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21)'아파르트헤이트 철폐, 민주화·화해 상징'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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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21)'아파르트헤이트 철폐, 민주화·화해 상징' 넬슨 만델라

연합뉴스 2026-05-23 08:0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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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수감 생활…노벨평화상 수상 이듬해 대통령 취임

단임으로 마무리…'정신적 대통령'으로 남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궁 앞의 만델라 상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궁 앞의 만델라 상

[촬영 김성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나는 평생 아프리카 사람들의 투쟁에 내 자신을 바쳤습니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싸웠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으며 이를 성취하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나는 이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연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흑인 분리·차별 정책) 반대 운동에 앞장서다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1964년 리보니아 재판'에서 한 최후진술이다.

만델라는 이 재판 이후 27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뒤 1990년에서야 석방됐다.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흑인 지배도, 백인 지배도 아닌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향한 그의 여정은 2013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계속됐다.

◇ 흑인 지식인에서 민주화 투쟁의 핵심으로

'롤리흘라흘라 만델라'.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 트란스케이의 시골 마을 음베조에서 남아공 2대 부족인 코사족에 속하는 템부 부족 마디바 가문 후손으로 태어난 만델라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가 붙여준 롤리흘라흘라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는 뜻으로, '말썽꾸러기'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만델라는 후에 기독교 계통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은사로부터 '넬슨'이라는 서양식 이름을 얻게 된다.

이에 따라 만델라의 본명은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이다. 남아공 국민은 만델라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가문 이름을 따 '마디바'로 부르곤 한다.

만델라는 9세 때인 1927년 음베조 마을 족장이던 아버지 헨리 음가들라 만델라가 사망하자 템부족 왕을 후견인으로 해서 교육을 받게 된다.

만델라는 템부족 왕실이 있는 음케케즈웨니로 옮겨 초등학교와 중·고교를 졸업하고 당시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포트헤어 대학에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대학에서 학생회 대표로 선출된 그는 '학생회가 대학 당국의 정책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노릇에 머물 수 없다'며 학교 측의 뜻을 거슬렀다. 결국 정학 처분을 받았고 이후 남아공 경제 중심 요하네스버그로 향했다.

법률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인 남아공대학(UNISA) 학사 과정을 이수했다.

이 과정에서 만델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등 흑인 지식층과 교분을 트면서 백인정권의 흑인 차별정책에 눈을 떠 민주화 투쟁을 시작했다.

25세 때인 1943년 당시 민주화 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고 이듬해인 1944년에는 ANC 청년조직인 'ANC청년동맹'(ANCYL)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34세 때인 1952년에는 변호사 자격을 획득해 또 다른 민주화 운동 지도자 고(故)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만델라가 ANC의 중심인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것은 1952년의 전국적 저항운동이었다.

그는 당국의 차별적 조치에 맞서 전 국민이 궐기하는 불복종 운동의 동조자를 규합하는 책임을 맡아 전국을 돌며 치밀하게 지지자를 확보했다. 수개월에 걸친 저항운동을 벌였으며 처음으로 당국에 체포됐다.

이 저항운동으로 ANC는 소규모 결사조직에서 전국적으로 10만명의 회원을 지닌 강력한 조직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러나 백인정권의 탄압정책은 더욱 강경해졌다. 1960년 3월 요하네스버그 인근 샤퍼빌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해 69명이 사망하는 '샤프빌 대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정권은 같은 해 4월엔 반(反)공산당법을 발표, ANC를 불법조직으로 규정했다.

이후 만델라는 더 이상 비폭력 저항운동으로선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며 ANC 지도부에 무장저항운동을 펼 것을 강력히 주장, 1961년 지하 무장조직인 '움콘토 위 시즈웨'(민족의 창)의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만델라는 노동자, 운전기사 등으로 변장하며 백인정권의 감시망을 용케 피해다녀 경찰이 그에게 '검은 뚜껑별꽃'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수개월 체류하고 귀국한 이후 그해 경찰에 체포됐다.

◇ 27년 수감 후 석방…노벨평화상 수상·대통령 취임

만델라는 27년간 긴 옥살이를 마치고 1990년 2월 출감했다.

당시 백인 정권은 노조의 파업 투쟁 등 국내적 저항과 국제사회의 제재 등 압력에 더 이상 흑인탄압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W.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석방하는 한편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만델라는 1991년 ANC 총재로 취임했고 이후 백인정권과 ANC 등 흑인 정당·단체 등이 협상에 나서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민주화 시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만델라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기가 바로 이때로 1993년이었다. 그는 데 클레르크와 함께 공동으로 상을 받았다.

1994년 4월 27일 흑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첫 민주적 선거에서 ANC가 다수당으로 승리했다. 이를 통해 아파르트헤이트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헌법의 간선제 규정에 따라 남아공 의회는 다음 달인 5월에 만델라를 이 나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의 나이 76세 때였다.

만델라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우리는 단합된 국민으로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화해와 국가 건설을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누리도록 하자. 모든 사람이 일자리와 빵, 물 그리고 소금을 갖도록 하자. 다시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압제와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며 화합과 평화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재임 기간 만델라는 백인사회에 대한 보복을 취하지 않고 역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진실화해위원회'(TRC)를 출범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다.

백인정권 당시 경찰, 군 등 안보 기관에 근무하면서 흑인에 대한 테러와 인권탄압을 자행한 가해자가 TRC에 출두해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경우 사면하는 대화합 조치를 취했다.

이를 통해 남아공은 극심한 흑백 갈등을 겪지 않고 안정과 평화공존의 길을 향해 갔다. 흑인과 백인이 피부 색깔이 다르지만,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는 나라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 넬슨 만델라와 F.W. 데 클레르크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 넬슨 만델라와 F.W. 데 클레르크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단임으로 퇴임…'정신적 대통령'으로 남아

만델라는 1999년 5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퇴임했다. 헌법 규정상 재임이 가능했지만, 단임으로 끝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독립의 아버지'들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헌법 개정을 불사하며 오랫동안 재임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퇴임 이후 어린이재단, 만델라재단 등을 통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및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퇴치 활동과 어린이 교육을 위해 기금 마련과 자선활동을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등 사회에 대한 공헌활동을 지속했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기도 했던 그는 전립선암 진단과 고령 등으로 점차 쇠약해지면서 2004년 공식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남아공의 '정신적 대통령'이자 '살아있는 성인'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2010년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폐렴 등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끝에 그해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결식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당시 브라질 대통령 등 세계 91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도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한 마을에 그려진 넬슨 만델라 벽화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한 마을에 그려진 넬슨 만델라 벽화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가 사망한 이후 ANC가 부패와 무능, 엘리트주의 등으로 비판받고 지난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단독 과반 의석을 얻는 데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만델라는 남아공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하고 있다.

넬슨 만델라 재단은 올해 10월18일 처음으로 케이프타운에서 넬슨 만델라 인권 마라톤을 개최한다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유엔은 2009년 총회에서 만델라가 태어난 7월 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지정해 해마다 기념한다.

유엔은 그의 용서·화해·박애의 정신을 기려 국제사회 개개인이 이날 중 67분을 할애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도록 권한다.

67분은 만델라가 1942년 ANC에 입당한 이후 27년간 수감생활을 포함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정계 은퇴할 때까지 인권운동에 헌신한 67년을 상징한다.

실제로 해마다 이날 남아공 곳곳에서는 67분간 공원 청소 등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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