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고를 90분 앞두고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창립 이래 최대 규모 파업 위기는 일단 피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첫 교섭 이후 6개월 가까이 이어진 갈등도 봉합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성과급 제도화 논란은 삼성전자 노사관계에 새로운 과제로 남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노조 경영 이후 노조 조직화···쟁점은 임금서 성과급으로
이번 사태는 임금 인상률을 둘러싼 통상적 노사 협상이라기보다, 삼성전자 내부 성과 배분 체계가 본격적인 쟁점으로 부상한 사례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노조가 조직력을 키우면서 회사의 핵심 이익 배분 구조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고, 갈등의 무게중심도 임금 수준에서 성과급 제도 자체로 옮겨갔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2018년 사내 노동조합 설립을 기점으로 노사관계 변화가 시작됐다. 2019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출범,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노동삼권 보장 및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2024년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출범을 거치며 노조의 조직 기반도 넓어졌다. 이번 갈등은 노조 활동이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성과 배분 구조 논의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갈등의 핵심 쟁점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 노조는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발생한 성과가 임직원에게 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배분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OPI 산정 기준 공개, 연봉 50% 상한 폐지, 성과급 제도화가 주요 요구로 제시됐다. 반면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 배분하는 방식이 향후 투자 여력과 경영 판단의 유연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는 지난해 12월 첫 임금교섭을 시작한 이후 성과급 제도 개선과 임금·복리후생 조건을 두고 논의를 이어왔다. 사측은 평균 임금 인상률 6.2%, 무주택 직원 대상 사내 주택대부, 출산 경조금 확대 등을 포함한 개선안을 제시했고, 반도체 부문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 방안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다만 노조는 성과급 산정 방식의 투명화와 상한 폐지 등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노사 간 시각차는 성과급 제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갈렸다. 노조는 반도체 사업 회복 국면에서 성과 배분 기준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회사는 영업이익 연동형 배분 구조가 장기 투자와 사업부 간 형평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봤다. HBM 주도권 회복과 첨단 반도체 투자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성과급 갈등은 단순 보상 논의를 넘어 경영 리스크로 부상했다.
◇평택 집회로 갈등 공개화···DX 이탈에 노조 내부 균열도
갈등은 지난 4월 평택사업장 집회를 계기로 공개 국면에 들어섰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성과급 상한제 폐지와 성과급 제도 투명화를 요구하는 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찰과 노조 추산 4만여명이 참여한 이 집회는 삼성전자 첫 과반노조가 된 이후 조직력을 대외적으로 확인한 첫 대규모 집결로 받아들여졌다.
평택 집회에서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시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이 무렵 구체화했다. 같은 날 주주단체가 주주 권익 보호를 내세운 맞불 집회를 열면서 성과급 논쟁이 노사 갈등을 넘어 주주권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대규모 집회 이후 노조 내부 균열도 나타났다. 성과급 요구안이 DS 부문 중심이라는 불만이 DX 부문 조합원 사이에서 확산하면서 탈퇴 움직임이 이어졌다. 평택 결의대회 전 7만5000명을 넘어섰던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4월 말 탈퇴 신청이 늘어난 뒤, 지난 17일 기준 7만1625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DS 부문 성과급 제도화에 협상 초점이 맞춰지면서 비반도체 부문에서는 노조 요구안이 전체 임직원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후 중노위 사후조정에서도 노사 간 접점은 쉽게 마련되지 않았다. 중노위는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되 DS 부문에 특별 포상을 추가하는 절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DS 부문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일정 기준을 달성할 경우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유사한 성과가 반복될 경우 지속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노조의 제도화 요구를 일부 반영한 안이었지만, 핵심 쟁점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조는 OPI 투명화와 상한 폐지, 제도화 등 핵심 요구에 대한 확답이 부족하다고 봤다. 반면 사측은 성과급 규모와 지급 방식에서 상당 부분 양보했음에도 적자 사업부까지 높은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경영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4월 평택 집회에서 예고됐던 21일 총파업 가능성은 점차 현실화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총파업 초읽기에 정부·정치권 가세···90분 앞두고 막판 합의
총파업 계획은 반도체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노조는 파업 첫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 기자회견 이후 기흥·화성·평택 등 주요 반도체 사업장으로 이동해 집회와 현장 파업을 병행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자동화 비중이 높아 곧바로 전면 중단되는 구조는 아니지만, 장비 이상이나 공정 오류,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 엔지니어와 설비 대응 인력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특정 교대 조나 설비·품질 대응 인력에 공백이 생길 경우 웨이퍼 이동, 검사, 장비 점검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법적 쟁점도 파업 강도를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수원지법은 18일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낸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쟁의행위 기간에도 방재시설, 배기·배수시설, 화학물질 공급시설, 전력공급시설, 관제시설 등 안전보호시설과 웨이퍼 변질 방지, 생산설비 손상 방지 등 보안 작업은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이 제시됐다. 다만 법원 결정이 파업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어서 노사는 유지 인력 범위를 두고도 해석 차이를 보였다.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 개입 여부도 변수로 떠올랐다. 중노위 사후조정이 잇따라 불발되자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긴급조정권은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나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발동 시 30일간 파업 등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강제 조정 절차가 진행된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노사 자율 해결에 무게를 뒀지만, 삼성전자가 수출과 증시,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파업 장기화를 방치하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청와대도 파업 예고일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미칠 우려를 들어 마지막까지 합의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입장을 냈다.
정치권에서도 파업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여당은 교섭 지속과 기업 이익배분 기준을 둘러싼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고, 야당도 협력업체와 주주, 반도체 산업 신뢰에 미칠 파장을 이유로 조속한 합의를 요구했다. 경제계도 긴급조정권 발동 필요성까지 거론하며 파업 철회를 압박했다.
막판 돌파구는 총파업을 하루 앞둔 20일 마련됐다. 앞서 노사는 18일부터 2차 사후조정 절차에 들어갔고, 19일에는 장시간 마라톤 협상을 이어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20일 오전 추가 회의에서도 노조는 조정안을 수용한 반면 사측이 수락 여부를 유보하면서 중노위 사후조정은 불성립됐다.
이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섰고, 같은 날 오후 경기 수원의 노동부 경기고용노동청에서 별도 교섭이 재개됐다. 노사는 약 6시간의 추가 협상 끝에 오후 10시40분께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총파업 예고 시점을 90분 앞둔 막판 합의였다.
◇자사주 성과급 신설···주주권·사업부 형평성 논란은 과제로
잠정 합의안의 핵심은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되 DS 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한 점이다. 특별경영성과급은 노사가 합의한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고, 지급률 상한은 두지 않는 구조로 설계됐다. 기존 OPI 일부까지 포함하면 사업 성과의 10% 이상이 성과급 재원으로 반영되는 셈이다. 지급은 현금이 아닌 자사주 방식이며, 일부 물량에는 일정 기간 매각 제한이 붙는다.
성과급 외에도 평균 임금 인상률 6.2%, 직급별 샐러리캡 상향, 임금 인상분 소급 적용, 무주택 조합원 대상 주택대부 제도, 출산 경조금 확대 등이 합의안에 담겼다. DX 부문과 일부 조직 임직원에게는 상생 차원의 자사주 지급안도 포함됐다. 잠정 합의안은 22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최종 확정 여부가 결정된다.
노사는 이번 합의를 상생 노사문화의 출발점으로 평가했지만, 후속 과제는 적지 않다. 우선 사내 형평성 문제가 남아 있다. 이번 협상이 DS 부문 성과급 제도 개선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스마트폰과 가전 등을 담당하는 DX 부문에서는 사업부 간 보상 격차가 더 부각될 수 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이익 배분이 특정 부문 중심으로 설계될 경우 성과급 기준을 둘러싼 내부 논란이 재차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주주 반발도 후속 변수로 남은 모양새다. 4월 평택 집회 당시 주주단체가 맞불 집회에 나선 데 이어, 잠정 합의안 이후에도 일부 주주단체는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구조에 법적 문제를 제기했다. 주주에게 귀속될 이익을 사전에 배분하는 방식이 될 수 있고, 주주총회 결의 없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정하는 것은 사실상 위장 배당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합의가 사내 보상체계 논의를 넘어 주주권과 이사회 책임 논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과제가 있다. 반도체 사업은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큰 만큼, 호황기 초과 성과를 어떻게 배분할지는 노사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동시에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재원 배분과도 맞물려 있다. 성과급 제도화가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경기 변동성과 미래 투자 여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타결은 삼성전자가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성과급 제도화 논의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노조가 회사의 핵심 보상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들어선 만큼 향후에는 경영 원칙, 주주권, 사업부 간 형평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제도 운영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호황기 이익 배분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노사 신뢰 회복과 성과급 기준의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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