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롯데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VERDY의 전시 ‘I Believe in Me’를 보고 나오며 가장 오래 남았던 것은 작품의 화려함보다도 한 사람이 오랜 시간 좋아해 온 감정과 취향이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따라 전시장을 천천히 걷다 보니, 이 전시는 단순히 유명 그래픽 아티스트의 작업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전시장 안에는 익숙한 캐릭터와 선명한 색감, 자유로운 그래픽 언어들이 가득했다. 얼핏 보면 가볍고 경쾌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감정과 취향을 꾸준히 쌓아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I Believe in Me’라는 전시 제목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창작을 계속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처럼 다가왔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기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믿고 반복해 온 시간 말이다.
도슨트는 VERDY의 작업이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캐릭터와 타이포그래피, 굿즈와 공간, 음악과 패션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흐름을 들으며 요즘 시대의 창작은 더 이상 한 장르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한 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경험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콘텐츠가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전시장 한편에 재현된 작업실 공간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정돈되지 않은 메모와 스케치, 도구들과 작업 흔적들을 보며 오히려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졌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화려한 결과 뒤에는 결국 수많은 드로잉과 고민, 그리고 반복되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전시를 보며 자연스럽게 지금의 청소년들과 수업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들도 생각났다. 요즘 아이들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기보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으로 이모티콘을 만들고, 굿즈를 제작하고, SNS에 올리고,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이번 전시는 그런 흐름을 가장 동시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미술이 전시장 안에 걸린 작품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시각문화는 훨씬 넓고 유연해졌다. 캐릭터 하나가 브랜드가 되고, 하나의 감정이 콘텐츠가 되며, 한 사람의 취향이 문화로 연결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벽한 기술보다 그 안에 담긴 진짜 감정과 태도에 더 크게 반응한다. 아마 그래서 많은 사람이 VERDY의 작업에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힙한 이미지’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기만의 청춘과 감정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이지만, 이번 전시를 보며 오히려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감정의 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 자체보다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캐릭터라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지게 된다.
결국 창작은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문득 ‘나는 무엇을 오래 좋아해 왔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업해 온 ‘몽다’와 ‘거복이’, 행복과 꿈, 무지개와 세잎클로버의 의미들도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내가 오래 붙잡아 온 감정과 가치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창작자로서 자신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에 가까웠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이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때로는 유행에 흔들리고, 비교 속에서 방향을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 감각을 믿고 밀고 나가는 사람만이 결국 자신의 언어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이번 롯데뮤지엄 전시는 그런 사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야기 해주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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