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 연준의 ‘워시 체제’ 개막과 동시에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고유가 압박 속에서 미국의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5.19%로 폭등하며 매파적 선회 우려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통화정책 부담이 임계점에 달한 가운데, 신현송 호의 한국은행은 내수 침체와 고환율 사이에서 금리 동결 속 ‘매파적 수사’ 강화라는 카드를 고심하고 있다.
◇“정적 프레임 타파” 연준 독립성 시험대
케빈 워시 신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식 취임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했다. 연준 수장의 취임 행사가 백악관에서 개최된 것은 1987년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이후 39년 만이다.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의 주재로 진행된 이번 취임식을 지켜본 금융시장은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이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과거 연준 이사 시절 대표적인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분류됐던 그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궤를 맞추며 시장 친화적 인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선서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시 의장에게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하라”며 “나를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백악관 취임식이 자초한 정치권 밀착 논란을 의식해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독립성을 압박하는 모순적 장면이 연출됐다.
워시 의장의 취임 일성은 철저히 계산된 모호함을 유지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정적인 프레임워크 모델에서 벗어나 명확한 기준을 유지하겠다”며 연준 운영 방식의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했다. 이어 고용 극대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연준의 이중 책무를 동시에 언급하며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장의 기준금리 향방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시장은 그의 ‘연준 개혁’ 선언이 향후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어떻게 뒤흔들지 주목하고 있다.
◇19년 만의 최고치…장기물 금리 발작
워시 의장이 마주한 미국 경제 지표는 사방이 지뢰밭이다. 중동 분쟁 고조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불씨가 다시 살아났고, 인공지능(AI) 열풍이 주도하는 증시 과열과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확대가 맞물려 있다. 금융시장은 이미 긴장 기류가 역력하다. 연준이 최근 공개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지속해서 상회할 경우 추가 긴축이 필요하다”고 명시하며 시장의 공포를 자극했다.
채권시장은 매파 의장의 등장과 긴축 기조 복귀 가능성을 가격에 선반영하기 시작했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07%포인트 급등한 5.19%를 기록하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유가발 물가 불안과 연준의 매파적 선회 우려가 장기 금리를 끌어올린 결과다. 워시 의장의 진짜 본색은 다음 달 16~17일 열릴 FOMC 정례회의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신현송 호 첫 금통위, 딜레마 빠진 한은
미국발 통화정책 대전환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셈법을 극도로 복잡하게 만든다. 오는 28일 열리는 신현송 총재 체제의 첫 금융통화위원회는 한은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자리가 됐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가계부채 증대라는 기존 악재에 미국 장기금리 폭등에 따른 달러 강세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통화정책적 부담은 임계점에 달했다.
다만 한은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론까지 대두되지만, 얼어붙은 내수 경기를 감안하면 실행이 쉽지 않다. 현재 국내 경기 회복세는 반도체 등 일부 수출 산업에만 편중되어 있으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이 체감하는 불황의 골은 깊다. 상반기 이후 기저효과에 따른 물가 둔화 가능성도 발목을 잡는다. 환율 방어만을 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기에는 실물 경제에 가해질 충격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매파적 수사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전망 상향 수정 가능성, 환율 변동성 및 부동산 가격 상승 폭 확대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은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2.50%에서 동결하되 인상 소수의견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당장 금리를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하반기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구두 개입으로 시장 관망세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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