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유아용 카시트가 중고거래 시장에서 일반 육아용품처럼 활발히 재유통되고 있다. 카시트는 사고 발생 시 영유아의 신체를 지탱하는 필수 안전장치지만, 시장에 한 번 진입한 제품이 재거래될 때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법적 의무와 실제 유통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어린이 안전의 사각지대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유아용 카시트 매매와 무상 나눔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고가 제품의 경우 100만 원을 호가하는 데다 아이의 성장에 따른 교체 주기가 짧아 부모들에게 중고 거래는 현실적인 선택지로 꼽힌다. 그러나 매물 중에는 생산된 지 17년이 지난 노후 제품부터 안전인증(KC) 표시도 붙어있지 않은 상품까지 확인됐다.
가장 큰 문제는 중고 제품의 노후도나 내부 결함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섬유류나 일반 완구와 달리 카시트는 외관이 멀쩡하더라도 내부 플라스틱 프레임의 피로 누적, 충격흡수재의 변형,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균열 등을 소비자가 판별하기 불가능에 가깝다. 판매자의 ‘무사고’ 주장이나 주관적인 보관 상태 고지에만 의존해야 하는 구조다.
현재 도로교통법상 만 6세 미만 영유아의 카시트 착용은 의무화돼 있으며,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에 따라 제조·수입 단계에서 엄격한 안전인증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는 최초 시장 진입과 차량 탑승 시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비자 간 재유통 단계에서 제조연월, 리콜 여부, 파손 및 사고 이력 등을 의무적으로 검증하거나 고지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는 없다. 결국 안전을 위해 장착해야 하는 제품이 중고 시장에서는 일반 유아용 물건처럼 돌고 도는 구조가 된 셈이다.
낡은 카시트 보상 논란, 핵심은 ‘손해’
오래된 카시트를 둘러싼 불안은 보험 처리 문제로도 이어진다.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는 사용연한이 긴 카시트를 쓰면 사고 때 보험 처리가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가 다쳤을 때의 대인배상과 카시트 자체가 파손됐을 때의 재물 보상을 구분해 봐야 한다는 게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교통사고로 영유아가 다친 경우 치료비와 위자료 등 인적 손해는 대인배상 영역에서 다뤄진다. 카시트가 오래됐거나 중고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인배상이 곧바로 배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카시트 자체가 파손된 경우에는 재물 손해로 분류된다. 이 경우 제품의 연식과 사용 기간에 따른 감가상각이 적용돼 보상액이 낮게 산정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카시트 연식만으로 대인배상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재물 보상은 제품의 잔존가치를 따지기 때문에 오래된 제품일수록 보상가액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보험은 사고 후 손해를 평가하는 제도고, 카시트는 사고 예방을 위한 장치라는 점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보상액의 적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시트가 본래 목적인 사고 예방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느냐다. 카시트 착용 의무는 사고 후 보험금을 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고 전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실제 착용되는 제품이 오래된 중고품이고, 사고 이력이나 내부 부품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겉은 깨끗해도 연식 15년?…안전 이력 ‘깜깜이’
전문가들은 카시트의 안전성을 외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카시트는 플라스틱 프레임과 안전벨트, 내부 충격흡수재 등으로 구성돼 있어 시간이 지나면 소재가 경화되거나 고정 성능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신생아 이너시트, 어깨 패드, ISOFIX 가이드, 고정벨트, 사용설명서 등 구성품이 빠진 경우에도 올바른 장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캐나다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중고 카시트를 선택할 때 제품 이력과 리콜 여부, 사고 유무, 부품·설명서 보유 여부 등을 확인하도록 안내한다. 국내도 제품 라벨을 통해 제조연월과 안전인증 표시를 확인할 수 있지만, 중고 거래 과정에서 이런 정보를 어떻게 확인하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 안내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처럼 제품의 상태와 사용 이력이 안전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카시트도 단순 중고물품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안전·위생 문제가 큰 일부 의료기기는 개인 간 온라인 거래가 제한된다.
카시트를 의료기기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지만, 사고 순간 어린이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장치라는 점에서 일정 연식 이상 제품의 재유통이나 사고 이력 미고지 거래에 대해서는 별도 기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고 카시트 거래를 전면 금지하기는 어렵다. 다만 제조연월이나 사고 이력, 리콜 여부, 구성품 누락 여부 등을 거래 단계에서 확인하도록 하거나 오래된 제품에 경고 표시를 두는 방식은 대안으로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고 카시트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선의만으로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품목”이라며 “연식과 사고 이력, 구성품 여부 등 안전 관련 정보를 명확히 확인하는 거래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카시트에는 제조사가 권장하는 사용 가능 기간과 장착 조건이 있는데, 국내 중고 거래에서는 이런 정보가 가격이나 외관 상태보다 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플랫폼 차원에서도 제조 후 10년 이상 지난 제품에 대한 거래 제한·경고 표시를 검토하거나, 사고 이력과 구성품 여부를 확인하도록 안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김필수 교수는 “가격 부담으로 물려받기나 렌털·중고 거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고 제품은 겉으로 깨끗해 보여도 안전벨트와 연결 부위, 내부 플라스틱 부품 변형 가능성이 있는 만큼 더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카시트는 아이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제품인 만큼 인증된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나 유관 단체 또한 안전한 카시트 사용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안내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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