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이 휘는 고된 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기계와 전자기기의 몫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기분 좋은 노동을 마치고, 가족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즐기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퇴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4일제가 멀지 않았습니다."
야심찬 개혁가의 주장이 아니다. 지금부터 무려 70년 전인 1956년에 당시 부통령인 리처드 닉슨의 약속이었다. '멀지 않았다'고 한 주4일제는, 물론 아직도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신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AI가 일상은 물론이고 직장 안까지 밀고 오는 상황이다.
AI가 모두에게 '선물'이 되게 하려면?
미국 기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등 4대 초거대 기술기업이 AI를 위해 투입한 자본 지출(Capex) 총액이 지난해 약 4000억 달러 이른다. 올해는 5~7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입하여 대규모 데이터센터 증설 등을 서두른 덕분으로, 미국의 엔비디아나 한국의 삼성전자 등은 사상 초유의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최근 미국 주가 상승의 40% 이상은 AI 수혜주 덕분이기도 하다니 이들은 주가 상승의 혜택도 독식하는 셈이다.
AI 대규모 투자로 인한 이익과 주가 상승의 이익에 더해, 심지어 이들은 조만간 AI가 약속한 놀라운 생산성 향상의 효과까지 잔뜩 기대하는 중이다. 그런데 기업 경영진과 주주를 넘어 AI의 생산성 향상 혜택을 다수의 노동자와 여성도, 그리고 지구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아니면 고작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으로 해고의 불안에 시달릴 위협을 받고 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 때문에 온실가스가 늘어나는 걸로 귀결되고 말까?
이와 관련하여 때마침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국민 배당금' 논쟁으로 공론장이 뜨거웠다. 김 실장이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 세수"를 안겨주었다면, 이에 대해 '국민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사회계약을 맺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AI와 기본소득을 연계하자는 주장은 이미 익숙하다.
6.3 지방선거 AI 공약은 넘치는데 주4일제 공약은?
검토해볼 수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만약 AI가 정말 약속했던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보장한다면, 그 무엇보다 생산성 효과를 '노동시간 단축'으로 연계시키는 것이 더 균형감 있는 일과 삶을 안겨주고, 더 바람직한 젠더 평등에 기여하며, 심지어 기후에도 이로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대통령 선거에서 '주4.5일제'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었고, 올해부터 '워라벨+4.5 프로젝트' 시범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나? 정부는 노사가 합의해 주 4.5일제를 도입한 150~200개 사업장에 근로자 1인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그러면 중앙정부의 주4.5일제를 이번 6.3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각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을까? 현재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 10대 공약에 ' 주 4.5일제 시범 사업 확산, 실 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마련·이행'을 포함하는 등 일부 들어있기는 하다. 하지만 AI 공약을 선명하게 상위에 포진시킨 것에 비하면 확실히 왜소하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일찍이 이번 선거에서 고려할 기후 돌봄 정책의 하나로서 '노동과 기후 모두에 유익한 지방자치단체형 주4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현행 제도 내에서 정책적 권한과 재정 지원을 활용해 주4일제 확산을 유도할 수 있다. 예컨대 공공기관과 지역 내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할 경우, 임금 보전 및 신규 채용 인센티브 등 재정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초기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요일을 유권자에게' 돌려주는 AI 공약은 어떤가
특히 AI 공약을 강조한 후보들은 반드시 그와 짝을 맞춰 '주4일제'를 약속하는 게 필요하다. AI가 유권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이 아니라 '금요일을 돌려주는' 기회로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열적으로 주4일제를 캠페인하고 있는 조 오코너(Joe O'Connor)가 재러드 린드존과 공저한 책 <주4일제가 온다>(구세희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에 캐나다 청년의 목소리를 이렇게 인용했다.
"금요일에는 개인적 잡무를 주로 처리해요. 예약해 둔 곳을 방문하고, 장을 보고, 한 주 동안 더러워진 집을 청소해요. 예전에는 이 모든 걸 주말에 했는데, 이제 주말은 마음 편히 즐기며 회복할 수 있는 날이 된 거죠."
사실 AI 시대에 직원들에게 잔업 몇 시간 더 시키는 것보다,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발상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할 최선의 방안은 뭘까? 그것은 직원들을 더 압박하고 강제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휴식을 주고, 적당한 회복 시간을 만들어주며, 일상에서 일과 휴식의 균형이 잘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것일 것이다. 이 모든 건 주4일제를 통해 상당히 해결할 수 있다.
주4일제는 아주 특별한 기후 정책
주4일제는 AI가 약속한 생산성을 기업이 독식하기보다 모두가 함께 누리게 만들 가장 강력한 수단일 뿐 아니라, 아주 특별한 성격을 지닌 기후 정책이라는 점에서도 꽤 매력적인 정책이다. 흔히 환경과 기후를 지키는 일이 무언가 억제하고 감수하고 인내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삶이 어려운 서민들이 형편이 나은 중산층보다 기후와 환경 정책에 덜 호의적이다.
하지만 기후 정책이 꼭 억제와 인내만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역 주민 대다수가 더 나은 삶의 질을 온전히 누리면서도 기후 위기에 대처할 방법도 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탄소는 줄이고 복지는 채우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던 이유다. 그런데 '주4일제'야말로 환경과 기후를 지키는 일이 무언가 억제하고 감수하고 인내하는 대신, 시민들에게 '희생이 아니라 혜택을 주는 일'이며 모두가 원하는 낙관적인 미래 삶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기후 정책이다.
연구에 따르면 평일 하루를 휴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날의 탄소 배출량을 10% 줄일 수 있다. OECD 국가에서 근무시간을 10% 줄이면 생태발자국을 12.1% 줄이게 된다는 연구도 있다. 시민들에게 더 나은 워라밸을 보장하는 복지가 곧 기후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심지어 장기간 노동과 시간에 쫓기는 일상은 그 자체가 매 순간순간 온실가스를 늘릴 위험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시간 압박을 더 느끼는 사람은 출근할 때 자전거를 타기보다 운전할 가능성이 높을 테고, 건강한 음식을 조리해 먹기보다 배달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높다.
AI가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그래서 민선 9기 지방정부를 이끌 후보들이 너도 나도 자신의 지역에 AI를 도입하여 지역을 바꾸겠다고 약속한다. 만약 AI가 도입되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지역의 풍경이 있다면, 바로 지역 주민과 지역 기업의 노동시간부터 바꾸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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