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은 군사파쇼다", "나는 파쇼가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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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은 군사파쇼다", "나는 파쇼가 좋은데"

프레시안 2026-05-22 14:58: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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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받아 들었다. 최병국(崔炳國, 1942~) 항목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구속된 문부식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전두환 정권은 군사파쇼다"라고 말하자, 담당검사 최병국이 이렇게 대꾸했다는 것이다.

"너는 왜 파쇼를 싫어하니? 나는 파쇼가 좋은데."

능청도 이런 능청이 없다. 사람을 잡아다 조사하면서 파쇼가 좋다고 고백하는 검사. 그런데 이 사람이 훗날 3선 국회의원이 됐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뻔뻔함이 아니다. 뻔뻔함을 가능하게 한 구조의 이야기다.

1942년 울산 출생, 공안검사의 탄생

최병국은 1942년 1월 27일 경남 울산에서 국민학교 교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 부산고, 1965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68년 제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3년 부산지검 마산지청 검사로 첫발을 디딘 그는 부산지검, 대구지검, 다시 부산지검을 오가며 경상도 지역 공안사건의 중심에 서게 됐다.

1980년 5·17 내란 이후 전두환(1931~2021) 신군부는 부마항쟁의 진원지 부산을 특별히 관리하기로 했다. 1981년 4월 부산지검에 공안부가 신설됐고, 최병국, 고영주(1949~), 장창호 등이 배치됐다. 훗날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될 공안검사들이 한 건물에 모인 것이다. 한국 공안권력의 세계는 참으로 작고, 끈끈하고, 서로를 잘 지켜준다.

세계사 속의 동류, 이념으로 무장한 공안의 전사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인물이 떠오른다. 미국의 로이 콘(Roy Cohn, 1927~1986)이다.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의 핵심 실행자로,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의 법률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파멸시켰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파쇼가 좋은데"라는 최병국의 말처럼, 콘도 자신의 신념을 숨기지 않았다.

동독의 에리히 밀케(Erich Mielke, 1907~2000)도 있다. 슈타지(비밀경찰) 수장으로 수십 년간 동독시민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그는 체제붕괴 후 의회에서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연설해 웃음거리가 됐다. 최병국의 "나는 파쇼가 좋은데"와 묘하게 겹친다. 공안의 전사들은 때로 놀랍도록 솔직하다.

부림사건, "검사의 방문은 저희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최병국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81년 부림사건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 부산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19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됐다. 길게는 49일간 불법감금 된 채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등이 자행됐다.

최병국은 이 사건의 담당검사였다. 피해자들의 기록은 충격적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이틀 전인 9월 5일, 최병국이 부산시경 대공분실을 직접 방문했다. 피해자 이상록은 항소이유서에 이렇게 썼다.

"법의 준수를 감독해야 할 검사가 불법고문 수사를 지휘했으며, 검사의 방문은 저희들에게 절망적인 자탄을 안겨주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 송세경은 검사가 방문하기 전 수사관들이 "여태까지 너희들의 수사를 지휘한 높은 사람이 오니 방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최병국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고문당하고 있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피의자들이 '고문당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고문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문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피의자가 세상에 있을까? 2014년 9월 대법원은 부림사건 재심에서 피해자들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33년 만이었다. 그 33년 동안 최병국은 국회의원으로 살았다.

"어떤 사과도 할 생각이 없다"

2013년 영화 〈변호인〉이 개봉하면서 부림사건이 다시 주목받았다. 그 영화에서 노무현(1946~2009)은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고, 공안검사는 악역이 됐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최병국에게 기자가 입장을 물었다.

"어떤 사과도 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확신범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목표였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사람들에게, 현직 국회의원이 한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최병국 자신도 방문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조사받는 곳에도 찾아가서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던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한 눈에 멍이 든 피의자에게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능청이 아니라 예술이다. 다만 그 예술의 무대에 고문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검 중수부장 자리에서 한보사건으로 밀려나다

최병국은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1932~2021) 정권, 김영삼(1927~2015) 정권에 이르기까지 3개정권에서 공안검사로 활약했다. 1988년 서울지검 공안2부장으로 문익환(1918~1994) 목사 방북사건, 임수경(1968~) 방북사건, 서경원(1955~) 의원 방북사건 등을 수사하며 공안정국을 주도했다. 1995년 대검 공안부장으로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5·17 내란 수사에도 관여했다.

1997년 초 드디어 대검 중수부장이 됐다. 그런데 여기서 한보사건이 터졌다. 당시 한보그룹의 문어발 불법 대출사건이 정치권 전체를 흔드는 태풍으로 번졌다. 문제는 그 안에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병국의 중수부는 김현철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이끌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여론이 악화되자 대검 중수부장 자리에서 중도 경질됐다. 권력이 바뀌면 역할도 바뀌고, 권력을 지키지 못하면 자리도 날아간다.

1999년 법조비리, 그리고 3선 국회의원

1999년 2월, 최병국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 연루돼 검사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이 됐다. 17대, 18대까지 3선. 법사위원장, 정보위원장,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까지 지냈다. 법조비리로 검찰을 떠난 사람이 국회 법사위원장이 된 것이다. 이 나라의 법과 윤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2018년에는 이명박(1941~) 전 대통령의 공동변호인으로 나섰다.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던 무렵, 그는 전직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법정에 서 있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로이 콘은 역사 교과서에서 매카시즘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가르친다. 에리히 밀케는 독일 통일 후 법정에 섰다. 그들의 이름은 반면교사로 기록됐다.

한국에서 최병국은 3선 국회의원으로, 법사위원장으로, 전직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살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를 보며 부림사건을 떠올렸다. "나는 파쇼가 좋은데"라고 말하던 검사의 목소리가, 군화 발이 국회를 향하던 그 밤과 무관하지 않았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최병국의 이름을 기록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시작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2012년 국회의원 시절 최병국. ⓒ연합뉴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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