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범지구적 인공지능 협력체가 본격 출범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9개 국제기구와 5개 다자개발은행이 참여하는 이 플랫폼은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조성됐으며, AI 기술·인프라의 공동 활용과 글로벌 현안 대응 협력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지난 21일 개최된 비전 선포식에는 한난 술리만 유니세프 경영 부총재, 에이미 포프 국제이주기구(IOM)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급 대표단이 대거 방한했다. 22일 국제개발협력계 관계자들은 이번 협력체에 동참한 다자기구들이 한국의 세계적 디지털 기술력에 깊은 신뢰를 보내며 파트너십 강화에 나섰다고 전했다.
개발도상국과의 디지털 격차를 좁힐 혁신적 발판으로 국제사회는 이번 구상을 평가하고 있다.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성과 달성을 위해서는 인간 중심의 다층적 안전장치가 운영 과정에서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랐다.
◇ 유니세프 "유엔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별도 재원 확보가 관건
가장 선제적으로 합류한 유니세프는 한국 정부의 추진력과 혁신 속도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현장 안착을 위한 재정적 기반 확보에 내부적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술리만 부총재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첫 실무 협의 후 불과 5개월 만에 실행 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아이디어 제안부터 다자간 실행 체계 구축까지 이토록 단기간에 구체화된 사례는 유엔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급속한 기술 확산이 수반하는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아동 권리 보호 전략이 유니세프 본부의 신속한 결정을 이끌었다. 이미 아동 권리 수호, 조직 효율화, 거버넌스 강화를 축으로 자체 AI 전략을 운용 중인 유니세프는 글로벌 원칙을 현장의 실질적 해법으로 전환하는 데 이번 협력체를 활용할 계획이다.
술리만 부총재는 AI 기술이 소외 지역 아동의 교육·보건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유해 콘텐츠 노출과 데이터 편향성 같은 위험도 동반한다고 지적했다. 설계 초기 단계부터 안전 가이드라인 구축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외교적 성과가 현장 변화로 이어지려면 예측 가능한 재정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입장도 전달됐다. 기존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내에서 분할 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추가적인 별도 재원 형태로 조달돼야 한다는 점을 술리만 부총재는 강조했다.
전 세계적인 ODA 축소 기조와 한국의 예산 운용 상황을 감안하면, 국제기구들이 재정 사각지대를 메우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배분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 UNDP·ITU "개발 가속 동력"…IOM·UNHCR "개인정보 보호는 생명과 직결"
기술 기반 국제 개발과 표준화를 담당하는 유엔개발계획(UNDP)과 국제전기통신연합(ITU)도 한국의 디지털 역량을 세계적 과제 해결의 핵심 동력으로 평가하며 참여 의의를 밝혔다.
UNDP 측은 "전 세계에 펼쳐진 현장 네트워크와 한국의 기술 리더십을 결합해 AI가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아닌 개발 가속 동력이 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신뢰·안전·포용에 중점을 두며, 개도국이 단순 도입을 넘어 각국 맥락과 개발 우선순위를 반영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ITU 역시 이번 협력체를 "AI의 복잡한 거버넌스 문제를 다자간 체계로 풀어내려는 유의미한 시도"로 규정했다. 기존 'AI for Good' 플랫폼 및 국제 기술 표준화 노력과 시너지를 창출하도록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제이주민·난민 등 취약계층의 민감한 신원 정보를 최전선에서 다루는 IOM과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인도주의 구호 분야에서의 AI 활용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철저한 위험 관리를 주문했다.
포프 IOM 사무총장은 데이터·개인정보 보호와 책임 있는 AI 활용에 관한 내부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UNHCR 측은 "인간 중심·인권 기반 활용이 원칙이며, 개인정보 보호는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국제적십자위원회 합류 가능성도…이행 로드맵 구체화가 과제
비전 선포식 참여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향후 합류 가능성도 주목된다. ICRC는 분쟁·재난 지역에서 안면인식 기술과 대규모 데이터 분석 AI를 활용해 이산가족 상봉과 실종자 신원 추적 프로젝트를 다각도로 추진 중이다. 과거 수기 기록과 불완전한 현장 데이터를 AI 기반으로 정밀 매칭해 추적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등 구호 현장에서 실질적 기술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ICRC 관계자는 "무력 충돌·국제인도법과 연계된 AI 및 신기술 활용, 그리고 이를 통한 인도주의적 행동 개선은 최우선 과제"라며 "한국 당국 및 관계 기관과 소통하며 수행 가능한 역할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주요 유엔 기구들이 이번 구상에 적극 호응하는 배경에는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과 책임 있는 공여국으로서의 ODA 위상에 대한 종합적 신뢰가 자리한다는 분석이 개발협력계에서 나온다. 다만 참여 기구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대로, 구체적 이행 로드맵 마련과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가 향후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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