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기행'이 5월 끝자락, 계절의 맛을 따라가는 다섯 편의 밥상 여행으로 시청자를 찾는다. ‘오늘은 입 터진 날’이라는 이름 아래 꾸려진 이번 기획은 산과 바다가 가장 풍성한 계절에 만날 수 있는 음식과 사람,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시간을 천천히 비춘다.
이번 여정은 계절이 키운 식재료를 누가, 어떤 마음으로 지켜왔는지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땀 흘려 나물을 뜯고, 염전을 지키고, 오래된 손맛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하루가 밥상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다.
화려한 미식보다 오래 기억될 정성과 공동체의 풍경에 초점을 맞춘 점도 눈에 띈다. 가족과 친구, 이웃이 둘러앉아 한 상을 나누는 순간을 통해 ‘잘 먹는 기쁨’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영월이 들썩인다…단종의 흔적 따라 떠나는 ‘입 터진’ 여행
첫 방송은 강원 영월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최근 여행객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는 영월은 단종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활기를 얻고 있다. 단종 유배지 주변 풍경과 지역 음식이 어우러지며 색다른 여행 코스를 만든다.
특히 단종의 밥상에 올랐다고 전해지는 어수리 나물을 활용한 향토 음식들이 눈길을 끈다. 나물밥과 전처럼 소박한 음식이지만, 지역 사람들의 기억과 정서가 더해져 특별한 한 끼가 된다. 음식을 먹는 경험이 곧 역사 이야기를 만나는 순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시장 먹거리도 빠지지 않는다. 영월 전 골목에서는 오랜 손맛을 가진 상인들이 배추전과 메밀전병을 부쳐내며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풍경과 이야기, 군침 도는 먹거리가 한 번에 겹쳐지며 ‘입 터진 날’의 시작을 알린다.
■곰배령 봄이 차린 한 상…산나물 향기로 채운 생존의 기록
두 번째 이야기는 깊은 산속 곰배령에서 이어진다.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주민의 삶은 산나물 한 접시에도 긴 계절의 흔적을 남긴다. 겨울을 지나 피어난 곰취와 눈개승마, 엄나무순이 밥상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연 식재료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을 다시 일으킨 과정도 함께 담긴다. 화재로 집을 잃은 뒤 다시 산을 일구며 살아낸 시간은 밥상에 더 깊은 의미를 입힌다. 계곡에서 나물을 다듬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장면은 봄의 회복력을 떠올리게 한다.
야생화가 얹힌 전과 산나물무침, 토종 닭백숙이 이어지는 식탁은 보기만 해도 허기를 자극한다. 산이 내준 재료를 사람 손으로 완성해내는 풍경 자체가 이번 편의 가장 큰 볼거리다.
■소금꽃 피는 섬의 하루…비금도 가족 밥상이 전한 온기
세 번째 여행지는 전남 신안 비금도다. 수십 년 동안 염전을 지켜온 부부의 삶은 눈부신 흰빛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하얗게 쌓인 천일염과 바닷바람이 만든 풍경은 화면 너머로도 짠내 섞인 정취를 전한다.
특히 사람 손을 대신하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전통 노동 현장도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술이 더해져도 가족이 함께 땀 흘리는 풍경만큼은 그대로다. 부모를 돕기 위해 섬을 찾은 자녀들이 더해지며 밥상은 한층 북적인다.
갓 거둔 소금을 활용한 삼겹살과 갑오징어 숙회, 병어조림은 식탁의 중심을 채운다. 한 끼 음식이 아니라 오래 쌓인 가족의 시간이 맛이 되어 남는 순간이다.
■장흥 구절판에 담긴 공동체…함께 먹는다는 것의 힘
장흥 행원마을 편에서는 사람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챙기며 살아가는 풍경은 음식 준비 과정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뒷산에서 직접 캐온 산나물이 부엌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정겹다.
비비추와 취나물, 고사리 같은 재료는 장흥 삼합과 만나 한층 풍성한 상차림으로 완성된다. 여러 칸으로 나뉜 구절판처럼 서로 다른 재료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닮았다.
함께 손질하고 함께 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음식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언어가 된다. 화면 가득 차려진 상차림보다 더 오래 남는 건 한자리에 모여 웃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200년 손맛과 어머니의 약속…마지막은 김치가 책임진다
마지막 방송은 오래 이어져 온 김치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수백 년 집안의 손맛을 이어가는 모녀가 등장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가족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게살 김치가 시청자의 침샘을 자극한다.
반가 음식 전통을 이어온 특별한 김치는 수십 가지 재료를 정성껏 다듬어 만들어진다. 배추김치와 동치미의 특징이 섞인 독특한 방식은 익숙한 김치와는 또 다른 서사를 보여준다. 고택 풍경 속에서 이어지는 손놀림은 시간의 깊이까지 느끼게 만든다.
이어 등장하는 저염 게장과 게살 김치는 가족을 향한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울림을 남긴다. 오랜 돌봄의 시간 속에서 탄생한 음식은 맛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오늘은 입 터진 날’의 끝이 결국 사람과 마음의 이야기로 닿는 이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