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칼럼니스트] 1950년대로부터 20년, 한국사회는 ‘생존’의 가치가 우선시될 만큼 오래도록 힘겨움의 삶을 버텨왔다. 전쟁과 산업화, 경제성장이라는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공동체는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날은 밝았지만, 이정표 없는 어둡고 혼란했던 현실에서 불확실성과 가난의 일상적 위협은 상호부조와 이웃 간 연대라는 한국사회의 주요 미덕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졌다.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듯이 공동체 중심의 사고와 협력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당장 엄습해오는 절망감과 내일이 없을지 모를 오늘의 하루를 살아야 했다. 오늘날 너무도 흔한 ‘삶의 질’을, ‘여가’를, 뿌리내리게 하기엔 너무나 어려웠던 사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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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의 시대: 경제적 수준의 뚜렷한 향상
197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치며 선진 반열의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고도화를 일궈냈다. 궁핍으로 얼룩졌던 한국사회는 빠른 국민소득의 안정과 삶의 질 개선으로 눈부시게 달라졌다. ‘다른 나라, 남의 일상’과도 같던 첨단화된 일상 편의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인프라와 선진화, 각종 편의시설, 민간서비스 확산 등은 ‘생존의 시대’와 뚜렷한 구별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듯 빛나는 과정 중에도 경쟁과 개인주의는 본연의 성격과 지향을 잃어버린 채 ‘이기는 것’과 ‘물질만능’으로 심화 왜곡을 불러왔다. 성공에 대한 압박은 개인을 더욱 고립시키는 경향이 나타났다. 경제적 풍요 가운데 생존 경쟁의 그림자가 삶의 흔적을 남기고 간 것이다.
◇‘여가’를 읽는 시대: 풍요로운 일상, 부족한 인식 변화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사회는 ‘여가 시대’를 목전에 둔 것으로 이야기하며 새로운 시대에 바라는 기대와 염원을 품었다. 대중의 소비문화적 욕구와 건강한 삶에 대해 높아진 관심, 사회·제도적 지원의 확대 요구와 반영 등이었다. 실제 휴일법이 확대·실시됐으며, 여러 스포츠·취미 여가 프로그램, 공공여가스포츠 시설이 증설되었다.
그러나 대중의 일상에서는 ‘기호(글)’로써 여가를 향유하는 듯하였지만, 그에 걸맞은 인식이 대중 삶에 깊이 녹아들지는 못했다. 일상에서의 여유와 타인 존중,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정체되거나 더디게만 나타났다. 초등학교 운동회 조차, 주민의 소음 민원으로 아이들이 사과부터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보도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개인 편의가 우선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늘 : 지나친 개인 중심화의 그늘
한국사회의 압축적 경제성장과 함께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개인 중심화’ 현상이다. 대중사회의 ‘상생’ 가치는 ‘약화’됐으며, 마주한 이웃이나 타인과 나누는 경험이 줄었다. 온 동네의 축제와도 같던, 그래서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그날 하루만큼은 따뜻한 마음으로 온종일 빛나던, 운동회는 민원과 소음 불편을 우려해 축소·대체하거나 간곡한 사전 양해가 없이는 할 수 없는 현실이 되버렸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라는 아이들의 외침은 공동체적 배려가 희박해진 오늘을 보여준다.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라는 집값 상승의 기대와 함께 그러한 사유로 발생될 수 있는 학교 소음은 불편해하는 지역 공동체와 개인 추구 가치에 가려졌다.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우선’ 해야 할 행동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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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공동체 가치를 담은 씨앗
생존과 생계의 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한국 사회는 강한 공동체적 유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경험과 인지적 접근 자체가 부족하다. 동네 어귀에서 하는 아이들의 놀이나 야외활동, 학교 운동회 및 방과 후 스포츠 등은 일부 개인, 집단의 불편함을 이유로 제한받는다. 권장해도 모자랄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과 상생을 소홀하게 대하고 있다.
‘놀이, 게임, 스포츠’를 단지 읽는 차원의 기호적 접근으로만 소비하는 현재의 문화적 경향이 아쉽기만 하다. 물론, 사회적 합의 없이 공동체적 가치 지향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이 또 다르게 사회적 이해 없이 개인의 이해만 강조될 때 ‘아이들이 자기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제한받는’ 악순환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지금의 어느 시점이라도 공동체적 관점에서 사회적 유대와 건강한 성장, 상호 배려를 전제로 스포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시간이다.
◇방향: 스포츠를 통해 어디로 가야 할까?
아직, 여가 시대를 향한 길을 돌아오지 못할 만큼 벗어나진 않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정비하고 올바르게 길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인식과 행동의 개선을 실천하면 된다. 그동안 부족했던 스포츠에 대한 접근과 참여를 인지적, 정의적, 행동적 관점 모두에서 고루 살피고 이뤄야 한다. 대중사회 구성원 모두, 각자가 타인의 여가 권리와 휴식, 스포츠 참여를 존중하고 상호 상생형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운동회 팡파르가’, ‘놀이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소음으로 주민민원대상이 되선 안된다. 모두의 건강한 성장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제도, 행동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사회가 여가시대의 진정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전제가 될 것이다. 스포츠 참여는 단순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상생의 실천적 도구가 될 것이다.
◇청사진: 스포츠와 사회적 배려, 그리고 미래
경제적 풍요와 일상 편리가 보편화된 한국사회의 오늘, 사회적 배려와 상생의 가치는 다시 일으켜야 할 ‘미덕’으로써 노스텔지어가 아니다. 여가시대로 진입과 정착을 위한 현재와 미래의 ‘필수’ 조건이다. 애써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빈번해진 ‘스포츠’, ‘여가’를 둘러싼 갈등 사례들은 우리가 직면한 어두운 사회적 패러다임 변화의 단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명확한 인식 개선 의지와 행동 변화를 실천해야 할 경고의 신호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타인과 이웃을 배려하는 인식과 자세를 갖춰 나가야 한다. 그제서야 우리 사회는 생존·생계의 시대를 뛰어넘어 진정한 여가의 시대를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다. 운동회 때 너무나 신나고 즐거웠던 경험을 가진 어른으로서 운동장 위에 돌아선 아이들의 모습에 미안함과 먹먹함이 남는다. 아이들이 ‘죄송하다’는 말 없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내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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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스파크(The SPARC)는 스포츠 정책 연구를 위해 모인 신진 연구자 그룹입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스포츠와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탐구하며, 새로운 정책 대안을 모색합니다. 이 그룹은 학문적 연구와 현장의 경험을 연결해 미래 지향적인 스포츠 정책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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