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만 아셨나요?…한옥 체험·정갈한 한식 맛보는 '600년 고택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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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만 아셨나요?…한옥 체험·정갈한 한식 맛보는 '600년 고택촌'

위키트리 2026-05-22 15:4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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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의 산기슭에는 수백 년 시간을 품은 한옥들이 모여 있다. 안동댐 건설로 사라질 뻔한 마을의 건축물은 자리를 옮겨 오늘까지 남았다. 선비의 학문과 가문의 기록, 고택의 하루가 이어지는 '안동 군자마을'이다.

안동 군자마을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이범수)

35번 국도 옆에서 만나는 600년 세거지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 방향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차로 20분 정도 이동하면 도로 오른편에 안동 군자마을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국도변 자연석에 새겨진 ‘군자리’ 표석을 지나 안쪽으로 굽은 길을 100m가량 들어가면 20여 채의 고가가 산기슭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큰길과 가까운 곳이지만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금세 차분해진다. 오래된 한옥들이 서로 간격을 두고 앉아 있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유적처럼 다가온다. 길은 크지 않지만 시야가 트여 고택과 정자, 담장의 흐름이 차례로 읽힌다.

안동 군자마을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이범수)

마을은 경사가 완만한 산 중턱에 자리한다. 가옥 앞쪽 골짜기에는 잔잔한 호수 형태의 풍경이 펼쳐지고, 정면으로는 낙동강 줄기가 굽이쳐 흐른다. 뒤편에는 소나무 숲이 넓게 이어진다.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한 배산임수 지형 속에서 고택과 자연이 차분하게 어우러진다. 조선시대 양반가가 중시한 주거 배치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함께 살필 수 있는 풍경이다. 마을 앞뒤의 지형이 분명해 고택들이 왜 이 자리에 다시 자리 잡았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산기슭을 따라 놓인 고택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각기 다른 마당과 처마 선을 드러내, 마을을 천천히 걷는 동안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고택과 숲, 물길이 한 시야에 들어오며 발걸음도 자연히 느려진다. 마을의 첫인상도 오래 남는다.

안동댐 건설과 함께 자리를 옮긴 고택들

지금의 군자마을 풍경은 안동댐 건설이라는 큰 변화 속에서 만들어졌다. 마을의 가옥과 정자 상당수는 원래 현재의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가 아니라 ‘외내’로 불리던 평지 마을에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낙동강 상류에 안동댐 건설이 추진되면서 외내 마을은 물에 잠길 위기에 놓였다.

군자마을 고택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이범수)

외내는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약 600년 동안 살아온 집성촌이었다. 문중의 유산과 고가가 사라질 상황에 놓이자, 후손들과 관계 기관은 국가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이주를 추진했다. 안동댐 조성에 따른 수몰이 시작되기 전,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을 비롯해 가치가 높은 고가와 정자 20여 채를 해체해 현재 자리로 옮겼다. 원래 터에서 약 2km 떨어진 와룡면 오천리 산기슭으로 부재를 옮겨 옛 모습에 가깝게 다시 세운 것이다. 옛 마을은 호수 아래로 사라졌지만, 그곳의 건축물은 오천유적지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군자마을’ 이름의 배경

오천유적지에 남은 집성촌의 역사는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초기 광산 김씨 가문의 농수 김효로가 이 지역에 터를 잡으며 집성촌의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가문에서는 학문에 힘쓴 인물이 꾸준히 나왔고, 영남 유교 문화의 흐름 속에서 이름을 남긴 학자들도 배출됐다. 이 때문에 군자마을은 고택이 모인 장소이면서 학문을 매개로 한 집성촌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오래된 집 및 정자 사이로 이어지는 길에는 가문이 지켜온 학문과 예의 흔적이 배어 있다.

군자마을 고택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이범수)

‘군자마을’이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한강 정구 선생과 관련한 일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사헌을 지내고 안동 부사로 부임했던 정구 선생이 이 마을을 찾았고, 이곳에서 배출된 학자들의 성취와 주민들의 품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마을을 둘러본 뒤 “오천 한 마을에는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오늘날의 군자마을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마을은 이름에 담긴 뜻처럼 선비 정신의 전통을 이어왔다. 현재도 광산 김씨 예안파 후손들이 이곳에 머물며 조상들이 남긴 유산을 지키고 있다. 고택이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일상과 함께 이어지는 점이 군자마을의 특징이다. 영화 <관상>의 주요 배경 촬영지로 활용되며 대중에게도 더 널리 알려졌다.

퇴계 이황과 한석봉의 흔적

마을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걷다 보면 200년에서 최고 500년에 이르는 세월을 지나온 국가민속문화유산 고택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이 건축물들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주거 양식과 정자 문화를 간직하고 있어 학술 가치도 크다. 건물마다 쓰임과 내력이 달라 한마을 안에서도 여러 시기의 생활 문화를 함께 살필 수 있다. 처마와 마루, 담장, 마당의 배치가 조금씩 달라 집마다 다른 표정을 만든다.

후조당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이범수)

마을에서 중심이 되는 건축물은 광산 김씨 군자마을 종중의 종가 건축물인 후조당이다.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가문의 격식과 생활 문화를 함께 보여준다. 전면에 걸린 ‘후조당’ 현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로 제작된 것으로, 공간의 역사성을 더한다. 후조당은 앞쪽에 놓인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툇마루에서 바라보면 산기슭 아래 마을 전경과 골짜기 앞 호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뒤편으로는 오래된 소나무 숲이 이어져 고택의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앞마당과 툇마루, 숲이 이어지는 구조는 집 안에서도 자연을 가까이 두려 했던 전통 한옥의 성격을 보여준다.

후조당 / 안동 군자마을 홈페이지

후조당과 함께 오천유적지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탁청정이 있다. 탁청정은 조선 중기인 1541년 김수가 자신이 살던 집에 딸린 정자로 세운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자연을 곁에 두고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나누던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관리된다.

탁청정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처마 아래 걸린 현판 글씨는 한석봉이 쓴 것으로, 힘 있는 필체가 정자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내부 나무 마루 위쪽 벽면에는 퇴계 이황을 비롯한 조선시대 석학과 문인들이 탁청정의 풍경을 두고 지은 시문을 새긴 시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이곳이 영남 지식인들이 학문과 예술을 나누던 교류의 장소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정자의 규모와 현판, 시판은 건축과 서예, 문학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장면을 이룬다.

기록과 생활 문화를 품은 공간

군자마을의 가치는 건축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광산 김씨 예안파가 대대로 남긴 기록과 문헌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생활상과 학문 수준을 살피게 하는 자료다. 마을 곳곳에는 그런 내력을 보여주는 공간이 남아 있다. 주거와 학문, 접객, 기록 보존의 기능이 나뉘어 있어 한 가문이 남긴 생활의 층위를 따라 읽게 한다.

대표적인 곳이 조선시대 전통 조리서인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의 고택이다. 수운잡방은 조선 전기 양반가에서 실제로 조리하던 음식의 조리법과 술 빚는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문헌이다. 한국 식문화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김유의 고택은 학문과 생활 문화가 함께 이어진 마을의 성격을 보여준다.

마을 한쪽에 자리한 숭원각은 광산 김씨 예안파 문중의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후조당 유물을 비롯해 가문의 내력과 전통을 보여주는 자료가 남아 있다. 선대가 사용한 생활 유물과 관직 임명장인 교지, 고서 등은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조직과 운영, 기록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숭원각 관람을 원하는 경우 현장에서 별도 요청 절차를 거치면 전시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고택에서 머무는 하룻밤

안동 군자마을에서는 고택을 둘러보는 데서 나아가 조선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고택 숙박 체험이다. 숙박 공간은 원형을 간직한 전통 고택 구역과 이용 편의를 고려해 새로 지은 한옥 구역으로 나뉜다.

전통 고택 구역에서는 예안파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과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에 머물 수 있다. 이 가운데 읍청정은 조선 중기 학자인 김부의 선생의 호를 이어받아 세운 정자다.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 선생이 제자의 호를 바탕으로 이름을 지어준 내력을 지닌다. 전통 고택 숙박 공간은 오래된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있어 현대식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건물 외부에 따로 마련돼 있다. 반면 이용 편의를 높여 새로 지은 한옥 구역의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에는 샤워실과 화장실, 강당 시설이 갖춰져 있다.

산남정 / 안동 군자마을 홈페이지

아침에는 반가의 식문화를 바탕으로 차린 한식 상차림이 제공된다. 10인 이상 주문 시 1인당 9000원에 정갈한 아침상을 맛볼 수 있다. 가문에 전해 내려온 조리법과 지역 식재료를 바탕으로 준비한 아침상은 자극적인 맛보다 담백하고 정갈한 한식의 결을 살린다. 고택에서 맞는 아침 시간에 조선시대 대가족 양반가의 식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구성이다. 하룻밤 머무는 경험에 식문화 체험이 더해지면서, 군자마을은 관람형 고택 마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통 생활 문화를 보여준다.

마을 관람은 고택 사이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실제 후손들이 거주하는 공간도 있는 만큼, 생활 공간과 관람 공간을 구분해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고택 외관과 정자, 숲길을 차례로 따라가면 마을이 품은 역사와 오늘의 생활이 한 길 위에서 이어진다. 마을을 걷는 동선은 급하지 않다. 고택의 외관을 살피고 정자에 걸린 현판과 시판을 따라가다 보면, 이곳이 한때 생활과 학문이 맞물린 집성촌이었음을 차분히 확인하게 된다.

마을 안을 걸으며 정원과 정자, 고택 외관을 살피는 일반 관람은 무료다. 다만 한옥 체험을 비롯한 일부 프로그램은 별도 비용이 든다. 자세한 내용은 안동 군자마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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