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두릅은 예부터 '산나물의 제왕'이라 불렸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목두채(木頭菜), 곧 나무의 머리에서 나는 채소라고 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먼저 맺히는 순은 하늘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인간은 그것을 섭취하며 계절의 변화를 몸 안으로 받아들인다. 도교 양생에서 말하는 상승하는 기운을 받아 몸을 깨운다는 원리가 여기에 담겨 있다.
양생에서 두릅은 쓴맛과 단맛의 상승성을 함께 지닌다. 두릅의 쌉싸래한 맛은 막힌 기운을 풀고 열을 내려 몸을 가볍게 만든다. 한 점의 쓴맛이 몸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셈이다.
또 두릅은 풍과 습을 제거하는 힘을 지닌다. 관절의 뻐근함과 몸의 무거움, 부종 같은 증상은 현대인에게 흔하다. 이는 기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두릅 속 사포닌 성분은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을 완화한다. 이는 활혈지통(活血止痛)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겉은 거칠고 가시가 많지만 속의 기운은 막힌 것을 풀어주는 부드러움을 품고 있다.
◇ 두릅의 영양학
현대 영양학에서도 두릅은 저속노화 식품으로 주목받는다. 다양한 아미노산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고 사포닌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강한 항산화 작용을 한다. 이는 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 기능을 높이며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양생에서 말하는 정기를 보존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개념이 현대 과학 속에서도 확인되는 셈이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두릅은 생존과 맞닿아 있던 식재였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두릅을 채취하며 생명을 이어갔다. 두릅은 몸을 살리는 구황식물이었고 동시에 병을 다스리는 약이었다. 음식과 약이 분리되지 않았던 동양의 '식약동원' 사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릅을 다루는 방식에도 양생의 이치가 담겨 있다. 반드시 데쳐 먹는 것은 독성과 떫은맛을 줄이기 위해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연의 기운을 인간의 몸에 맞게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데침은 거친 기운을 누그러뜨리고, 찬물에 헹구는 과정은 열을 식혀 균형을 맞춘다. 여기에 발효된 장과 함께 먹는 전통은 장의 기능을 돕고 소화를 원활하게 한다.
◇ 손자병법으로 본 두릅 요리
봄은 전쟁이 아니라 생명의 전략이다. 겨울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온 자연은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손자병법 '구지(九地)의 장'은 아홉 가지 땅의 형세에 따라 싸움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땅을 읽지 못하면 군대는 무너지고, 흐름을 따르지 않으면 스스로를 잃는다. 이 이치는 음식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두릅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효능과 맛,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릅은 나무 끝에서 돋아나는 어린 순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먼저 봄을 받아들이는 존재다. 이는 구지 가운데 '산지'(散地)와 닮아 있다. 산지는 아직 결집되지 않은 땅이다. 이때는 무리하게 힘을 쓰기보다 기운을 모아야 한다.
두릅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날것으로 먹지 않는다. 살짝 데쳐 독을 풀고 기운을 다스린다. 시작에서 무리하지 않는 병법이자 양생의 첫걸음이다.
데친 두릅을 무쳐낸 나물은 '경지'(輕地)에 해당한다. 가볍게 지나가야 하는 땅이다. 간단한 양념으로 두릅의 향을 살리는 것은 억지로 힘을 더하지 않는 방식이다. 노자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고 했다. 억지로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두릅나물은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기운을 깨운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강회는 '쟁지'(爭地)다. 두릅의 쌉쌀한 맛과 초장의 강한 맛이 만나 균형을 이룬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면 조화가 깨진다. 이는 인체의 음양과도 같다. 양생은 강한 것을 더하는 데 있지 않고 서로를 조절해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두릅튀김은 '교지'(交地)다. 길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뜨거운 기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익혀내는 튀김은 시간과 온도의 균형이 핵심이다. 오래 익히면 향이 사라지고, 덜 익히면 독성이 남는다. 삶에서도 기회는 순간에 오고 판단은 짧아야 한다.
두릅전은 '구지'(衢地)와 닮았다. 여러 재료가 한데 모여 중심을 이루는 자리다. 두릅과 고기, 달걀이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만든다. 서로 다른 기운이 충돌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인체 또한 다양한 장부와 기운이 균형을 이룰 때 건강이 유지된다.
찌개와 국으로 끓여낸 두릅은 '중지'(重地)다. 깊이 들어온 땅에서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국물은 재료의 기운을 모두 끌어내 몸 깊숙이 전달한다. 두릅의 사포닌과 영양 성분이 국물에 녹아들어 오장육부를 따뜻하게 감싼다. 몸을 회복시키는 약선의 역할을 하는 음식이다.
장아찌로 담근 두릅은 '비지'(圮地)를 넘어 '사지'(死地)를 활용하는 지혜다.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과 간장에 절이는 과정은 부패와 보존의 경계를 다루는 일이다. 손자는 사지에 들어서야 필사의 힘이 나온다고 했다. 두릅 역시 시간을 견디며 더 깊은 맛으로 변한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두릅떡은 구지의 마지막 경지인 '생지'(生地)에 해당한다. 모든 과정을 거쳐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는 자리다. 곡식과 두릅이 만나 새로운 음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순환의 완성이다. 자연의 기운이 인간의 손을 거쳐 다시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 된다.
양생의 관점에서 두릅은 간의 기운을 돕고 혈을 맑게 하며 몸의 막힌 흐름을 풀어준다. 현대 영양학에서는 사포닌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이고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성분보다 '때'와 '방법'이다.
언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을 살리기도 하고 해치기도 한다. 손자가 말한 "지형을 아는 자가 승리한다"는 원리와 맞닿아 있다.
우리 조상은 산으로 올라가 두릅을 꺾었다. 가시에 찔리면서도 그 순을 얻어 식탁에 올렸다. 자연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춰 몸을 조절하는 삶이었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도(道)다.
두릅은 억지로 자라지 않고 때가 되면 스스로 올라온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손자병법의 구지는 상황에 맞는 선택을 말하고, 노자의 도는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양생은 그 둘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절제다. 두릅은 몸에 이로운 식재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 사포닌 성분은 적당할 때는 약이 되지만 과하면 위장을 자극할 수 있다. 양생의 핵심은 많이 먹는 데 있지 않고 몸에 맞게 먹는 데 있다. 부족함과 넘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건강이며 저속노화의 본질이다.
오늘날 우리는 넘치는 음식 속에서 오히려 건강을 잃어간다. 자극적인 맛과 과도한 영양은 몸의 균형을 깨뜨리고 노화를 앞당긴다. 그러나 두릅 같은 자연의 음식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힘을 지닌다. 쌉쌀한 맛은 몸을 깨우고 향긋한 기운은 마음을 맑게 한다.
이처럼 두릅 한 점에 담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먹는다는 행위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저속노화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자연의 속도로 돌아가는 삶에 있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된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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