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으로 접어들면 집 안 벽면에 평소 보이지 않던 검은 반점이 하나둘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락스를 묻힌 걸레로 문지르면 겉 얼룩은 금방 사라지고, 벽지도 다시 깨끗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 같은 자리에 검은 점이 다시 올라온다면 표면에 생긴 얼룩만으로 보기 어렵다.
벽지 곰팡이는 먼지나 손때처럼 겉면만 닦아낸다고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곰팡이는 벽지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안쪽으로 가느다란 균사를 뻗으며 번진다. 겉에서 보이는 검은 점은 밖으로 드러난 부분에 가깝다. 벽지 뒷면이나 석고보드 안쪽까지 습기가 스며든 경우에는 표면을 닦아내도 시간이 지나며 다시 올라올 수 있다.
같은 자리에 곰팡이가 계속 생긴다면 더 센 약품을 찾기 전에 벽이 왜 젖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창가 주변, 가구 뒤쪽, 외벽과 맞닿은 방 모서리는 공기가 잘 돌지 않아 물기가 오래 남는다. 닦는 방법을 바꿔도 습기가 머무는 환경이 그대로라면 검은 반점은 다시 올라온다.
곰팡이 위치가 이미 원인을 말해주고 있다
곰팡이가 어디에 생겼는지 보면 원인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다. 창문 주변이나 외벽과 맞닿은 벽에 검은 반점이 몰려 있다면 결로부터 살펴봐야 한다. 결로는 실내와 바깥의 온도 차가 클 때 차가운 벽면에 물기가 맺히는 현상이다. 환기가 부족하거나 가구가 벽을 막고 있으면 물기가 오래 남아 곰팡이가 번지기 쉽다.
반대로 천장 가까운 벽면, 위층 바닥과 맞닿은 자리, 배관이 지나는 주변에 곰팡이가 생겼다면 누수 가능성을 봐야 한다. 이 경우에는 표면을 닦아도 안쪽에서 계속 물기가 스며 나올 수 있다. 벽지가 들뜨거나 만졌을 때 축축한 느낌이 든다면 곰팡이 제거보다 누수 확인을 먼저 하는 편이 낫다.
결로는 환기를 자주 하고 가구와 벽 사이에 틈을 두면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누수는 다르다. 곰팡이를 아무리 닦아도 물이 새는 곳을 고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계속 이어진다.
배관에서 물이 조금씩 새거나 위층 방수층에 문제가 생긴 경우라면 관리사무소나 시공 업체를 통해 물이 들어오는 지점을 먼저 찾아야 한다. 겉에 보이는 곰팡이만 반복해서 닦아내면 벽 안쪽은 계속 젖은 채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석고보드가 물을 머금고 약해질 수 있다. 벽지를 만졌을 때 말랑하게 느껴지거나, 들뜬 부분이 넓어진다면 이미 안쪽까지 젖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단계까지 가면 벽지만 새로 붙이는 수준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젖은 보드와 안쪽 마감재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
제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세 가지
곰팡이를 닦기 전에는 벽이 얼마나 젖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가장 먼저 볼 곳은 벽지 모서리다. 모서리를 살짝 들어 안쪽에 검은 자국이 번져 있는지 살핀다. 벽지 안쪽까지 검게 변했다면 겉만 닦아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이때는 곰팡이가 번진 벽지를 일부 걷어내고, 안쪽 마감재까지 함께 확인하는 편이 낫다.
벽을 손으로 눌러보는 것도 중요하다. 손끝에 푹 꺼지는 느낌이 들거나 축축함이 느껴진다면 석고보드가 이미 물을 머금었을 수 있다. 벽지가 들뜨거나 표면이 말랑해진 경우도 그냥 닦고 말릴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이런 벽은 겉만 깨끗하게 만들어도 안쪽 습기가 남아 다시 검은 반점이 올라오기 쉽다.
세 번째로 확인할 부분은 벽지 종류다. 실크 벽지와 합지 벽지는 재질이 달라 같은 약품을 써도 벽에 남는 자국이 달라질 수 있다. 실크 벽지는 겉면에 PVC 코팅이 있어 물기와 약품을 어느 정도 버틴다. 반면 합지 벽지는 종이로 만든 벽지라 강한 산성 세제나 알칼리 세제가 닿으면 색이 바래거나 표면이 일어날 수 있다.
벽지 종류를 모른 채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면 검은 자국은 옅어질 수 있다. 하지만 벽지 색이 얼룩덜룩해지거나 종이층이 벗겨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합지 벽지는 물기가 오래 닿는 것만으로도 표면이 울 수 있어, 약품을 쓰기 전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서리에 먼저 소량만 묻혀보는 편이 안전하다.
실크와 합지, 써야 하는 약품이 다르다
실크 벽지는 시중 곰팡이 제거제나 락스를 물에 연하게 섞어 사용할 수 있다. 락스는 물과 1대 10 이상 비율로 섞은 뒤 분무기에 담고, 곰팡이가 생긴 부위에 가볍게 뿌린다. 약품이 검은 자국에 스며들도록 몇 분에서 수십 분 정도 두었다가 마른걸레로 눌러 닦아낸다.
이후에는 물걸레로 남은 약품을 한 번 더 닦고, 마지막에 마른걸레로 물기를 없애야 한다. 락스 원액을 그대로 쓰거나 한곳에 많이 뿌리면 벽지 겉면 코팅이 상할 수 있다. 냄새도 강하게 남을 수 있으니 반드시 물에 희석하고, 작업하는 동안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 한다.
합지 벽지는 락스 원액이나 성분이 강한 약품을 피하는 편이 낫다. 종이로 만든 벽지라 약품이 깊게 스며들면 색이 바래거나 표면이 일어날 수 있다. 곰팡이 제거제를 쓸 때도 제품 설명에 합지 벽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전용 제품이 없다면 과탄산소다를 따뜻한 물에 연하게 풀어 쓰는 방법도 있다. 과탄산소다는 산소계 표백 성분이라 락스보다 자극이 덜한 편이다. 다만 합지 벽지는 물기에도 약하므로 한 번에 많이 묻히면 벽지가 울 수 있다.
약품을 바로 넓게 바르기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벽면 구석에 먼저 소량만 묻혀보는 편이 좋다. 색이 변하거나 표면이 들뜨지 않는지 확인한 뒤 곰팡이가 생긴 부위에 조금씩 작업해야 벽지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작업 중 지켜야 할 안전 수칙
락스를 사용할 때는 먼저 섞어 쓰는 세제를 조심해야 한다. 락스는 산성 세제와 만나면 유독 가스가 나올 수 있다. 욕실 세정제, 식초, 구연산 성분이 들어간 제품과 함께 쓰지 말아야 한다. 작업 전에는 창문을 열어 공기가 통하게 하고,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한 뒤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다.
곰팡이가 넓게 번진 벽을 닦을 때는 포자가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다. 범위가 작을 때보다 호흡기로 들어갈 위험도 커진다. 이럴 때는 일반 마스크보다 차단력이 높은 N95급 마스크를 쓰고, 눈에 약품이 튀지 않도록 보호안경까지 착용하는 편이 낫다. 곰팡이 포자나 락스 냄새를 들이마시면 목이 따갑거나 기침이 나고,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수 있다.
약품을 뿌린 뒤에는 걸레로 세게 문지르지 않는 편이 좋다. 문지르면 곰팡이 포자가 주변으로 퍼질 수 있고, 벽지 표면도 쉽게 상한다. 걸레를 곰팡이 부위에 대고 눌러 흡수시키듯 닦아내야 벽지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작업에 쓴 걸레는 다시 쓰지 말고 비닐봉지에 담아 밀봉한 뒤 버리는 편이 안전하다.
제거 후 건조 과정이 재발을 결정한다
곰팡이를 닦아낸 뒤에는 벽을 완전히 말리는 과정까지 이어가야 한다. 겉이 깨끗해졌다고 바로 벽지를 덮거나 가구를 붙이면 안쪽에 남은 물기 때문에 며칠 안에 검은 반점이 다시 올라올 수 있다. 작업을 마친 뒤에는 창문을 열어 공기를 빼고, 제습기나 난방을 함께 켜 벽 안쪽 수분까지 말리는 편이 좋다.
제습기는 공기 중 물기를 빨아들여 방 안 습도를 낮춰준다. 문을 닫은 작은 방에서는 제습기를 켰을 때 벽 주변 습기가 더 빠르게 줄어든다. 난방은 차가운 벽면 온도를 올려 안쪽에 남은 물기가 밖으로 날아가게 만든다. 제습기와 난방을 함께 쓰면 벽지가 마르는 시간이 줄고, 곰팡이가 다시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겨울에는 곰팡이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가구 위치도 함께 봐야 한다. 외벽과 가구가 딱 붙어 있으면 공기가 돌지 못해 벽면에 물기가 오래 남는다. 특히 장롱, 책장, 침대처럼 면적이 넓은 가구 뒤쪽은 한 번 습기가 차면 마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구를 외벽에서 5~10cm 정도 떼어두면 뒤쪽으로 공기가 지나갈 공간이 생긴다. 작은 차이처럼 보여도 벽면에 맺힌 물기가 오래 머무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가구 뒤쪽에 검은 반점이 자주 생긴 집이라면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곰팡이 관리가 한결 쉬워진다.
환기도 빼놓을 수 없다. 겨울에는 춥다는 이유로 창문을 오래 닫아두기 쉽지만, 실내 습도가 높아지면 차가운 벽면에 물기가 더 잘 맺힌다. 하루 한두 번이라도 짧게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꿔주면 벽면에 습기가 쌓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벽지 이면까지 번졌다면 셀프 제거의 한계가 있다
초기에 벽지 겉면에만 곰팡이가 생긴 정도라면 습기 관리와 셀프 제거로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벽지 안쪽까지 검게 번졌거나 석고보드가 물을 머금어 말랑해진 경우라면 직접 닦는 방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벽지를 걷어내 안쪽을 확인하지 않은 채 겉만 계속 닦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곰팡이가 더 넓게 퍼질 수 있다.
점검 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같은 자리에 곰팡이가 계속 올라오는 집이라면 먼저 원인을 확인하는 편이 오히려 돈을 아낄 수 있다. 벽지를 여러 번 새로 붙이고도 다시 검은 반점이 생긴다면, 표면 얼룩 문제가 아니라 벽 안쪽 습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같은 자리에 세 번 이상 곰팡이가 반복된다면 벽체 안쪽을 살펴봐야 한다. 곰팡이를 닦는 것보다 왜 그 자리에 계속 생기는지를 찾는 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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