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가 결국 반도체 특별성과급 신설과 상한 없는 장기 보상체계를 받아들인 배경에는 단순 노사 갈등을 넘어선 ‘인재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반도체 시대 들어 경쟁의 핵심이 공장과 설비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면서 삼성도 기존 성과주의 틀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최근 DS(반도체) 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등을 담은 2026년 임금·성과급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 외에 사업성과 연동형 특별성과급 체계를 새로 만들고 지급 상한도 사실상 없앴다는 점이다. 특히 DS 특별경영성과급은 세후 전액 자사주로 지급되며 일부 물량은 최대 2년간 보호예수 형태로 묶인다.
재계는 이번 구조를 두고 “삼성이 사실상 빅테크식 인재 락인 전략을 본격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동안 삼성은 안정적 연봉 체계와 조직 문화 브랜드 경쟁력을 기반으로 인재를 확보해왔다. 그러나 AI 시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AI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핵심 개발자 확보 자체가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HBM 시장은 단순 생산능력보다 설계 패키징 수율 안정화 경험을 가진 핵심 인력 의존도가 매우 높은 분야다. 업계에서는 특정 핵심 개발조직의 경험과 노하우가 사실상 시장 점유율을 좌우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간 HBM 시장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다소 밀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엔비디아 공급망 대응과 HBM3E 경쟁력 확보 과정에서 내부 위기감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 과정에서 삼성 내부 개발자들의 피로감과 보상 불만도 적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개발은 사실상 총력전 수준이었다”며 “초고강도 일정과 수율 안정화 부담이 이어졌지만 현장에서는 성과 대비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사람 빠지면 끝난다”…삼성 내부 달라진 위기감
삼성이 결국 기존 성과주의 원칙 일부를 바꾼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삼성은 영업이익 연동형 보상 구조나 상한 없는 성과급 체계 도입에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반도체 업황 특성상 호황과 불황 변동성이 큰 만큼 고정형 이익배분 구조는 장기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핵심 인재를 잃는 비용이 더 커졌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실제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메모리 핵심 인력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공격적인 성과보상 체계와 상한 없는 성과급 구조 등을 확대하며 인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장에선 최근 수년간 삼성 반도체 인력 일부가 경쟁사로 이동했다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업계에서는 특정 핵심 개발조직 이탈 자체가 기술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예전 제조업 시대에는 설비 투자가 경쟁력이었지만 AI 시대에는 결국 사람이 핵심 자산”이라며 “삼성도 이제는 인재를 붙잡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시대라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내부에서도 과거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삼성’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인재 확보 경쟁력이었지만 최근에는 개발자들이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사 보상 체계를 훨씬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이 극단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기반 장기보상 체계를 통해 핵심 개발자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번 삼성의 자사주 기반 특별성과급 역시 이런 글로벌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식 성과주의도 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단순한 성과급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삼성 특유의 보수적 성과주의 체계가 AI 시대를 맞아 구조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합의에는 장기 인센티브 개념이 강하게 반영됐다. DS 특별경영성과급은 향후 10년간 운영되며 일정 영업이익 목표 달성 시 지급된다. 이는 단기 실적보다 장기 성과와 기업가치 상승에 임직원 이해관계를 묶어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단순 제조업 기업에서 AI 플랫폼 경쟁 기업으로 이동하면서 인사·보상 체계 역시 점차 빅테크형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우려도 있다. 성과급 구조가 장기 고정화될 경우 향후 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다운턴 시에는 지금의 보상 구조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시장은 결국 "삼성이 사람 없이는 AI 경쟁도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의 핵심은 노조가 아니라 인재”라며 “삼성이 돈을 더 쓰더라도 HBM 경쟁력 회복과 AI 주도권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기존 원칙을 일부 바꾼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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