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무거움과 번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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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무거움과 번아웃

프레시안 2026-05-23 09:07:22 신고

3줄요약

스승의날을 앞두고 지난 4월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교단 너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제2회 한국어교원 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수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자 초단기 계약과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국어교원들이 겪는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 다섯 편의 수상작을 최우수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가작 두 편 순으로 싣는다. 편집자

"어? 백쌤이다!"

책가방을 메고 빈 교실로 들어오던 H가 말했다. 나는 채점을 기다리는 받아쓰기 종이며 뒤늦게 수업에 등록한 학습자들의 사전평가지 뭉치 같은 것을 주섬주섬 모아 배낭 안에 쑤셔 넣는 중이었다. 아이는 의아한 듯했다.

"백쌤 왜 여기 있어요?"

"○○이가 오기 전에 어른들하고 같이 공부했거든."

아이는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몇 주 전에도 일찍 도착한 아이와 비슷한 대화를 했었다. 일찍 왔다고 칭찬해 주자 히히 웃는 아이에게 그날 고향에 다녀온 학습자에게서 선물 받은 과자를 나눠 주었다. 그곳은 아이의 고향이기도 했다. 분명히 손가락으로 포장지의 단어를 하나하나 짚으며 "이거는 과자, 이거는 쌀, 이거는 구운의 뜻이에요!"라며 내게 뿌듯하게 설명했는데 몇 주 만에 다 잊은 모양이었다. 밖에서 보기에 아이들의 시간은 참 빠르다. 그러고 보니 그새 아이는 더 큰 것 같았다.

"저 벌써 3학년이에요!"

아이가 내 생각을 읽은 양 자랑스럽게 말했다. 새삼 놀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게 3년 전이라니. 3년이나 되었다니, 3년밖에 되지 않았다니. 컵에 반 들어 있는 물을 보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런 희한한 기분이었다.

아이를 만난 2023년, 나는 5년과 1년 차 한국어 교사였다. 성인 학습자 경험이 5년(국내로만 치자면 3년), 아동·청소년 학습자 경험이 1년이었다는 뜻이다. 5년 같은 1년이었다. 아동·청소년이라니. 처음 자격증을 딸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학습자들이었다. 비출산하기로 마음먹은 데다 설에나 한번 볼까 하는 조카나 있는 나에게 외계인 같았던 아이들. 그들과 함께하게 된 첫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잘리기 싫어서.

2021년 언저리에 나는 서울과 그 근교의 가족센터(당시 이름으로는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이주노동자지원센터(역시 당시 이름으로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수업 중이었다. 한 기관에서만 일해서 받는 급여로는 도저히 생계유지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중 메인 기관이라 할 만한 곳이 있었다. 쪼개기 계약이나마 3년을 일했고, 다른 곳보다 시수를 좀 더 주는(당연히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곳이었다.

어느 날 그곳의 한국어 교육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21년 겨울이었다. 국비나 도비로 운영되는 기관들이야 늦어도 12월이면 모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결산을 해야 하니, 수업이 없어진 내가 겨울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까 고심하던 때쯤이었다. 내용인즉슨 내년부터 성인반과 함께 중도입국자녀(요즘 말로는 이주 배경 아동·청소년에 포함되는) 수업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아동·청소년 대상 경험이 없다지만, 그때를 거쳐온 사람으로서 그 시기가 이후의 갈 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알았다. 또 중도입국자녀가 국내 출생 이주 배경 아동·청소년과는 다르게 국외에서 자라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으로 입국하는 내·외국인의 자녀를 뜻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해당 연령에 대한 경험이 많거나 전문성이 있는 분이 맡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기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나를 협박했나? 중도입국자녀반 수업을 맡지 않으면 내년에 계약하지 않겠다거나, 시수를 줄이겠다고 했나? 아니다. 그런 극적인 대화는 없었다. 그는 선량하고 열성적인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그저 수업을 맡을 자신이 없다는 나를 열심히 설득하며 재차 부탁했다. 선생님 같은 고민을 하는 분이야말로 그 일에 적격이라고. 협박 같은 극적인 대화는 없었으나 나는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늘 말하고 싶었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잘리기 싫었다. 그가 나를 자르겠다고 위협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해 계약기간은 이미 끝나 나는 공식적으로 잘린 상태였지만 여하간! 잘리기 싫었다.

잘리기 싫었다. 마음 울적한 날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모집 공고를 모으고 공고에는 나와 있지 않은 시급이나 수업 시간을 궁금해하며 가끔은 전화도 해 보고, 대답 없는 문의 메일도 보내도 보고, 향기로운 꽃향기는 개뿔 날짜에 맞춰 열 몇 개가 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돌리고 면접에 갔다가 결과를 확인하고 용역계약서에 사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개월 뒤에, 운이 좋으면 다음 해에 또다시 그 일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승낙했다. 다음 해부터 그 기관의 성인반과 중도입국자녀반을 함께 맡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속이 불편했다. 내가 아주 작아진 느낌이었다. 부끄러웠다. 새로운 경험과 경력을 쌓게 되었으니 괜찮다고 애써 자위하면서 흩어진 자존심을 다시 쌓아 올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굴종적인 승낙이었고 굴욕적이었다. 온전히 나의 자유의사로 결정한 선택이었대도 그랬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불안정한 신분 상태가 나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그 사실이 새삼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물론 여기에도 긍정적인 점이 있기는 하다. 이후로 주변에 더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홀아비 사정을 아는 것은 과부다.

이 과부는 1년 동안 아이들과 지지고 볶았다. 기관도 나도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수염 난 파키스탄 형님과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1~2년 다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동생들, 가깝게는 일본 멀게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다 한국으로 거취를 옮긴 초등학교 고학년이 한 반에 모여 수업했다. 그해에는 입국 기준 3년 미만이 수강 자격이었고 만 24세까지 청소년으로 묶여서 생긴 일이었다.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시수 안에서 반을 나눠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한국어 수준으로 나누면 연령 차이가 너무 심했고, 연령으로 나누면 한국어 수준 차이가 났다. 모두 고려해서 반을 나누면 아이들이 센터에 와서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졌다. 기관은 예산과 계획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시수를 늘려 반을 세분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일단 올해는 시급 대신 봉사 시간으로 얼마 받겠다고 하고 반을 나누었다. 내가 뭐 대단한 봉사 정신이 있어서도, 돈 욕심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분반하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계속 왔다가 떠났다. 배우러 온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기에 한글부터 배우는 아이들이 항상 몇 명은 있었다. 파키스탄 청년은 한글을 떼고 아버지를 따라 공장으로 갔고, 동포 학생 한 명은 한글과 기초 표현을 뗀 뒤 자신을 받아주는 편도 2시간이 넘는 모처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자주 배드민턴을 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잠깐의 여름 방학 동안 한국에 온 김에 수업에 나오던 남매도, 재혼한 파트너가 고향에 있던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몇 년 만에 허락(?)해 주어 겨우 보호자를 다시 만난(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동생이 동시에 여럿 생긴) 아이도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지 않아 한국어 수업을 좀 받다가 중3으로 다시 입학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국적이 있는 아이들도, 비자 상태가 불안정한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나는 F나 E로 시작하지 않는 비자를 거기서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안 다니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막 입국한 아이의 보호자들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하게 된 후 학교에 보내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한국어 수업이 거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다행히 입국 초기가 지나면 한국어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지역아동센터며 태권도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기는 했다. 어쨌든 한국어를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하고 싶었다. 외국어든 제2 언어든, 한국어든 중국어든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언어 수업 활동 자료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고 다녔다. 오리고 자르고 붙이며 교구를 만들었다. 경험이 부족해서 아이들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은 성인 수업의 배는 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과정이나 결과가 즐거웠다는 점이다. 원래 하던 성인 수업 준비는 아이들 수업을 준비하다 짬이 날 때, 또는 기관과 기관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준비했다. 기관 간 이동 시간이 기본 90분이라 생각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H를 만난 것은 내가 그렇게 정신없는 1년을 보내고 난 뒤인 2023년 봄이었다. 이가 빠진 채로 쭈뼛쭈뼛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던 H. 역시 보호자의 재혼으로 한국에 오게 된 H의 고향은 여느 나라처럼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곳이었다. H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는지, 다니다가 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H와 나는 내가 5+1년 차였을 때부터 8+4년 차가 될 때까지 꼬박 3년을 함께 했다. 고집 세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수업 중에 종종 나나 다른 친구들을 힘들게 했던 H지만, 다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 싶으면 금세 춤을 추거나 애교를 부리며 우리를 자주 웃게 하기도 했다. 한국어 실력도 빠르게 늘었다. 1년 간의 한국어 수업 후 H는 초등학교 1학년으로 다시 입학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또 1학년이라고 속상해하기는 했어도 워낙 표현욕이 강한 아이라 확실히 또래 관계 속에서 실력이 부쩍 느는 것이 보였다.

4년 동안 H와 아이들 덕분에 나는 놀이공원에도, 박물관에도, 워터파크에도 갔다. 내가 홀딱 벗고 머리를 감겨 주었던 작은 아이들, 벗은 몸을 쑥스러워하던 10대들은 초등학교에, 중학교에, 고등학교에 가서도 한국어 수업에 계속 나왔다. 안정적인 수업 관리를 위해서는 이제 의사소통이 좀 되는 아이들은 하산시키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수업을(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콧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제 종종 학교 알림장과 숙제, 수행평가나 중간·기말고사 얘기를 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지니 수업 시간은 자연스럽게 방과후로 밀렸다. 6시에 수업이 끝나고 정리하고 집에 오면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수업 준비를 하다 잠이 들고 다음 날 7시에 다시 집에서 나왔다. 한 기관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수업이 이어지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아쉽게도 그런 날은 일주일에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 다 지났을 때, 나는?

뭐라고 뒤를 이어야 할까. 번아웃이 왔다. 그만두었다. 관뒀다. 포기했다. 도망쳤다? 시작도 온전히 내 의지가 아니었고 딱 그 시기에 스트레스를 받아 살이 20kg 넘게 쪘지만, 분명히 즐겁고 기쁘고 보람 넘치는 순간들도 있었던 중도입국자녀반 수업을 나는 맡지 않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사 때문이었으나 더 솔직히 말하면 워라밸 때문이었다. 4년 동안 부모님은 두 분 다 은퇴를 하셨고 나는 애들 수업이 어른 수업에 비해 품도 더 들고 스트레스도 더 받으면, 돈과 시간 둘 중 하나는 충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 왜 올해에는 (같이)공부 안 해요?"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응. 선생님은 선생님의 워라밸이 중요해서. 너희랑 공부하는 거 재미는 있는데 워라밸 지키기가 힘드네"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번에도 나는 자신의 작음을 실감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나 스스로 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계속 찝찝했다. 결과는 반대였지만, 이번에도 결국 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26년 새 학기를 시작한 지 2개월. 교실 문 앞에서 H가 뿌듯한 듯 말했다.

"저 벌써 3학년이에요!"

"이야 그래? 진짜? 이제 3학년 형님이네!" 따위의 대답을 해 주며 나는 서둘러 배낭을 챙겨 나왔다. 올해 이 센터와 처음 계약한 중도입국자녀 담당 한국어 선생님이 복도에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목례하고 났을 때 엘리베이터는 벌써 3층을 지나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 외국인 한글백일장에 참가한 외국인이 글짓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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