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이하 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이번 방문은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떠난 뒤 불과 나흘 만에 이뤄져, 이란과 러시아 지도부 방중 사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회담 뒤 별도의 공동성명을 내지 못한 미러 정상과는 달리 중러 정상은 공동 회견을 통해 "정글이 법칙"으로의 회귀를 경고하며 간접적으로 미국을 비판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시 주석은 이날 오전 11시30분께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작된 회담에서 중동과 걸프 지역이 전쟁과 평화 사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즉각적 휴전과 지속적 협상을 강조했다. 그는 분쟁이 조기 종식되면 에너지 공급 안정, 산업 및 공급망의 원활한 운영, 국제 무역 질서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일방주의와 패권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하지만 평화, 발전, 협력은 여전히 인민의 염원이자 우리 시대의 지배적 흐름"이라고 짚고 중러가 "더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을 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너스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서 이란 전쟁 속 러시아가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라며 "중동 위기 속에서 러시아는 신뢰할 수 있는 자원 공급국으로서의 역할을, 중국은 이 자원에 대한 책임감 있는 소비국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중러 간 25년된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시진핑 "정글의 법칙" 미 에둘러 비판…푸틴 "러,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국"
회담 뒤 중러 정상은 오후 2시30분께 양국 포괄적 전략 협력 강화와 선린 우호 심화에 대한 공동성명을 시작으로 경제무역, 교육, 과학기술 등 분야 20개 협력 문서에 대한 공동 서명식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앞서 유리 우샤코프 러 대통령궁(크렘린) 보좌관은 서명식을 가진 문서 포함 양국이 40건 문서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빘다.
약 30분간 진행된 서명식 및 공동회견에서 시 주석은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의 위협으로 국제 질서가 "정글의 법칙"으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방적 괴롭힘" 및 "역사를 되돌리려는 행위"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국가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아래 미국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중러 정상이 "심도 깊고 우호적이며 생산적 대화"를 나눴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견에서 러시아가 중국에 중단 없이 에너지 공급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양국 결제가 러 루블화 및 중 위안화로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러 관계가 "자율적"이고 "현황에 좌우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두 정상은 회견에서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했다.
이란·러 방중 사이 낀 트럼프…중, 중러 정상회담 중 미중 회담 결과 발표도
이번 방문은 푸틴 대통령의 25번째 방중이지만 지난 13~15일 트럼프 대통령 방중 뒤 곧바로 이어져 시기적으로 더 주목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분쟁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 선임분석가 윌리엄 양은 이번 방문으로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 중국이 의지할 수 있는 다른 견고하고 튼튼한 관계가 있다는 걸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따라서 미국은 쉽게 중국을 고립시키거나 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 두 명을 며칠 간격으로 맞이한 건 세계 무대에서 입장과 입지에 대한 중국의 커지는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호주국립대 태평양문제학과 선임연구원 그레이엄 스미스는 <로이터>에 "트럼프 방중 직전 이란 외무장관이 중국에 왔고 방중 직후엔 러시아 지도자가 왔기 때문에 그는 사실상 중간에 낀, 샌드위치 신세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중러 정상 만남 중 지난주 미러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잉 항공기 200대 구매와 양국 간 관세 휴전 연장 모색 및 300억달러 규모 물품에 대한 상호관세 인하 추진, 미국산 쇠고기 공급업체 등록 재개, 희토류 공급에 대한 미국의 우려 관련 공동 연구 등이 그 내용이다.
미러 정상이 며칠만에 연이어 중국을 찾으며 차이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인민대회장 앞에 레드카펫이 깔리고 군 의장대 행사, 국기와 꽃을 든 어린이들의 환영이 약 15분 가량 이어진 환영식은 거의 비슷했지만 회담 후 공개 행사의 경우 미중 정상이 회담 뒤 별도의 공동 회견 없이 다음 일정을 향한 반면 중러 정상은 공동성명 등에 대한 서명식,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러 "양국 정상, 에너지 분야 중요 합의 도달"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위기 심화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부문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에 중국은 중요한 에너지 수출처다. 양국은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2' 건설에 대한 논의를 이어 오고 있는데 가격 등 문제로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를 보면 크렘린은 이날 회담에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 합의가 시베리아의 힘2 관련인지는 불분명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중국와 시베리아의 힘2 관련 전반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부 사항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고 구체적 일정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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