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 선수 시절 이름값이 지도자의 성패를 보장하지 않는 시대다. 프로축구에서는 이정효 수원 삼성 감독과 이영민 부천FC 감독, 프로야구에서는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이 현역 시절의 화려함보다 긴 공부와 치열한 준비로 지도자의 길을 열었다. 프로농구에도 비슷한 얼굴이 있다. 고양 소노의 손창환 감독이다. 현역 시절 KBL 4시즌 통산 20득점.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는 홍보팀 직원, 전력분석원, 코치를 거쳐 구단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감독이 됐다.
손창환 감독은 19일 고양 소노아레나에서 본지와 만나 “살면서 이렇게 관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웃었다. 소노는 2025-2026시즌 정규리그 5위로 창단 첫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무대에 올랐고, 6강에서 서울 SK, 4강에서 창원 LG를 모두 3전 전승으로 제압했다. 챔피언결정전(7전 4승제)에서는 부산 KCC에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소노의 봄은 실패로만 설명할 수 없는 반전 드라마였다.
▲화려하지 않았던 선수 손창환의 시간
손창환 감독의 농구 인생은 우연처럼 시작됐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농구하던 그는 체육부장의 권유로 엘리트 농구에 발을 들였다. “친구들과 농구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농구부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듣고 너무 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반대도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통해 안정적인 길을 걷길 바랐다. 그러나 운동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아들을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교복이 바뀌어 있으니까 어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는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 장면은 어린 손창환에게 오래 남았다. 그는 “어머니를 실망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대충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더 이를 악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자신도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는 아니었다고 인정한다. 타고난 재능보다 버티는 힘으로 농구를 이어간 시간이었다.
프로 무대는 더 냉정했다. 대학만 가면 끝이라고 생각했고, 프로만 가면 다 됐다고 여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손창환 감독에게 프로는 “또 다른 세상”이었고, 자신은 “첫 번째 발을 디딘 것뿐”이었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은퇴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그렇게 열심히 해보고도 경쟁자를 넘지 못한다면 빨리 다른 일을 찾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코트 밖에서 넓어진 농구의 시야
은퇴 뒤 손창환 감독은 곧장 지도자가 되지 않았다. 구단 홍보팀에서 사회생활을 배웠고, 이후 전력분석 업무를 맡았다. 선수 출신이 은퇴 후 바로 코치로 향하는 일이 자연스럽던 시절, 그는 코트 밖에서 농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한 길은 아니었다. 은퇴를 고민하던 손창환 감독에게 구단 관계자는 사무국에서 행정 업무와 사회생활을 배워보는 길을 권했다. “문서나 엑셀을 만질 줄 아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르지만 이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당시의 출발점이었다. 손창환 감독은 “제가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배우려고 하는데 자존심이 상할 게 있느냐”고 되물었다.
홍보팀에서 시작한 시간은 전력분석 업무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경기 영상을 자르고 정리하는 기술부터 익혀야 했다. 손창환 감독은 SBS 스포츠 뉴스 파트에 파견돼 약 4개월 동안 방송 편집 기술을 배웠다. 이후 전력분석 업무를 맡으면서 단순히 장면을 따라가는 대신 영상을 나누고 상황을 분류하며 경기의 구조를 읽는 법을 익혔다.
전력분석 업무는 사실상 맨땅에서 시작됐다. 당시 농구계에 체계적인 전력분석 파트가 자리 잡기 전이었다. 손창환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도입한 축구 분석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농구에 맞는 방식을 만들었다. 선수 시절에는 한 장면과 결과에 매달리기 쉬웠지만, 분석가는 경기 전체의 맥락을 읽어야 했다. 그는 전력분석팀에서 “훨씬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판단을 구분해 전달하고, 실제 대응은 감독과 코치가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도 이때 몸에 익혔다.
▲소노의 봄, 모방이 아닌 ‘찾기’에서 출발
소노 지휘봉을 잡은 첫 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개막전 대패에 이어 1라운드를 2승 7패로 마쳤고, 4라운드까지도 14승 22패에 머물렀다. 손창환 감독 자신도 개막전을 두고 “감독인 내가 봐도 오합지졸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이후 경기부터 준비한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고, 공간도 조금씩 열렸다.
최근 프로스포츠에서는 종목을 불문하고 ‘트렌드’가 중요한 화두다. 손창환 감독도 그 흐름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만 접근은 단순한 모방과 달랐다. 그는 “트렌드를 쫓는다는 말보다는 찾는다는 표현이 맞다”며 “우리가 르브론 제임스를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맞는 것을 찾아 바꿔야 한다”고 짚었다. 세계 농구의 방향을 보되, 소노 선수들이 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는 일이 먼저라는 의미였다.
그 고민은 시간이 지나며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이정현, 네이던 나이트, 케빈 켐바오를 중심으로 공격 구성이 자리를 잡았고, 빠른 전환과 넓은 스페이싱, 외곽 공격을 결합한 농구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정규리그 막판 10연승으로 5위까지 올라선 소노는 창단 첫 PO에서 서울 SK와 창원 LG를 모두 3전 전승으로 돌려세웠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KCC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소노의 봄은 아주 강렬했다.
손창환 감독은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준 선수들이 가장 고맙다는 것이다. 첫 시즌의 성과를 말할 때도 그는 결과보다 과정과 방향을 먼저 짚었다.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손창환 감독은 “목표 지점을 향해 달리더라도 중간중간 그 지점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선수 시절의 좌절은 사라지지 않았고, 홍보팀과 전력분석팀을 거친 시간도 우회로로 남지 않았다. 그 모든 시간이 쌓여 소노의 봄이 됐다. 손창환 감독은 이제 다시 목표 지점을 바라보며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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