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도 2024년 보고서에서 지방소멸 위험이 군 단위를 넘어 광역대도시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역의 위기가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비슷한 처방을 반복해 왔다. 길을 넓히고, 산업단지를 만들고, 큰 시설을 짓는 방식이다. 이런 사업은 눈에 잘 띄고 성과를 설명하기 쉽다. 하지만 지역을 정말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건물은 늘었지만 사람은 정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의 현실은 숫자만 봐도 녹록지 않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지방자치단체 전체 예산은 310조1천억원이지만 통합재정수지는 18조6천억원 적자가 예상됐다. 재정자립도도 48.6%로 전년보다 1.5%포인트 낮아졌다. 지방세만으로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104곳, 전체의 42.8%에 이른다. 지역의 기초체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설계한 사업을 지역에 내려보내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청년 일자리가 급하고 어떤 곳은 돌봄이 더 시급하다. 또 어떤 곳은 병원시설과 출퇴근 교통망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중앙이 비슷한 틀로 사업을 짜면 실제 필요와 어긋날 수밖에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거대한 시설보다 일상을 붙잡아 주는 정책일 때가 많다. 청년이 머물 집, 아이를 맡길 돌봄, 어르신이 다닐 의료시설과 교통 인프라, 주민들이 모일 문화공간과 지역경제가 더 절실할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섬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탄광촌의 작은 섬이었던 나오시마는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새로운 활력을 만들었다. ‘베네세 아트사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50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예술 섬이 됐다. 중요한 것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자원을 살리고 주민이 변화의 주체가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지역의 주도성과 주민 중심 정책이다. 지역 문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주민이 직접 필요한 것을 말하고 지방정부가 실정에 맞는 해법을 설계해야 정책이 삶에 닿는다. 중앙은 세세하게 지시하기보다 지역이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산과 권한을 넓혀야 한다.
물론 주민 중심 정책이 만능은 아니다.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리고 지역마다 행정 역량 차이도 크다. 그래서 중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중앙은 지역을 일률적으로 끌고 가는 주체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재정과 제도를 뒷받침하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나오시마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하다. 지역경제는 콘텐츠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교통 인프라와 생활환경, 쾌적한 일상 조건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지역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경제·문화·교통·생활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삶의 경험으로 연결돼야 한다.
지역 소멸은 단지 인구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조건이 무너지는 데 있다. 사람들은 도로가 없어서만 떠나지 않는다. 일자리와 돌봄, 교육과 문화, 의료와 교통, 그리고 삶의 질이 사라질 때 떠난다. 결국 지역을 살리는 힘은 큰 건물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지키는 정책에서 나온다. 지역의 미래는 중앙정부가 대신 설계할 수 없다. 주민이 중심에 설 때 지역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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