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검은 다리 하나가 화천의 시간을 붙든다.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과 간동면을 연결하는 '꺼먹다리'는 근대 토목 기술과 전쟁의 흔적을 함께 간직한 곳이다. 검은 목재 상판 아래로는 화천이 지나온 굵직한 시간이 차곡차곡 겹쳐 있다.
꺼먹다리 / 한국관광공사(촬영 : 홍정표)
검은빛으로 남은 근대 교량
꺼먹다리는 이름부터 외형을 드러낸다. 다리 상판에 쓰인 목재에는 부식과 습기 변형을 막기 위해 검은색 타르가 칠해졌다. 타르는 방수와 방부 효과를 내는 재료로, 목재가 비바람과 습기에 오래 노출되는 것을 줄이는 데 쓰였다. 이 짙은 색이 다리의 첫인상을 만들었고, 지역에서는 검다는 뜻이 담긴 말로 이 다리를 꺼먹다리라 불렀다. 이름에는 재료와 색, 지역에서 오래 불려 온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꺼먹다리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성근)
다리 위쪽의 검은 목재 상판과 아래를 받치는 회색빛 교각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현대식 교량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구조와 색감이다. 북한강 상류의 물길, 주변 산세와 맞물리면 다리는 풍경 속 시설물이 아니라 화천의 근현대사를 품은 구조물로 다가온다. 거친 물살 위에 놓인 다리의 모습은 화천이 지나온 시간을 한눈에 보여준다. 주변 풍경이 계절마다 달라져도 검은 상판과 묵직한 교각이 만드는 인상은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놓인 다리는 규모보다 남은 시간이 먼저 보이는 장소다.
꺼먹다리의 가치는 독특한 외형에만 있지 않다. 이 다리는 하부 교각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쓰고, 그 위에 목재를 맞물려 짠 가구식 상판을 올린 형태를 지닌다. 철근 콘크리트와 목재 구조가 한 교량 안에서 결합한 모습은 국내 교량 건설 기술이 근대로 넘어가던 시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맞물린 구조는 당시의 토목 기술과 시공 방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꺼먹다리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성근)
건립 당시의 원형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로 이어지는 토목 기술의 변화를 읽게 하는 현장이다. 근대 가구식 구조 교량의 흐름을 살피는 데 필요한 실물 자료로 평가되며, 이러한 건축사적 가치와 보존 상태를 인정받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됐다.
다리의 구조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시대의 층위가 더 또렷해진다. 목재 상판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생활의 길을 떠올리게 하고, 그 아래 철근 콘크리트 교각은 당시 새롭게 받아들여지던 근대 토목 기술을 드러낸다. 재료와 구조가 남긴 흔적은 꺼먹다리가 왜 화천의 풍경 속에서 별도의 존재감을 갖는지 보여준다. 다리의 이름과 외형, 건립 배경이 서로 맞물리며 한 지역의 근현대사가 압축된 장면을 이룬다.
화천댐과 함께 놓인 길
꺼먹다리의 건립 배경은 화천 지역의 근대 산업화와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북한강 수계의 수자원 개발을 위해 화천댐이 준공됐다. 댐 건설은 주변 지형과 교통망에 변화를 불러왔고, 물자와 인력이 오갈 통로가 필요해졌다. 꺼먹다리는 이와 연계되어 1945년에 세워졌다.
꺼먹다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성근)
이 다리는 인근 화천수력발전소와도 연결된다. 화천수력발전소는 화천댐의 수압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도록 지어졌고, 꺼먹다리는 댐과 발전소 주변의 이동을 돕는 기반 시설로 기능했다. 두 시설은 화천의 수자원 개발과 전력 산업, 토목 기술이 함께 움직인 흔적을 보여준다. 다리를 통해 오간 이동의 흔적은 댐과 발전소가 별개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기반 안에서 작동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꺼먹다리를 둘러싼 물류의 기억은 일제강점기의 지역 상황과도 이어진다. 당시 화천 일대는 내륙 자원과 물자의 이동 경로에 포함됐다. 험준한 지형을 넘기 위해 화천과 소양강을 잇는 모노레일 수송 체계가 활용된 것으로 남아 있다. 산악 지형을 넘어 물자가 이동했고, 꺼먹다리는 이 흐름 속에서 지상 교통을 잇는 통로 구실을 했다. 다리의 위치와 기능은 당시 화천이 내륙 교통망 안에서 차지한 비중을 보여준다.
꺼먹다리 / 한국관광공사(촬영 : 홍정표)
이 역사는 식민지 수탈이라는 아픈 배경을 품고 있다. 동시에 당시 화천이 지닌 전략적·경제적 의미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리 주변을 흐르는 북한강의 물길은 자연 풍경으로만 남지 않는다. 물길과 다리, 댐과 발전소가 함께 놓이며 화천의 근현대사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꺼먹다리를 먼저 살피면 이후 화천댐과 평화의 댐으로 이어지는 동선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전쟁의 시간을 견딘 다리
해방 뒤 꺼먹다리는 또 다른 격랑을 맞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강원 지역 중동부 전선에 있는 화천은 치열한 격전지가 됐다. 꺼먹다리는 전방과 후방, 동쪽과 서쪽 전선을 잇는 교량이었다. 병력 이동과 군수물자 보급에 필요한 길이었기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놓였다.
전선이 오르내릴 때마다 다리 주변에서는 전투가 벌어졌다. 포탄이 인근에 떨어지고 총탄이 다리 몸체에 박히는 등 큰 피해를 겪었다. 그럼에도 교량 전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부 철근 콘크리트 교각의 견고함이 작용했다. 꺼먹다리는 통행을 위한 구조물이면서 한국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현장이 됐다.
전쟁 이후 주변 교통망이 달라지고 새로운 교량들이 놓이면서 꺼먹다리는 점차 통행 중심의 기능에서 벗어났다. 이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적 구조물로 자리를 지켰다. 오랜 세월 눈비와 강바람을 맞으며 목재 침목에는 마모와 노후화가 진행됐다. 다리의 검은빛은 남았지만, 구조 곳곳에는 세월이 남긴 흔적이 쌓였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을 견뎌온 다리는 원형 보존과 정비의 필요성을 안고 있었다. 자연적인 풍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근대 교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지역의 기억을 잇는 중요한 과제였다. 꺼먹다리가 지나온 시간은 보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후 관련 기관의 정비와 관리가 이어졌다. 목재 상판과 교각 상태를 살피는 보수 작업이 이뤄졌고,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비가 진행됐다. 노후화된 목재는 교체됐고, 검은 타르를 칠한 상판의 인상도 되살아났다. 다리는 이러한 보존 과정을 거치며 근대 교량의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지금 이곳을 찾는 일은 옛 다리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다리의 표면과 구조를 천천히 살피는 것만으로도 여러 시대의 흔적이 드러난다. 화천댐 건설, 수력발전소와 물류망, 한국전쟁과 보존 과정을 한 자리에서 차분히 따라가게 된다. 다리 위에 남은 검은색은 시간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현재의 풍경과 맞닿아 있다. 꺼먹다리는 화천의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지만, 그 안쪽에는 산업과 전쟁, 보존의 시간이 차례로 쌓여 있다.
북한강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현대사
꺼먹다리와 화천댐에서 시작한 물길의 이야기는 파로호 상류의 '평화의 댐'으로 이어진다. 평화의 댐은 1980년대 후반 북한이 건설 중이던 임남댐의 붕괴나 의도적 수량 방류로 생길 수 있는 수도권과 중부 지역 수해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지어진 대응 댐이다. 당시 국민 성금 모금 운동을 바탕으로 건설이 추진됐고, 이후 수방 능력 강화를 위한 증축 공사를 거쳐 현재의 규모를 갖췄다.
평화의 댐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성근)
꺼먹다리가 20세기 전반 식민지 수탈과 한국전쟁의 상흔을 품고 있다면, 평화의 댐은 20세기 후반 남북 대립과 냉전의 분위기, 평화를 향한 바람을 함께 담고 있다. 평화의 댐 구역의 '세계 평화의 종 공원'에는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든 '세계 평화의 종'이 설치돼 있다. 꺼먹다리에서 평화의 댐으로 이어지는 길은 화천의 물줄기를 따라 한반도 근현대사의 여러 층위를 살피게 한다.
세계 평화의 종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성근)
평화의 댐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꺼먹다리와 다른 시대의 긴장감이 겹쳐진다. 한쪽에는 댐과 발전소를 중심으로 짜인 산업의 기억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남북 관계 속에서 수해에 대비하고 평화를 기원한 현대사의 장면이 놓인다. 같은 물줄기 위에 서로 다른 시대의 목적과 흔적이 나란히 남은 셈이다. 그래서 이 구간은 강과 댐을 따라 이동하는 길이면서, 시대별로 달라진 화천의 역할을 되짚는 길이 된다.
여정을 마무리하는 화천의 맛
역사와 안보의 현장을 둘러본 뒤에는 화천의 자연이 키운 향토 음식으로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 화천은 높은 산과 북한강 상류가 만나는 지형을 지녔다. 이 환경은 산천어 요리와 지역 농산물, 산나물 같은 식재료로 이어진다. 묵직한 역사 현장을 지나 지역의 식탁을 마주하면, 화천의 산과 강이 오늘의 생활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화천을 상징하는 식재료 가운데 하나는 산천어다. 산천어는 맑고 차가운 계곡물에서 서식하는 연어과 민물고기로, 육질이 단단한 편이다. 화천에서는 산천어를 얇게 썰어 회로 먹거나 무, 미나리 등 채소를 넣고 매운탕으로 끓여낸다. 산천어 매운탕은 비린내가 적고 국물 맛이 깊어 역사 탐방 뒤 맛보기 좋은 향토 음식으로 꼽힌다.
화천 산천어축제 / 연합뉴스
높은 고도와 큰 일교차는 농산물의 맛에도 영향을 준다. 화천 토마토는 이러한 기후 조건 속에서 재배되는 특산물이다. 특히 화악산 자락의 깨끗한 환경에서 친환경 공법으로 재배되는 화천 토마토는 저장성이 좋고 맛이 진한 농산물로 꼽힌다. 여름과 가을 제철을 맞는 토마토는 화천의 계절감을 보여주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깊은 산에서 나는 곰취, 참나물, 곤드레 등 제철 산나물도 화천의 식탁을 이룬다. 봄에 거둬 말려둔 산나물은 무침이나 돌솥밥으로 차려진다. 산나물 정식은 산과 강이 가까운 화천의 지형을 음식으로 전한다. 꺼먹다리에서 시작한 화천 여행은 근대 교량과 전쟁의 기억, 평화의 댐으로 이어지는 현대사, 그리고 지역의 식재료까지 한 흐름으로 묶인다. 검은 다리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화천의 물길과 산세, 그 위에 남은 사람들의 시간이 함께 보인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