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사실상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보상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국내 대기업 성과급 체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이번 삼성 노사 합의를 단순 임금협상이 아니라 “AI 시대 초과이익 배분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최근 DS(반도체) 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등을 담은 2026년 임금·성과급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와 별도로 사업성과 연동형 특별성과급 체계를 새로 만들고 지급 상한도 사실상 없앴다는 점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DS 특별경영성과급은 사업성과의 10.5% 수준 재원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기존 OPI 재원과 별도로 지급되며 장기적으로는 자사주 기반 보상 체계까지 포함됐다. 재계에서는 이번 구조를 두고 “삼성이 가장 경계했던 보상 방식 일부를 결국 수용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사업부 실적과 EVA(경제적부가가치) 등을 반영해 성과급을 지급해왔지만 영업이익 비율을 일정 수준 공식화하는 방식에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반도체 업황 특성상 호황과 불황 변동성이 큰 만큼 고정형 이익배분 구조가 장기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삼성은 최근 HBM 투자 확대 첨단 패키징 증설 차세대 메모리 개발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 등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성과급 구조까지 장기 고정형으로 확대될 경우 향후 비용 부담과 투자 여력 축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삼성은 상당 부분 양보했다. 재계에서는 AI 시대 핵심 인재 확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 “하이닉스식 성과주의 닮아간다”…재계, 긴장감 고조
시장에서는 삼성의 이번 합의를 두고 “SK하이닉스식 초과이익 공유 모델과 유사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영업이익 기반 성과보상 체계를 확대해 운영 중이다. 반면 삼성은 오랜 기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보상’을 강조해왔다. 이번 변화는 삼성 성과주의 철학 자체가 AI 시대를 맞아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사실상 국내 대기업 보상체계 기준 역할을 해온 회사”라며 “삼성이 영업이익 연동형 구조와 상한 없는 성과급을 일부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다른 그룹에도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현대차 LG전자 SK 등 주요 대기업으로 유사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AI와 반도체 전장 배터리 등 핵심 사업 중심으로 특정 조직이 창출하는 초과이익 규모가 커지면서 “성과를 더 직접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국내 주요 기업에서는 AI·반도체 핵심 인재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처럼 단순 연봉 인상만으로는 핵심 인력을 붙잡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많다. HBM 시장은 설계 패키징 수율 안정화 경험을 가진 소수 핵심 인력 의존도가 매우 높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경쟁력 자체가 사실상 사람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 내부에서도 HBM 개발 조직을 중심으로 “성과 대비 보상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공격적인 성과보상 정책과 스톡그랜트 확대에 나서면서 내부 위기감도 커졌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단순 노사 타결을 넘어 국내 기업 성과주의 체계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 “AI 시대엔 사람이 자산”…삼성식 보상 전략 변화
시장에서는 삼성이 자사주 기반 장기보상 구조를 도입한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DS 특별경영성과급은 세후 전액 자사주로 지급되며 일부 물량은 최대 2년간 보호예수 형태로 묶인다. 단기 현금 보상 대신 임직원과 기업가치를 장기적으로 연동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활용하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기반 장기보상 체계와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AI 시대 들어 기존 제조업 중심 보상 체계에서 점차 빅테크형 인재 락인 전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삼성 브랜드와 안정성만으로도 인재가 몰렸지만 AI 시대에는 다르다”며 “핵심 개발자들은 글로벌 수준 보상 체계를 직접 비교하기 시작했고 삼성도 이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려도 있다. 성과급 구조가 장기화·고정화될 경우 향후 현금흐름과 주주환원 정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반도체 업황이 다시 둔화될 경우 지금의 성과급 체계가 비용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기존의 보수적 재무 전략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결국 삼성이 “AI 시대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설비 투자가 경쟁력이었지만 AI 시대에는 핵심 인재 유지 자체가 기업가치”라며 “이번 삼성 노사 합의는 단순 임금협상이 아니라 한국 대기업 성과주의 구조 변화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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