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비트코인 거래량과 원화 신규 가입자 확보가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최근에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특히 두나무와 빗썸이 지난 1분기 약세장 속에서도 테더 보유량을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거래소 시장이 사실상 '디지털 달러 유동성 경쟁'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과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지난 1분기 말 보유 가상자산 평가액은 1조7864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9.2% 감소했다. 전체 보유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트코인(BTC) 가격 하락 영향이다.
반면 테더 보유량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두나무의 테더 보유량은 1279만9024개로 전분기 대비 289만개 이상 증가했다.
빗썸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빗썸의 1분기 보유 가상자산 평가액은 1385억8000만원으로 전분기 대비 50.4% 감소했지만, 테더 보유량은 954만개 넘게 증가했다. 트론(TRX) 보유량 역시 약 578만개 늘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 자산 운용 변화가 아니라 거래소 사업 구조 자체가 바뀌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기존 국내 거래소들은 원화 입출금 기반 거래 구조에 의존해 왔지만, 최근에는 테더마켓과 코인 대여 서비스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실제 업비트는 최근 코인 빌리기 서비스 대상 자산을 기존 11종에서 25종으로 확대했고, 담보 자산 역시 원화 중심에서 비트코인·이더리움·테더 등으로 넓혔다.
테더는 가격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담보·대여 자산으로 활용도가 높다. 사실상 가상자산 시장 내부에서 '디지털 달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거래소 경쟁력이 원화 신규 가입자 수와 비트코인 거래량이었다면 지금은 누가 가장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 유동성을 확보하느냐가 핵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테더는 단순 코인이 아니라 거래소 생태계의 기축통화 성격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론 보유량 확대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테더 전송 시 속도와 수수료 효율 때문에 트론 네트워크(TRC-20) 사용 비중이 높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해외 거래소 송금과 온체인 이동 수요가 커질수록 트론 확보 필요성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실제 빗썸은 현재 자체 코인 대여 서비스인 '렌딩 플러스'를 운영 중이며, 테더·트론 수요 확대에 맞춰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장기적으로 국내 거래소 구조 자체를 바꿀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은 여전히 원화마켓 중심이지만,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이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공통 결제·거래 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해외 거래소 연계와 디지털자산 토큰화(STO) 시장 확대가 본격화될 경우 국내 거래소들도 점차 테더 기반 시장 비중을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근 금융권과 증권업계가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 인프라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두나무 지분 투자 과정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 가능성을 언급했고, 신한금융그룹 역시 홍콩에서 디지털자산 라이선스 확보를 추진 중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시작되면 은행·거래소·핀테크 간 경쟁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핵심은 누가 디지털 달러와 원화 기반 유동성을 동시에 장악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거래소들의 수익 구조가 스테이블코인과 대여 서비스 중심으로 이동할수록 규제 리스크 역시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거래소 간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당국이 향후 스테이블코인·렌딩 서비스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연호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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