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데레사 더봄]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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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데레사 더봄] 운동화

여성경제신문 2026-05-23 13:00:00 신고

새벽녘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새벽녘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새벽 다섯 시의 골목은 밤과 아침 사이에 버려진 시간 같았다. 하늘은 아직 푸르지 못했고, 가로등 불빛은 축축하게 젖은 도로 위에 누렇게 번져 있었다. 건물 틈새마다 밤새 쌓인 냉기가 내려앉아 입김이 금방 흩어지지 않았다. 편의점 뒤편에는 누군가 내다 버린 라면 국물 냄새와 덜 식은 튀김기름 냄새가 바람에 섞여 흘렀다. 노인은 리어카 손잡이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바퀴는 눈 녹은 물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슬픈 소리를 냈다. 골목 양쪽에는 재활용품 더미가 어둠 속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끈으로 대충 묶인 박스들, 술병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 깨진 플라스틱 의자 다리. 길고양이 한 마리가 봉투 안을 뒤지다가 노인을 보고 화들짝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노인은 익숙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놀랐냐.”

그러곤 편의점 앞에 놓인 박스를 하나씩 눌러봤다. 그는 쓸 만한 것만 골라 리어카에 차곡차곡 눕혀 실었다. 2층 중국집 환풍기에서는 오래된 짜장 냄새가 내려왔고, 세탁소 앞 건조기에서는 눅눅한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노인은 그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습관처럼 뒤를 돌아봤다. 꼭 누군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노인을 가난한 폐지 노인이라고 생각했다. 반지하 월세방에 살고, 하루 종일 박스를 주우러 다니고,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

구청 복지사는 몇 번이나 기초 수급 신청을 권했다. 그때마다 노인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 많아요.”

겨울 골목은 유난히 조용했다. 문 닫은 분식집 앞 의자에는 눈이 얇게 쌓였고, 편의점 온풍기 바람은 유리문 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날도 노인은 컵라면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야, 빨리 와라. 라면 불겠다.”

그러자 골목 어둠 속에서 검은 후드를 눌러쓴 소년 하나가 걸어 나왔다.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마른 얼굴에 헤진 운동화. 오른쪽 신발 끈은 끊어져 철사로 묶여 있었다.

소년은 말없이 노인 옆에 앉았다. 노인은 젓가락을 건네며 물었다.

“발 안 시리냐.”

“익숙해.”

노인은 그 말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처럼 한참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학생들은 원래 따뜻해야 되는데.”

소년은 대답 대신 국물만 후루룩 마셨다.

교통사고 현장에 있었던 운동화.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교통사고 현장에 있었던 운동화.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노인에게는 환상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장면이 있었다. 횡단보도 위에 끈 대신 철사로 묶은 운동화 한 짝. 아무도 건너지 않는 길 위의 깜박이는 초록 신호등.

그날, 노인은 시장 골목 스포츠 매장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유리창 안에는 하얀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털 안감이 들어간 겨울 운동화였다. 노인은 가게에 들어가 운동화를 사서 가슴에 꼬옥 안고 나왔다.

며칠 뒤,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왔다. 직원은 목도리에 묻은 눈을 털며 반지하 현관문 앞에 섰다. 문 아래 틈새로는 희미한 냉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반지하 벽 한쪽에는 녹이 슨 리어카가 세워져 있었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태블릿 화면을 켰다.

‘독거노인 동절기 안전 확인.’

매년 겨울 반복되는 방문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쪽에서 한참 뒤에야 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손바닥만큼 열리며 노인의 얼굴이 비쳤다.

“무슨 일이에요?”

쉰 목소리 끝에 마른기침이 섞였다. 직원은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노인은 대답 대신 문을 조금 더 열었다. 그 틈으로 방 안 풍경이 보였다. 싱크대 옆 탁자에는 약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방 안에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홈쇼핑 진행자가 환하게 웃으며 전기장판을 팔고 있었다. 벽에 매달린 낡은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 속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두 손으로 브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노인이 낮게 중얼거렸다.

“얘야, 오늘은 춥다니까 털운동화 신고 가야지.”

직원은 순간 숨을 멈췄다. 방 안에는 노인 혼자뿐이었다.

“미안해요. 손자가 있어서···.”

동사무소 직원은 겨울철 고독사 위험군 체크 항목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떠올랐다.

장기 독거.

우울 증세.

인지 저하.

대화 단절.

환청 및 환시 의심.

직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가족분은··· 자주 오세요?”

노인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액자 쪽을 바라본 채 희미하게 웃었다.

“···맨날 오지.”

그 웃음이 너무 외로워서, 직원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눈이 많이 왔다. 소년은 리어카를 대신 끌며 투덜거렸다.

“오늘은 쉬지.”

노인은 자꾸 소년 운동화만 봤다. 새로 사준 운동화였다. 눈 위를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 자꾸 웃었다.

“좋으냐?”

소년은 괜히 발끝으로 눈을 찼다.

“···따뜻하긴 하네.”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날 학교 간다더니··· 혼자 울고 있었더라고.”

노인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괴롭힘당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

그날 밤, 소년은 처음으로 노인의 집까지 따라왔다.

며칠 뒤,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고물상 사장이 이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신고했다. 노인은 침대 옆 바닥에 기대 잠든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며칠이고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혀를 찼다.

“쯧쯧··· 폐지 주우시더니 외롭게 가셨네.”

그런데 장례를 정리하던 동사무소 직원이 이상한 서류들을 발견했다. 몇 개의 통장과 통장 잔고. 그리고 매년 익명으로 기부된 장학금 내역.

노인은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고 있었다.

장례 다음 날 아침. 도심 외곽의 대학병원 중환자실. 몇 년째 의식 없이 누워 있던 청년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삐—

심장 모니터 소리가 흔들렸다. 간호사가 놀라 뛰어나갔다. 청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메마른 입술 사이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침대 아래에는 털이 들어간 하얀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여성경제신문 조데레사 논술교사·미니픽션 작가
abila315@daum.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조이풀 미니픽션 작가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오랜 세월 아이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쳐 왔으며 현재도 교육 현장에서 활동 중이다. 미니픽션 작가회 회원으로 매년 무크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새벽 6시> , <달팽이의 꿈> , <기적> , <잘 있거라 나는 간다> , <새생명프로젝트> 등이 있으며 미니픽션의 매력에 빠져 꾸준히 연구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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