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신용불량자 등 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약탈'에 가까운 행위를 일삼는 불법·변종 대부업체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경찰이나 금융당국 단속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파고들 뿐 아니라 갈수록 지능화·고도화 된 수법까지 활용하는 탓에 지금 상태로 라면 근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단순 모니터링 체제만으론 한계가 명확한 만큼 피해자들의 처벌 수위의 대폭 상향, 불법·변종 대출을 가능케 한 구조적 문제 해결 등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신용 취약자, 미성년자 등 약한 사람만 골랐다…연 수백·수천% 이자 '변종 고리채' 기승
직장인 K씨는 최근 지옥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수년 전 부모님 병원비를 위해 제2금융권 대출을 받은 이후 이자 감당이 어려워 결국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자율과 상환 기간을 조절해 착실히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 와중에 또 다시 목돈을 쓸 일이 생겨 제도권 대출을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휴대폰 개통만 하면 당일 입금"이라는 문구였다. 알아보니 개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구매한 후 업자에게 주면 절반 수준의 현금을 주는 구조였다. 선이자로 무려 50%나 떼는 구조나 다름없는 셈이다. A씨는 당장 현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요구에 응하긴 했지만 지금도 매 월 휴대폰 요금 청구서를 볼 때 마다 한숨이 나온다.
금융당국, 경찰 등에 따르면 A씨가 겪은 일은 수년 전부터 활개치고 있는 이른바 '내구제 대출'의 전형적인 행태 중 하나다. '내구제 대출'이란 급전이 필요한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등을 할부·임대 형식으로 개통하게 만든 뒤 현금을 주고 제품만 회수하는 수법을 말한다. 통상 제품 매입 가격은 절반 안팎 수준에 불과하다. 대출이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사실상 중고거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있는 '변종 대출'이다. 피해자 입장에선 빚이 쌓여도 정작 손에 쥔 돈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출 개념으로 따진다면 선이자 50%를 낸 것과 다름없다. 형행법상 선이자 자체는 합법이지만 이자율이 법정 최고한도를 넘는다면 명백히 불법이다.
경제적 약자를 타깃으로 한 '변종 대출' 수법은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인기 드라마 소재로도 등장했던 미성년자 대상의 이른바 '대리입금'도 활개 치고 있다. '대리입금'은 광고 과정에서 단속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업자들이 만든 불법 영업 목적의 용어다. 타깃과 용어만 다를 뿐 수법은 불법 대부업체들의 대표적 수법인 '고금리 소액대출'과 동일하다. 소액을 최소 수일에서 최대 수개월 기간 동안 빌려주고 하루 단위로 이자와 원금을 받는 식인데 하루 단위로 챙기는 이자를 연 이자로 환산하면 그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최근 횡행하는 미성년자 대상의 대리입금의 경우 SNS를 통해 광고가 이뤄지고 돈을 빌려주고 수고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수법이 쓰인다. 수고비 역시 원금의 일정 비율로 책정되고 하루 단위로 쪼개서 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자나 다름없다. 수고비 비율은 연으로 따졌을 때 수천%에 달할 정도로 살벌한 수준이다. 추심 방법 또한 그에 못지않다. 연체비를 추가로 부과하는가 하면 학교로 찾아와 빚 독촉을 하고 심지어 전화번호, 사진, 학교 등을 SNS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대부분 부모 몰래 돈을 빌리고 또 사회 경험도 부족해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철저히 악용하고 것이다.
심각한 상황 인식 불구 해결은 요원…"처벌수위 높이고 통신사·렌탈업체 일부 책임 물어야"
주목되는 사실은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이 관련 행위 근절을 위해 수년째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2년 미성년자 대상의 '대리입금' 심각성을 알리는 동시에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이듬해 금융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구제대출의 개념은 물론 향후 발생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불법 행위 유형까지 상세히 담긴 '내구제대출(휴대폰깡)의 유혹에서 살아남기!'라는 짧은 웹툰 형식의 콘텐츠를 공개했다. 경찰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진행한 특별단속을 통해 불법사금융 관련 인원 1553명을 검거했다.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이 이미 수년 전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근절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방증이다.
국회와 소비자 시민단체, 금융권 등에선 보다 지금과 같이 감시·적발 수준의 대응만으론 불법사금융 근절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어려운 만큼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앞서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불법사채업자 1553명이 검거됐지만 그 중 구속된 인원은 고작 51명에 불과했다. 비율로 따지면 3.2% 수준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나머지 1502명은 경제적 약자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론 처벌 수위의 대폭 상향과 불법 사금융을 통한 수익 몰수, 불법·변종 대출을 가능케 한 구조적 문제 해결 등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통상 불법 대부업체 운영자에 적용되는 처벌 조항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채권추심법 위반 등이다. 처벌 수위는 전자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후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이다. 다만 불법 대부업체를 찾은 피해자들의 특성 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을 통한 합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설령 합의에 실패해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가벼운 벌금이나 집행유예 처벌에 그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지난해 말 600여명에게 약 10억원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17억원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뜯어낸 불법 사채업자들에게 솜방망이에 가까운 판결이 내려져 파장이 일기도 했다. 당시 재판은 항소심이었는데 징역 1년6개월에 추징금 6억70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비해 형량이 크게 줄었다. 재판부의 판단은 징역 1년, 추징금 2800만원이었다. 여론 안팎에선 사실상 원심의 판단을 뒤엎은 결과라는 공분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통신사 또는 가전 렌탈업체 등에도 일부 책임을 묻는 방안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내구제 대출'의 경우 결국은 통신사나 렌탈업체 등과의 할부 계약이 필수 전제 조건이라는 이유에서다. 통신사나 렌탈업체에서 의심되는 가입을 거절한다면 불법대출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에서 불법 행위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내구제대출 피해자 K씨 역시 "대출 과정에서 불법 대부업체와 한 통신사 대리점이 아예 대놓고 소통하는 모습을 봤다"며 "대리점 입장에선 가입자가 늘어나는 게 이익이다 보니 그 이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관하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리점이 불법 대부업체의 공범이 되는 셈인데 본사 차원의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청소년이나 신용 취약계층을 겨냥한 불법 사금융은 경제적 약자의 절박함을 악용해 일상까지 파괴하고 있다"며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현재의 사법 기조로는 갈수록 지능화되는 범죄 수익의 유혹을 막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범죄 수익을 전액 몰수하는 등 불법 사금융에 대한 강력한 추가 규제가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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