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지난 20일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총파업이 유보됐다.
이번 노사 갈등은 인공지능(AI) 시대 급격한 생산성 증대로 발생한 이윤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문을 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AI시대가 본격화되면 청년층의 일자리 소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AI 산업으로 발생한 사회적 과실을 취약 계층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AI 시대의 과실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22일 'AI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위원회'를 발족하고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또한, 이재명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주요 국제기구들과 '글로벌 AI 허브'를 조성하고 AI 시대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공동 대응키로 했다.
김영훈 "AI시대, 사회적 재분배 문제" 김용범 "AI 초과세수, 국민배당하자"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금을 놓고 협상을 이어온 끝에 지난 20일 합의에 성공했다.
이번 노사간 논의는 AI시대 사회적 재분배 논의의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AI 시대를 맞아 역대급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노조의 성과금 지급 요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협상을 중재했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MBC라디오에서 "AI시대 급격한 생산성 증대와 이윤을 어떻게 사회적 재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민 배당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AI 인프라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국민에게 일부 환원하자는 취지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당 고민해야 할 설계의 문제"라며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이)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면서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것이 설계의 정당성이자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르웨이의 사례를 들며 한국의 국민배당금 제도 도입 필요성을 피력했다. 김 실장은 "노르웨이는 1990년대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그 운용 수익을 재정 원칙에 따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자원 호황을 일시적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라며 "한국이 처한 상황은 성격이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구조적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 그 원칙에 가칭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 AI 시대 노사상생 위원회 발족
정부 차원에서 관련 논의도 이미 시작됐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2일 'AI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 위원회'를 발족하고 제1차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위원회는 AI 확산에 따라 산업현장과 노동시장 전반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위원회는 황덕순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을 위원장으로 노동계 위원 3명, 경영계 위원 3명, 정부 위원 4명, 공익위원 6명 등 총 17명으로 구성되며 1년 동안 운영된다.
위원회는 구체적으로 ▲AI 도입 및 활용의 영향과 실태 ▲노사 상생 AI 활용 및 직무변화 대응 방안 ▲AI 데이터 수집·활용 수용성 제고방안 ▲AI 전환 지원체계 구축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특히 산업현장의 AI 도입 및 활용 실태를 확인하고, 현장방문과 전문가 논의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산업과 노동, 노사관계의 질서가 함께 재편되는 전환기에 서 있다"며 "AI 전환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일자리 구조 변화와 제도적 대응이라는 과제를 동반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AI 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노동분야의 일자리 구조 변화를 어떻게 함께 결정하고, 감당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AI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 위원회에서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기술 발전과 노동이 조화를 이루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황덕순 AI 노사상생 위원회 위원장은 "AI 기술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할 것인지에 따라 일자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며 "노사가 상생하는 방향으로 직무와 일자리의 변화에 대응하고 교육훈련을 위한 노사정의 실효성이 있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추상적인 찬반 논의에 머물지 않고 AI가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도입되고 활용되고 있는지, 노동자와 기업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어떤 제도적 보완방안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데서 출발하겠다"고 했다.
"일자리 등 글로벌 난제 해결"…국제기구와 AI 협력·연계 체계 구축
정부는 주요 국제기구들과도 협력에 나선다.
21일 김민석 국무총리와 관계부처는 대한민국 내 조성될 '글로벌 AI 허브'의 비전 선포식을 21일 개최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이주기구(IOM),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난민기구(UNHCR), 유엔아동기금(UNICEF),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 9개 국제기구와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미주개발은행(I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 등 5개 다자개발은행(MDB)이 함께해 허브를 중심으로 하는 범지구적 AI 협력·연계 체계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았다.
'글로벌 AI 허브'는 △정책·표준 수준에서 개발도상국 AI 도입 촉진 및 AI 기술표준·지침 수립 △공통 AI 협력 기반 수준에서 데이터·모델·실증사례 공유 등 기관·국가 간 경계를 뛰어넘는 협력체계 마련 △실증 수준에서 도구·모델·설루션 등 개발 및 실제 활용 사례 도출로 글로벌 문제 해결 등 역할을 선도할 계획이다.
정부와 9개 국제기구는 그간 상호 협의를 바탕으로 구체화한 글로벌 AI 허브의 협력 범위 및 분야를 명시하는 공동성명을 선언했다. 허브는 "모두를 위한 AI, 글로벌 과제 해결을 위한 AI"(AI for All, AI to Solve Global Challenges)라는 비전 아래 각국 정부와 학계·연구계, 공익 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한데 모여 협력하는 개방적 플랫폼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아울러 국제기구들이 허브의 첨단 AI 인프라·모델을 공동 활용해 전 지구적 난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개발도상국 등을 대상으로 AI 정책·기술 자문과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실천적인 글로벌 협력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비전 선언에 대해 에이미 포프 IOM 사무총장, 질베르 웅보 ILO 사무총장, 도린 보그단 마틴 ITU 사무총장, 알렉산더 더크루 UNDP 총재 등은 축사를 통해 화답하며, 기관 차원의 역량을 아끼지 않고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WB, IDB, ADB, EBRD, CABEI가 향후 한국 내에 각각 설립할 예정인 AI 특화센터*들과 글로벌 AI 허브와의 연계 방안을 발표하며, 국제기구 중심의 글로벌 AI 허브와 금융 지원 기능을 갖춘 다자개발은행(MDB) AI 허브가 연계된다면 수요 발굴 및 모델 개발·실증부터 개도국으로의 AI 개발사업 확산까지 아우르는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부처와 허브 참여 국제기구 및 다자개발은행은 이날 선포된 비전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무 그룹을 통해 단계적 실행 계획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허브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상시 소통 채널을 가동하고 긴밀한 공조 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李 대통령, ILO 응보 사무총장 접견 "AI 일자리 대체 문제가 큰 화두…ILO 역할 기대"
이재명 대통령도 22일 질베르 웅보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을 만나 AI와 노동의 균형 방안을 논의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오전 청와대에서 웅보 총장을 접견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과 웅보 총장은 AI 기술 발전으로 노동시장과 산업구조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노동권 보호와 기술혁신 간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과제라는 데 공감했다. 아울러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어 AI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 기조를 강조하며,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노동권 보호와 사회안전망 구축, 직업훈련과 평생 학습 강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ILO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비공개 전환에 앞서 진행된 모두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웅보 사무총장의 방한을 환영하며 "ILO가 국제 노동운동 역사에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글로벌 AI 허브에 같이 참여해 주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 노동 운동 발전사에서도 그렇고, ILO가 참으로 큰 영향도 많이 끼쳤고 대한민국 노동운동에 크게 도움도 그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에 의한 일자리 대체 문제가 큰 화두가 될 텐데 역시 ILO의 역할이 매우 기대가 된다"며 "쉽지 않은 기회가 생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지 노동정책 관련해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에 웅보 총장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높이 평가하고, 노동 분야의 AI 활용에 있어 대한민국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뜻을 표했다.
그는 "ILO는 대한민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AI 허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를 통해 저희가 노동 분야에서 AI를 극대화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글로벌 AI 허브를 통해 다른 국가들에게 AI 활용한 노동 행정과 사회 보고, 노동 정책까지 다양하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또 "이 자리를 빌려서 대한민국의 다양한 기여와 공여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대한민국이 ILO 내에서 공여금 순위가 10위 안에 들어간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이 "그 점을 고려해서 우리 대한민국에 아주 유능한 인재들 많이 있으니까 국제기구 ILO에서 많이 활용해달라"고 하자, 웅보 총장은 "지당한 말씀"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웅보 총장은 내년 6월 개최되는 ILO 총회에 이 대통령이 참석해 노동 존중 정책 방향과 성과에 대해 연설하길 제안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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