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한인입양인단체 KAN 박선아 회장 "두 문화 품은 삶은 상처 아닌 자산"
7차례 한국 오가며 뿌리 찾기 등 노르웨이 입양인 지원체계 구축 나서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완전한 노르웨이인도, 한국인도 아니지만, 두 문화를 품고 살아가는 과정이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여정입니다."
재외동포청 주최 '2026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노르웨이 한인 입양인 단체 KAN(Korean Adoptees Norway) 박선아(노르웨이명 선 마리아 레만) 회장은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입양인으로 살아온 시간과 정체성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입양인들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살아간다"며 "이를 상처로 부정하기보다 자산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충남 금산이 고향인 박 회장은 1974년 세 살 무렵 노르웨이로 입양됐다. 현재는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IT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삶을 이어오던 그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23년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서였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한 경험은 있었지만, 한국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어요. 마치 몸 깊숙한 곳에서 '집에 왔다'고 말하는 느낌이었죠."
그 기억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김치'였다. 그는 "김치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며 "처음 맛본 순간, 내가 평생, 이 맛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회상했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에게 고향의 감각을 일깨운 소중한 매개체가 됐다.
하지만 첫 고국 방문은 기쁨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한국 도착 후 아동권리보장원과 해외입양인연대(GOAL) 등을 통해 어렵게 찾은 이모를 통해 친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애도의 시간을 가졌지만, 생전에 만나지 못했다는 상실감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친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이복 형제자매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연락할 방법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친척들은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하지만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현실은 여전히 마음 아픈 부분입니다."
박 회장은 이후 친척들과 교류하고 입양인들과의 연대를 위해 지금까지 일곱 차례 모국을 찾았다. 개인적인 여정은 자연스럽게 노르웨이 내 한인 입양인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졌다.
재외동포청 등 한국 정부 기관의 다양한 지원 정보를 꼼꼼히 수집해 노르웨이 현지 회원들과 공유하고, 세계 각국의 입양인 단체들이 가진 운영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이번 방한의 중요한 목적이다.
그가 이끄는 KAN은 2024년 1월 창립돼 현재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박 회장은 "기존 입양 단체들은 입양 부모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입양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며 "입양인 스스로가 중심이 되는 포용적인 공동체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300명 규모 글로벌 커뮤니티 운영 및 리더십 경험을 살려 회원 관리 시스템도 구축했다.
현재 박 회장은 오는 6월 2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하는 콘퍼런스 준비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재외동포청과 오슬로 지방정부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한인 입양인 출신 작가와 예술가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학문적·예술적 성과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쇼케이스 형식으로 꾸며진다.
행사에서는 입양인의 정신 건강과 정체성 문제를 예술과 문학을 통해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공유하는 대담도 열린다. 소설가 한강 작품을 노르웨이어로 번역한 번역가의 한국어 학습 경험 발표도 예정돼 있다.
박 회장은 "입양인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입양 이슈에 관심 있는 현지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행사"라며 "노르웨이 사회에 입양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구상하는 KAN의 장기 목표는 '노르웨이 내 한인 입양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다. 한국 방문이나 가족 찾기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와 행정 절차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입양인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는 "현재는 관련 정보가 너무 단절돼 있다"며 "입양인들이 혼자 헤매지 않도록 실질적인 안내 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의 또 다른 목표는 한국어 공부다. 거주 지역에는 한글학교나 세종학당이 없어 온라인 수업과 독학에 의존하고 있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어학연수 참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한국어 공부는 정말 어렵다"면서도 "언젠가는 친척들과 통역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전했다.
박 회장이 KAN을 이끌며 꾸는 꿈이 있다. 노르웨이의 모든 한인 입양인이 소외감 없이 "나도 함께하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투명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phyeonsoo@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