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선물을 받았다. 안동시 서후면에는 연당고택과 봉마루 도자기 공방이 있다. 고택과 공방은 귀촌한 두 자매가 운영을 한다. 내게 관광사업을 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하여 갔다. 너무나 고즈넉한 고택과 홀연한 공방의 모습이 좋았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정리하고 나서려고 하는데 봉마루 주인이 작약꽃을 절화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살짝 당황했다. 꽃 선물은 내 생애 처음이라 그랬다. 그랬더니 당신에게 주는 게 아니고 집 식구 주라는 거란다. 그럼 그렇지. 어쨌든 종이에 싼 꽃봉오리들을 두 손에 들고 서울로 돌아왔다.
작약꽃 봉오리는 호두만했다. 자정에 된장 항아리를 비워 화병으로 만들어 꽂았다. 다음날 점심이다. 꽃이 점점 부풀더니 피어 있다. 그게 단호박만해지더니 일주일간 만발한다. 하얀 꽃·베이지꽃·자주빛 꽃이 어우러져 꽃밭을 이룬다. 꽃잎에서 향기를 집 안에 들이붓는다. 그 일주일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작약꽃 축제를 왜 하는지 알았다.
작약은 사실 꽃보다 뿌리로 더 유명하다. 환절기마다 우리가 약국에서 집어 드는 쌍화탕, 그 핵심 재료가 바로 작약 뿌리다. 사람들은 작약을 '약'으로만 기억하지만 내 생각엔 좀 억울할 만하다. 땅 위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피는데 다들 땅속 뿌리만 캐니까 말이다.
작약이 이렇게 거하게 피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겨울을 제대로 맞아야 한다. 가을에 뿌리를 박고 영하의 냉기를 땅속에서 꼬박 견뎌야 이듬해 봄에 꽃이 만발한다. 식물학에서는 이걸 춘화현상이라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춥지 않으면 안 핀다'는 뜻이다. 작약 입장에서 보면 겨울은 고통이 아니라 멈춤이다. 제대로 멈추고 쉬었을 때 꽃이 제대로 나온다.
요즘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면 작약과 정반대다. 겨울도 없이 사철 내내 풀가동이다. 쉬는 시간에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잠자리에서도 알람을 5분 단위로 맞춰둔다. 그러니 꽃이 필 리가 있나. 봉오리 상태로 시들시들 하다가 번아웃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떨어진다. 농촌의 겨울을 농한기라며 빈둥댄다고 놀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놀리던 사람들. 과로로 다 쓰러졌다.
이런 시대에 등장한 개념이 리커버리노믹스(Recoverynomics)다. 번역하자면 '회복 경제' 정도 되겠다. 옛날 경제가 사람을 쥐어짜서 단기 성과를 뽑는 방식이었다면, 리커버리노믹스는 정반대다. 사람을 잘 재우고, 잘 쉬게 하고, 잘 회복시키는 것이 곧 미래 자산이라는 셈법이다. 쉬고 노는 게 투자라는 얘기다. 작약이 겨울을 견디는 게 게으름이 아니라 개화 준비인 것처럼 말이다.
리커버리와 이코노믹스가 결합된 리커버리노믹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회복을 논할 때 언급되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번아웃에 빠진 사회 현상을 진단하며 웰니스 업계가 글로벌 웰니스 인스티튜트(GWI) 데이터를 근거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고도화된 디지털 시대에 과부하 상태가 심해지고 인공지능까지 나타나 소외감마저 증폭된 상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의 고통이 지나자마자 어이없는 내란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무너진 시스템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훌륭한 비즈니스가 되는 시대다.
우리는 리커버리, 회복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일상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 중 가장 쉽고 저렴한 것이 꽃이다. 자연이 인간한테 처방해준 무료 약국이다.
신경을 가라앉히는 데는 라벤더, 눈이 피곤할 땐 마리골드, 긴장 풀고 싶으면 캐모마일, 머리가 멍할 땐 로즈마리, 기운 없을 땐 페퍼민트, 마음이 가라앉을 땐 장미를 만나자. 식탁에, 책상에, 창가에 한송이만 놓아두면 된다. 굳이 비싼 스파를 가지 않아도 된다. 책상 위에 꽃 한 송이 두고 코를 들이밀면, 그게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리커버리노믹스의 최전선에서 요즘 가장 핫한 트렌드가 허쉬피탈리티다. 'Hush(쉿)'와 'Hospitality(환대)'를 합친 말인데, 한마디로 "조용히 좀 자게 해드리겠습니다" 산업이다. 옛날 관광이 '뭘 보여줄까, 뭘 시킬까'에 매달렸다면, 허쉬피탈리티는 정반대다. '얼마나 깊이 재워줄까'가 승부처다.
빛 차단 100%, 소음 0데시벨, 거기에 생체 리듬까지 분석해 주는 과학적 숙면 솔루션. 이런걸 최고급 리조트가 제공하고 있다. 럭셔리 호텔은 방음 설계, 조명, 매트리스까지 모두 수면 과학을 기반으로 구성하고 엄격한 방음 기준, 고성능 온도 조절 시스템, 암막 커튼, 자체 온도 조절 기술을 적용한 커스텀 매트리스를 제공한다. 이를 수면 사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고객들이 호텔을 방문하는 이유가 럭셔리 경험 향유에서 회복으로 변하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금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첨단의 도시보다 지방의 한옥과 시장, 골목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우리는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는 시골 한옥이라는 훌륭한 허쉬피탈리티 시설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옛 어른들은 마케팅 용어 없이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다.
봉마루에서 온 작약꽃이 일주일 내내 나한테 슬쩍 던진 메시지는 이런 것 같다. "겨울을 건너뛴 봄은 없다." 작약꽃과 함께 한 일주일, 행복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데, 나야말로 오늘 밤은 알람을 평소보다 30분 늦춰 놓고 작약 뿌리 들어간 쌍화탕 한 잔 데워 마시고 자야겠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를 전공했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오랫동안 '환상의 나라'를 설계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는 슬로우빌리지 대표이자 컨설턴트로 변신해 농촌에 행복의 마법을 부리는 중이다. 한국수달보호협회 수도권서부지회장으로서 생태 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사회적농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치유농업과 6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람과 생명이 함께 웃고, 모든 이가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쾌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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