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의 큰 스승' 장충식 명예이사장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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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의 큰 스승' 장충식 명예이사장 영면

금강일보 2026-05-21 10:21:49 신고

사진= 단국대 제공 사진= 단국대 제공

"학생을 사랑하는 척하는 생활의 습관이 반복되게 되면은 자연적으로 사랑하게 돼요. 제가 학생들한테 많은 봉변 당했죠. 그런데 결국은 그들이 결혼하고 자식들 낳고 온 다음에 저한테 큰절 하고 '선생님 뜻을 이제 알겠습니다' 하더라고요."

 

단국대학교의 발전을 이끈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향년 93세로 영면했다. 교육과 학문 발전은 물론 남북 화해와 사회 봉사에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을 기리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32년 중국 텐진에서 태어난 장 명예이사장은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범정 장형 선생을 따라 어린 시절 중국과 만주를 오가며 생활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분을 숨긴 채 ‘김찬식’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으며, 이 과정에서 민족의 아픔과 시대의 비극을 몸소 경험했다.

그는 생전 부친에게서불의에 맞서 약자를 보살피는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신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의 삶 전반에는 약자 보호와 화해, 봉사의 가치가 깊게 자리 잡았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복무한 그는 이후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대 사범대 수료 후 단국대와 고려대 대학원을 거쳤으며, 1967년 단국대 총장에 취임했다. 당시 36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연소 총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장 명예이사장은 단국학원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폐교 위기와 재정난 속에서도 대학 정상화와 종합대학 승격을 추진했고, 한국 최초의 지방캠퍼스 체제를 도입해 천안캠퍼스를 설립했다. 이후 의과대학과 치과병원 설립까지 추진하며 지역 교육과 의료 인프라 확충에도 힘썼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법인 부도와 캠퍼스 이전 갈등 등 숱한 위기 속에서도 학교를 지켜냈다. 학생들의 반대와 재정난 속에서도 죽전캠퍼스 이전 사업을 완수하며 단국대의 새로운 도약 기반을 마련했다.

학문 분야에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 한자사전인 『한한대사전』 간행을 주도하며 한국 학계의 연구 기반 확대에 기여했다.

체육과 남북 교류 분야에서도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스포츠를 단순한 경쟁이 아닌 화해와 평화의 수단으로 바라봤다. 대학 스포츠 발전과 비인기 종목 육성에도 꾸준히 힘쓰며 한국 체육 발전의 토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철학 역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생전 “교육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 존귀함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학생 중심 교육을 실천했다. 민주화 시기 시위에 참여해 제적되거나 수감됐던 학생들의 복학과 졸업을 적극 지원했던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장 명예이사장은 교육과 봉사, 화해의 길을 걸으며 시대를 넘어 미래를 준비한 인물로 평가된다. 단국대는 그를 “단국의 큰 스승”이라 부르며, 대학과 민족, 인류를 위한 사랑을 실천한 교육자였다고 추모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분향소는 단국대 죽전캠퍼스 학생극장과 천안캠퍼스 국제회의장에 각각 설치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24일 오전 10시 단국대 죽전캠퍼스 체육관에서 엄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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