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도출한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통해 반도체(DS) 부문 임직원들에게 대규모 특별경영성과급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보상을 받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들의 내부 불만이 그룹 전반의 노사 갈등으로 들불처럼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5일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가 지난 20일 특별경영성과급 신설을 핵심으로 한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이후, 타 삼성 계열사 내부에서는 성과급 제도 및 임금 인상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잠정합의안에 명시된 올해 영업이익 300조원 달성이라는 조건이 충족될 경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직원(연봉 1억원 기준)은 자사주로 지급되는 특별경영성과급과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합쳐 최대 6억원 수준의 파격적인 성과급을 수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업계 안팎의 이목을 끄는 부분은 적자 사업부에 대한 보상이다. 올해 실적 부진으로 영업손실이 예상되는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 소속 임직원들 역시 DS 부문 공통 재원 분배 원칙(40%)에 따라 최소 1억6000만원 이상의 성과급을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올해 초 2026년 임금협상을 이미 마무리 지은 주요 전자 계열사들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올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의 임금 인상률은 각각 6.2%, 4.0%, 5.9%로, 삼성전자의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거나 턱걸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무엇보다 이들 계열사는 과거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도 보상 규모가 턱없이 작았던 경험이 누적되어 있어 직원들의 허탈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의 일시적 정체 현상인 캐즘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 OPI 산정에서 '0%'를 기록한 삼성SDI나, 과거 6000억원 이상의 흑자를 내고도 OPI 지급률이 연봉의 1%에 그쳤던 삼성전기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삼성후자'라 부르며 자조하던 기류가 강한 분노로 전환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촉발한 핵심 원인으로 계열사 간 성과급 산정 방식의 구조적 비대칭성을 지목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노사 합의를 통해 DS 부문의 OPI 산정 기준을 기존 경제적 부가가치(EVA)에서 영업이익의 10%로 변경하는 결단을 내렸다.
자본비용과 세금 등을 영업이익에서 차감해 산출하는 EVA 방식은, 대규모 장치 산업의 특성상 막대한 시설 투자비가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흑자를 내더라도 실제 임직원에게 돌아가는 성과급 재원을 대폭 축소시키는 구조적 한계로 작용해왔다.
문제는 삼성전자 DS 부문이 영업이익 기준으로 보상 체계를 개편해 대규모 보상을 예고한 반면, 다른 주요 계열사들은 여전히 사측이 EVA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기의 경우 올해 인공지능(AI) 반도체 기판 수요 증가와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업황 회복이라는 사이클에 올라타며 연간 1조5000억원 안팎의 실적 달성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EVA 산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설비 투자에 따른 자본비용 상각으로 인해 임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OPI가 지급될 가능성은 낮게 평가된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초격차 유지를 위한 선제적 라인 투자 비용이 성과급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그룹이 과거 수십 년 동안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왔던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이 이번 합의로 인해 구조적 훼손을 입었다고 진단한다. 각 사업부별 독립적 성과 측정과 그에 따른 엄정한 보상이라는 대원칙이 흔들리고, 특정 부문의 막대한 이익을 적자 사업부와 기계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이 도입됨에 따라 묵묵히 이익을 창출해 온 타 계열사 인재들의 근로 의욕 저하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보상 체계의 불균형 현상은 건설 등 이종 산업 계열사 노사 관계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앞서 노조의 파업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당초 사측이 제시했던 3.0%였던 기본 인상률을 4.3%로 대폭 상향 조정하며 서둘러 교섭을 타결한 바 있다. 경쟁사인 IPARK현대산업개발을 비롯한 국내 주요 대형 건설사들이 원가율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며 보수적인 임금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확산함에 따라 계열사별 노조들은 구체적인 단체 행동과 제도 개편 요구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올 하반기 중 성과급 대체 보상제도 도입을 사측에 공식 의제로 제안할 계획이며, 삼성전기 내부에서도 OPI 산정 방식을 삼성전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변경하기 위한 전 임직원 여론 수렴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수 증권사 리포트 및 경제 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이번 사안은 단순한 일회성 임금 불만을 넘어 삼성그룹 전체의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연례적 리스크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파업에 돌입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의 사례에서 보듯, 파업 위협을 통한 사측의 양보 쟁취라는 학습 효과가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어서다. 나아가 산재해 있던 계열사 단위 노조들이 연대 조직을 꾸려 세를 결집할 경우, 사측의 협상력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삼성은 매년 임단협 시즌마다 그룹 전체의 생산 차질 리스크를 방어해야 하는 중대한 경영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인데, 이는 장기적으로 기관 및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보상 철학의 재정립과 계열사 간 형평성 논란을 매듭짓지 못한다면 구조적인 노사 갈등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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