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판 바꾸는 패션···유통가 흔드는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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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판 바꾸는 패션···유통가 흔드는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 온다

이뉴스투데이 2026-05-23 09: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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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뉴발란스 직영 성수점에 마련된 ‘뉴발란스X기안84 팝업스토어’를 찾은 외국인 방문객이 매장에 전시된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2026.04.13. [사진=이뉴스투데이DB]
서울 성동구 뉴발란스 직영 성수점에 마련된 ‘뉴발란스X기안84 팝업스토어’를 찾은 외국인 방문객이 매장에 전시된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뉴스투데이DB]

[이뉴스투데이 한민하 기자] 고도화된 인공지능(AI)이 패션 산업의 ‘보조 도구’를 넘어 유통 권력 구조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던 시대가 저물고 AI가 상품을 추천하고 구매를 연결하는 ‘에이전트 커머스’가 현실화되며 패션업계 역시 생존 전략 재정비에 나선 분위기다.  

22일 산업통상부 주최, 한국패션협회 주관으로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개최된 ‘2026 글로벌 패션 포럼’에서는 AI가 패션·유통 산업의 권력 구조 자체를 바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이어졌다. 지난 2019년 시작된 이래 패션업계의 미래 나침반 역할을 해온 본 포럼은 올해 ‘AI 에이전트 시대의 패션 경영’을 주제로 대전환(AX) 전략을 모색했다.

올해는 특히 ‘에이전트 커머스’와 ‘데이터 주도권 경쟁’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모습이다. 

성래은 한국패션협회 회장의 환영사로 문을 연 이날 포럼에서 기조강연자인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코리아대표 파트너와 특별강연자로 나선 글로벌 투자 전문가 앤서니 최(Anthony Choe) 프로비넌스(Provenance) 대표는 “AI 기술이 단순 업무 보조를 넘어 유통 구조와 소비 흐름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포럼에서 가장 방점을 두는 변화는 챗GPT 등 고도화된 AI가 소비자의 검색부터 평가, 추천을 독점하고 결제까지 개입하는 ‘에이전트 커머스(Agentic Commerce)’의 도래다. 

미국 월마트가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고 대화형 쇼핑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시장의 주도권이 기존 앱 기반 플랫폼에서 AI 기반 추천 구조로 이동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소비자 신뢰 구조의 근본적 재편이 자리한다. 기존 모바일 플랫폼·포털의 검색 결과는 ‘광고비를 많이 쓴 브랜드가 상단을 독점한다’는 인식 탓에 피로도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반면 AI 추천은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정보’로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유통 판 자체가 다시 뒤집힐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과거 재래시장 중심 구조에서 백화점·대형마트 시대로, 이후 모바일 커머스와 대형 이커머스 중심 구조로 시장이 재편됐듯 AI 기반 유통 시대 역시 새로운 승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희 BCG 대표. [사진=한민하 기자]
김연희 BCG 대표. [사진=한민하 기자]

김 대표는 AI 도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리쉐이프(Reshape)’를 제시했다. 단순히 생성형 AI 툴을 도입하는 수준의 ‘디플로이(Deploy)’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변화가 나오기 어렵고 R&D와 생산, 마케팅, 공급망 등 기업 핵심 기능의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비즈니스적 임팩트가 나온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AI는 결코 저렴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영역에 일괄 도입한다고 성과가 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기능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모든 기업에 기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자본력과 언어, 현지 네트워크 부족으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던 인디 브랜드들이 AI 기반 번역·마케팅·고객응대(CS)·수요 예측 시스템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 테스트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경영 성과로 연결되는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발표 자료에 따르면 경영진의 75%가 AI를 최우선 전략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체감한 기업은 25%에 불과했다. 이에 AI 시대가 오히려 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분위기다. AI 활용을 자동화·범용화 수준에 머무르는 기업과 조직 구조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편하는 기업 간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과거 디지털 전환(DX) 시기에도 많은 기업들이 시스템만 도입하고 성과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AI 역시 ‘도입 여부’보다 어떤 구조와 목표로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앤서니 최 프로비넌스 대표. [사진=한민하 기자]
앤서니 최 프로비넌스 대표. [사진=한민하 기자]

특히 패션과 화장품처럼 소비자가 비교·탐색에 시간을 쓰는 고관여 카테고리에서는 AI 추천 구조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플랫폼 종속도가 깊어질수록 브랜드 정체성과 가격 주도권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이제는 소비자에게 직접 노출되는 방식보다 AI가 브랜드를 어떻게 읽고 추천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상품 태깅과 데이터 구조 설계,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 역량 자체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앤서니 최(Anthony Choe) 프로비넌스 대표는 “최근 소비자들이 AI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AI 기반 추천과 개인화 마케팅이 실제 구매 전환율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AI를 도입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기술 자체보다 기업이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스타트업과 인디 브랜드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이었던 언어·현지 네트워크·운영 비용 부담을 AI가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소비 트렌드 자체도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는 디자이너나 일부 트렌드 리더가 시장 방향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소비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으로 흐름이 수평화되고 있다”며 “AI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소비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브랜드 탐색 방식 자체도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소비자들이 기존 검색엔진이나 소셜미디어를 넘어 생성형 AI를 활용해 브랜드와 상품을 찾는 흐름도 커지고 있다. AI와 대화하며 상품을 추천받고 비교하는 방식이 새로운 소비 경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구글 역시 AI 검색 기능 확대에 속도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브랜드들은 이제 소비자가 직접 검색해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AI가 발견하고 추천하기 쉬운 구조로 상품과 데이터를 재설계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내다봤다.

다만 AI 에이전트가 유통 판을 흔든다고 해서 곧바로 브랜드의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 추천 구조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상품 데이터와 브랜드 서사, 고객 반응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하게 축적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AI 시대의 경쟁력은 노출이 아니라, AI가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브랜드 자산·경쟁력을 얼마나 갖췄는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이 지점에 주목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대형 플랫폼에 묻혀 노출되지 못했던 상품들도 소비자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진정성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데이터를 얼마나 구조적으로 축적하느냐”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네이버·쿠팡 같은 플랫폼이 시장의 승자였다면 앞으로는 누가 AI를 더 잘 활용해 소비자 접점을 선점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기존 대형 이커머스 역시 새로운 AI 유통 질서 속에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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