]

▲탄소시장 판도 변화, 프리미엄은 인증된 크레딧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의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국제항공 탄소상쇄제도(CORSIA) 인증을 받은 탄소크레딧은 톤당 15~22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일반 탄소크레딧 가격대인 1~14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시장 자금도 점점 ‘검증된 크레딧’으로 몰리고 있다. 동남아 산림보존 프로젝트 가격이 급등한 배경 역시 공급 부족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탄소를 줄였다는 주장만으로는 시장에서 인정받기 어려워졌고, 국제 기준과 인증 체계를 통과한 고신뢰 크레딧에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탄소는 이제 ESG 문서 속 구호가 아니다. 얼마나 싸게 생산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생산할 수 있느냐가 국가 산업 경쟁력의 일부로 올라서고 있다. 철강·조선·자동차·배터리·석유화학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입장에서는 탄소가격 체계 변화 자체가 새로운 통상 질서이자 제조업 경쟁력 시험대로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앤서니 맨셀(Anthony Mansell) 세계은행 탄소시장 정책 담당 전문관은 “탄소가격과 탄소시장은 이제 기후 대응 차원을 넘어 성장과 산업 경쟁력, 경제 회복력까지 함께 움직이는 정책 체계로 확대되고 있다”며 “각국 정부도 자국 산업 구조와 개발 우선순위에 맞춰 서로 다른 형태의 탄소가격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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