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침묵하면 사춘기 때 혼인 취소할 수 있는 선택권도 사라져
(자카르타=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아동 결혼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조항이 포함된 법령을 발표하자 유엔이 여성과 아동 권리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22일(현지시간) AP·AFP 통신과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아프간 법무부는 최근 이혼에 관한 31개 조항이 담긴 제18호 법령을 발표했다.
이 법령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충분한 지참금을 주고받지 않거나 부도덕한 착취를 통해 미성년 소년이나 소녀를 결혼시킨 경우 이 혼인 계약은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언뜻 보기에는 미성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 같지만, 이는 충분한 지참금을 주고받거나 착취가 없다면 아동 결혼을 합법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이다.
유엔 아프가니스탄지원단(UNAMA)도 "이는 아동 결혼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법령은 또 법원의 승인을 받을 경우 해당 소년이나 소녀가 사춘기가 됐을 때 혼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다만 소녀가 이전에 침묵했다면 사춘기가 된 이후에도 혼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선택권은 없어진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더타임스는 보통 여자아이들의 사춘기는 8∼13살 때 시작된다며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의 침묵을 결혼 동의로 해석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젯 가뇽 UNAMA 부특별대표도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만드는 흐름의 일부"라고 비판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민법에 따르면 소녀의 법적 결혼 가능 나이는 16세, 소년은 18세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아프간 탈레반 정권 대변인은 최근 국영 방송 RTA와 인터뷰에서 "이슬람교에 맞서는 이들의 반대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가 이미 소녀들의 강제 결혼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고, 법원과 국가 선악부가 최근 1년 동안 수천건을 조사했다며 "이는 여성 권리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은 옛 소련군이 철수한 이후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에서 처음으로 집권했다.
그러나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배후로 '알카에다'를 지목했고, 우두머리인 오사마 빈라덴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간을 공격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20년 만인 2021년 미군이 철수하자 재집권한 탈레반은 여성의 중학교 진학을 금지하고, 취업뿐만 아니라 남성 보호자 없이는 외출도 못 하게 막는 등 여성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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