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양대 노총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 질서와는 다른 독자 노선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를 세대교체에 따른 노동운동의 변화로 봐야 한다는 시각과 함께 이번 투쟁이 노동조건 개선보다 성과급·이익 배분 등 특정 집단을 위한 실리에 무게가 실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1일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이하 삼성전자노조)는 당초 이날부터 다음 달 7일까지로 예정했던 총파업을 유보했다.
사측과의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삼성전자노조는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의 제도화와 성과급 산정 기준 공개 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세우며 사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이를 두고 재계는 물론 노동계 내부에서도 노동조건 개선보다는 ‘사익 추구’에 초점이 맞춰진 요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채 정치적 투쟁보다는 조합원의 실질적 권익과 처우 개선에 집중하는 노선을 유지해 왔다. 또한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와 같은 제3 노총 성격의 연대체를 직접 구성하거나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노조는 출범 당시부터 상급단체 중심의 노동운동과 정치 투쟁 방식에 거리를 두고 실리 중심의 독립 노조를 지향해 왔다. 이에 초기 약 6000명 수준이던 조합원 수는 1년여 만에 7만명 규모로 확대되며 삼성전자 내 최대 단일 노조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삼성전자노조의 행보는 국내 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양대 노총의 방향성과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노동운동이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연대’와 ‘단결’보다는 조합원의 실질적 이익 확보에 무게를 둔 행보라는 지적이다. 그간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임금 격차 해소,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 등 사회 전반의 노동 의제를 중심에 두고 활동해 왔다. 더 나아가 정치·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산하 노조들이 연대 집회와 공동 파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조직적 연대를 강조해 왔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는 보다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조합원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이나 연대보다는 성과급 확대와 보상 체계 개선 등 구성원의 처우 향상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노사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도 노동계에서는 삼성전자노조에 전체 노동전선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21일 성명을 내고 “삼성이 거둔 세계적 성과는 대기업 정규직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위험과 열악함을 온몸으로 버텨낸 하청·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그리고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결합한 ‘사회적 총노동’의 결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전자노조는 초일류 기업 노조라는 우월적 지위를 내려놓고 조직되지 못한 88%의 미조직·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앞장서는 연대의 성숙함을 보여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지난 19일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상생이 실종된 노동운동은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과 노동자, 소상공인이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 체계를 갖춘 대기업 노조가 추가 성과급과 보상 확대를 요구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는 ‘생존권 투쟁’보다는 ‘이익 배분 경쟁’으로 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동일 산업 내에서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놓여 있는 만큼 노동시장 내부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삼성전자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대기업 노조의 성과급 중심 교섭이 새로운 기준처럼 자리 잡을 경우 다른 기업 노조들 역시 유사한 요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기업 간 임금 경쟁과 노사 갈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 나아가 노동시장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한층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의 독자 노선을 단순한 이기주의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존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 청년 전문직 등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 집단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기업별·직군별 이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노동운동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삼성전자노조 사례의 경우, 조합원의 이익과 실리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노동운동과 궤적이 다르다”며 “노동운동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을 통해 노동시장 전체의 권익과 사회적 정의를 확대해 온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사회적 정의’ 보다 실리에 초점을 맞추는 흐름은 노동운동의 역사적 발전 측면에서 보면 퇴행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며 “더욱이 삼성전자노조처럼 기업 내부의 울타리에 머무르는 방식만으로는 사회적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