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안 슈퍼에서 '의자매' 간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한동훈을 왜 좋아해 언니"라는 동생의 뾰로통한 말에 70대 김모 씨는 "박민식이가 해서 구포 여기 참 잘돼 있네 가시나야"라고 응수했다. 삐친 동생은 '대화가 안 통한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박민식이가 바보야?"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기자와 만난 김 씨는 한껏 성을 내며 말했다. "정치인들은 전부 다 뽑아주면 그만이라고 안 그러나. 법무부 장관 때부터 쭉 보면, 한동훈은 아주 깨끗한 사람이다. 민주당이랑 대결해서 말 한마디라도 똑똑히 하는 사람, 한동훈 말고 누가 있어. 암만 봐도 없대."
몇 발짝 떨어진 구포시장 약초골목길 쪽 대중목욕탕 '금수탕'에서도 세 싸움이 치열했다. 특히 국민의힘 박민식, 무소속 한동훈 후보의 지지자 간 대화에 날이 섰다. 자신을 '한동훈 팬'이라고 밝힌 75세 여성 김모 씨는 "바른 길을 갔지. 배신자가 아니야"라고 한 후보를 두둔했다. 다만 이날 '금수탕'에서는 박 후보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좀 더 큰 듯했다.
김 씨는 "딱 들어보니 박민식이를 많이 찍겠더라. 엄마 때부터 구포 토박이잖아"라며 "100년 전통 구포국민학교 나왔지. 다른 데를 갔다 와도 박민식이 팬이 많아"라고 말했다. 앞서 박 후보가 선거 출마를 위해 경기 성남, 서울 영등포와 강서 등으로 지역구를 옮겨 온 것이 큰 흠은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 일각에선 "철새"라는 단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나는 1번"이라고 밝힌 40대 여성 이모 씨는 "자기들끼리 막 싸우고 이러는 게 좀 별로다. 하정우를 뽑을 거다"라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재선 출신' 박민식, 엇갈린 행정 평가
북구갑은 이곳에서 내리 3선을 한 전재수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로 공석이 되면서 전국에서 주목받는 6.3 보궐선거 '핫플'이 됐다. 북구 구포 1동·2동·3동, 덕천 1동·2동·3동, 만덕 2동·3동을 선거구역으로 둔 북구갑의 총유권자 수는 12만 명 남짓이다.
이 동네에서는 '전재수 후배', '이재명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통하는 더불어민주당 하정우 후보(1977년생, 기호 1번), 전 의원과 12년간 4번의 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한 재선 의원 출신의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1965년생, 기호 2번), 부산과 큰 연고가 없어 '외지인'으로 분류되나 전국적 팬덤을 보유한 무소속 한동훈 후보(1973년생, 기호 6번) 등이 겨룬다.
규모가 작은 선거구인 만큼, 각 후보는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유권자들과의 접촉을 늘려가고 있다. 후보들을 거리에서 두 번 이상 마주쳤다는 주민이 꽤 됐다. "전재수는 차를 안 타고 10년 넘게 걸어다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골목골목 다니는 건 앞서 전 의원의 지역구 관리 '팁'이기도 했다.
북구갑은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곳에 오래 거주한 토박이들이 많아 저마다 눈여겨보는 후보들이 있었다.
햇볕을 피해 가게 앞 그늘막에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은 하 후보와 박 후보로 의견이 갈렸다. 76세 남성은 기자에게 "아가씨도 여기서 고향 사람 만나면 반갑지? 그거는 이해해라. 박민식이는 당을 위해 떠난 희생자야"라고 말했다. 이를 듣던 83세 남성은 "나는 무조건 파란색"이라며 등을 홱 돌렸다. 64세 이순재 씨도 "이제 젊은 인재들이 이끌어나가야지. 고향이라고 무조건 뽑아주는 건 아니야"라고 반박했다.
건너편 '동광 미용실'에서는 하 후보와 한 후보를 두고 나뉘었다. 전직 교사 이자영(67세) 씨는 "이왕이면 정부 쪽 사람과 관계돼야 부산이 발전되고, 동네에 뭐 하나라도 더 좋지"라며 "박민식이는 국회의원 할 때 이 지역을 위해 해놓은 게 하나도 없어. 검사 출신이라 그런가 행정을 몰라"라고 혀를 찼다.
가만히 이 씨의 머리를 말던 미용실 주인 조승희(82세) 씨는 "내가 우리 아들한테 맨날 쿠사리(면박)를 먹어"라며 웃었다.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미였다. 조 씨는 "나는 윤석열이가 아직도 불쌍하다니까"라며 이 씨에게 "박민식에 대해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한 후보에 대해서 "머리가 좋다고 해서 잘 봤는데 하는 꼬라지가 영 마음에 안 든다. 나는 무지하게 안 좋아해"라고 혹평했다.
의류 가게를 운영하는 모자는 하 후보와 한 후보를 두고 다퉜다. "북구는 '묻지 마' 민주당 표가 40%다. 무조건 하정우"라는 40대 아들 옆에서 60대 어머니는 "나는 한동훈 팬"이라고 밝혔다. 아들이 "바람 넣지 말라"며 못마땅해하자, 어머니는 "똑똑하고 나이도 딱 맞고 한동훈이야"라고 맞섰다.
대대손손 북구갑에 거주한다는 신상국(70세) 씨는 "미워도 다시 한번 민식이"라며 "월남댁 민식이 엄마도 여기 사람이고, 민식이는 내 후배"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신 씨는 "정형근이는 돈을 좋아해서 공천 장사하고 갔단 말이야"라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이 지역 의원 출신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을 슬쩍 언급했다. 정 전 의원은 한 후보의 후원회장이다.
'여당 프리미엄' 하정우, 득 또는 실
'여당 후보'라는 하 후보의 타이틀은 유효한 득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구포시장에서 곡물을 파는 38세 안모 씨는 "전재수 의원이 해놓았던 게 있으니 그걸 이어받아서 하면 훨씬 낫지 않을까. 하 후보가 제일 낫지 싶다"며 "대통령부터 쭉 내려오는 거니 (민주당인) 하 후보가 될 거 같다"고 내다봤다.
30세 직장인 김모 씨는 "하 후보가 약소하게 이길 것 같다"며 "TV토론 하다 보면 한 후보에게 따라잡힐 거 같다. 실수, 실언이 나와서 하 후보 지지율이 깎일 거 같은데 그래도 근소한 차이로 당선될 거 같다"고 전망했다.
전 의원의 최근 도덕성 논란이 하 후보 지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68세 택시기사 임모 씨는 "통일교에서 돈도 주고, 시계도 줬다 캤는데 부산시장에 나오나. 당을 떠나서, 지역을 떠나서 이런 게 사람 허파 디비지는(뒤집어지는) 기라"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 의원과 중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55세 남성 박모 씨는 "전재수는 내가 보기에 초심을 조금 잃었다"며 "하정우가 내 후배여도 무조건 찍을 수는 없다"고 했다.
구포시장 상인인 45세 정모 씨는 "원래는 파란당, 이재명을 좋아했는데 하정우보다는 한동훈이 낫다. 그 전에 계속 전재수를 찍었는데, 지금 직접 뛰고 있는 한동훈을 보면 예전 전재수랑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당 울타리' 없는 한동훈, 호감도 갈려
한 후보의 '무소속'은 때로는 유리하게, 때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여기는 '국민의힘' 당만 보고 찍는 어르신이 많다. 무소속은 훨씬 불리할 것"이라는 말이 있는 반면, "한동훈이 돼야 보수를 재건한다"는 반론도 있다.
'북구갑 본토박이'라는 58세 여성은 "여태까지는 되든 안 되든 무조건 2번이었는데, 나라를 바꿔야 한다. 이번에는 6번"이라고 했다. 68세 남성 구모 씨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데, 박민식은 좀 약하다. 한동훈이가 돼야 보수를 재건하지"라고 말했다.
반대로 25세 대학생 채모 씨는 "한동훈은 무소속이니, 박민식 쪽으로 갈 거 같다"고 밝혔다. 채 씨는 "원래는 전재수를 지지했는데, 제 또래 남자애들은 민주당을 거의 안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거리에서 초등학생·중학생 등을 공략하는 한 후보의 전략이 통하는 면도 확인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50세 이옥임 씨는 "아이가 보내온 사진"이라며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한 후보와 촬영한 '셀카'를 보여주었다. 이 씨는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가 좋아하다 보니 관심이 갔다. 저도, 신랑도 한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시장에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등 친한동훈계 의원을 마주친 이야기도 풀어놓았다.
한 후보를 향한 "배신자"라는 인식, 국민의힘에 대한 '윤어게인' 비판도 실재했다. 60대 자영업자 신모 씨는 "나는 보수고, 박민식을 뽑을 것"이라며 한 후보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신 씨는 "계엄이 잘 된 건 아니지만 절차나 과정을 조금 잘 다듬었으면 보수가 이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 같다. 한동훈 전 대표가 너무 '내란'으로 몰아버리니까 보수가 분열된 거 아니겠나"라고 했다.
스스로를 '보수 지지자'로 소개한 62세 건설노동자 장모 씨는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2번을 뽑지만, 국민의힘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며 '투표 포기'를 선언했다. 장 씨는 "윤석열을 단절하지 못하는 게 싫다. 털어버리고, 사과하고, 다시 출발해야지"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보수가 왜 그리 새것을 좋아하냐"며 검증되지 않은 한 후보를 찍을 수도 없다고 했다.
"여론조사 신경 안 써" 세 캠프 한 목소리
세 후보의 최근 여론조사 동향을 살펴보면, 3자 대결에선 하 후보가 대체로 우위다. 다만 한 후보로의 보수진영 단일화를 가정하고, 하 후보와 가상 양자 대결을 펼치면 막상막하 추세를 보인다. 박 후보 측이 단일화 논의를 원천 차단한 지금, 북구갑 주민들 역시 두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을 낮게 봤다. 단일화가 성사된다고 해서 '보수표 합산'이 그대로 이뤄질지에도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양측이 단일화를 위한 노력을 막판까지 해야 한다는 보수 지지층이 있었다. 66세 남성은 "단일화하는 것과 안 하는 건에는 차이가 크다"며 "표 갈라지면 민주당만 좋지"라고 답답해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투표 의향이 없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거리를 오가는 세 후보의 모습은 종종 보았지만, "누가 좋은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당을 크게 보지는 않는다"며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마지막까지 누구를 뽑을지 고심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프레시안>이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각 캠프 관계자는 입을 모아 "여론조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 후보 측은 "우리는 우리 선거를 할 뿐이다. 직접 돌아다니는 게 최우선이고, 최고의 선거운동"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 측은 "여론조사에 폐단이 있는데 우리 쪽 13% 정도는 숨어있다. 단일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한 후보 측은 "박 후보와 한 후보 지지율 격차가 좀 나면 단일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 여론조사에 우리 쪽이 잘 반영이 안 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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